물어 보세요
세상 속의 의문들과 삶 속의 문제들을 두고
누구도 말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해답을 찾는다.
누구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명쾌한 해답을 듣자.
편 집 부
질문: 정(情)이 많은 사람이 공적인 일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처리하는 일들에 정이 많이 개재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답변: 정이 많다는 것은 정실(情實)에 얽매인다는 뜻으로도 풀이 된다. 정실이라는 것은 사사로운 정이나 관계에 이끌리는 일을 두고 말한다. 정에 의존해서 일을 처리하려고 하면 실수하게 되는 일이 많다. 모든 일은 옳고 그름에 의해서 판단되어야 한다. 정실의 예를 들면, 공적인 일에 하는데 있어서 한 친척이 정으로 호소하면서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부탁하여 일을 되도록 했을 때이다. 그 경우에 그 사람만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친척도 나쁜 것이다.
정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세상이 어두울 때, 사회 자체가 정실에 의해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족벌 정치 같은 것도 정실의 한 예이다. 정실에 얽매이는 사회는 어두워진다. 정실에 의존하는 사회에는 도(道)가 무너지게 된다. 정의가 사라지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정실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정실은 사람 간의 애정이나 애착 때문에 생길 수 있으며 또한 물질 때문에 일어나기도 한다.
정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사회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도 정실이 큰 사회이다. 실제로 관공서에서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일을 보는데 있어서 뇌물을 건네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직장에서 진급을 하는데도 뇌물이 있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힘을 찾고, 줄을 찾고, 돈에 의존하는 것은 정실에 의존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에 의지해서 측은하다는 이유로 아무나 도와서는 안 된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떠한 작용하며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 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에 의지하여, 토끼에게, 전갈에게, 그리고 독사에게 물을 준다고 가정할 때, 토끼에게 물을 준 것은 사회에 유해한 일이 아니지만, 독사나 전갈에게 물을 준 것은 그들에게 힘을 주고, 해로운 세력이 자라게 된 것으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다.
질문: 친한 친구가 뺑소니 사고를 쳤다. 사고를 당한 사람은 불구자가 되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친구를 돕고 우정을 지키는 것인가?
답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있는 상태에서, 우정을 어떻게 구분 지을 것인가를 알아 보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정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을 넘어섰다면 우정도 피해를 줄 수 있다. 친구가 나쁜 짓을 했는데 우정 때문에 그 일을 덮어주었다면 그것은 두 사람이 함께 죄를 짓는 것이다. 이때는 친구에게 해결책을 찾아주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뺑소니 사고를 친 사실을 숨기고 평생을 죄책감을 갖고 살아갈 수는 없다. 만약 신고를 하면 얼마 동안 징역을 살게 되겠지만, 숨기고 덮어두면 평생 동안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살아야 한다. 한 사람을 불구자로 만듦으로써 그의 인생을 망쳤다는 가책을 평생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우정의 충고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자수해서 얼마 동안 징역을 살고 나면 너의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생 동안 부담을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 사고를 당한 사람으로부터 용서도 받고 네가 평생 짊어져야 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면 자수하는 편이 낫다."
만약 사고를 낸 친구가 쫓기는 상황에서 그를 숨겨 주었다가 발각이 되면 나도 위험하다. 친구와 깊은 우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숨겨 주겠지만 자신도 처벌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을 때에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는 우정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우정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인간의 의식이 가진 사고가 사람마다 다르므로 우정은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나쁜 일도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있는 일을 확인하지 않고 우정이 좋다, 혹은 나쁘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인간의 우정 속에는 감동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 우정으로 인해 패가망신한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질문: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식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할 만큼 서운할 때도 있었다.
답변: 부모가 자식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부모는 자식을 자식으로 키운 것이 아니라 상전(上典)으로 키운 것이다. 부모는 자신이 가진 것이 있을 때는 자식에게 무엇이든지 다 준다. 그러나 부모가 가진 것이 다 떨어지면 상전이 된 자식은, 자신을 위해 일 하고, 비위도 맞춰 주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 주던 종은 좋아했지만, 비위도 안 맞춰 주고, 자신의 이익에 큰 도움도 되지 않는 부모는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을 상전 처럼 키웠던 부모라는 종을 결국에는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켰다면 자식이 어떻게 부모를 배반하겠는가? 그것은 부모의 잘못이다.
만약 부모가 자식을 상전처럼 약하게 키우면 자식은 힘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자식을 키우는데 부모는 가장 큰 선생이다. 사회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해줘야 한다. 부모가 자식의 눈을 가려서 자식이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서는 안 된다. 자식을 위한 중요한 교육은 독립심을 길러 주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착을 버리면 냉철한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되므로, 자신을 망치는 일이 적고 실수하는 일이 적다. 스스로 좋게 살고 남에게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또한, 남에게 잘 속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된다. 옳고 그름을 아는 자는 부모를 잘 섬기고, 진정한 우애를 통해 필요할 때 형제를 잘 보살핀다.
자신이 하는 일에 애착을 갖지 않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자신을 건강하게 살게 하는 길이다. 어떻게 자식을 축복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바로 자식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다. 그리고 냉정한 판단과 힘든 노력이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자식에게 일을 시켜야 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봐야 돈의 소중함을 알고 함부로 쓰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자식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자식을 키울 때는 정에 의존하지 말고, 냉정해야 한다.
자식이 일을 하는 것을 안타깝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식을 세상에서 최고의 일꾼이 되도록 만든다면 결국 최고의 부모로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질문: 정(情)과 사랑은 무엇인가?
답변: 정과 사랑은 상반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과의 구별을 명확하게 하지 못한다.
정은 위에서 충분히 설명되었다. 사랑은 상대를 축복하는 것을 말하고, 정은 자신과 연결된 감정에 의한 것을 말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면 그것은 정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씨를 뿌리고 가꾸어 주는 일은 사랑이다. 왜냐하면 좋은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축복을 전하는 일이나 축복을 만드는 일을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은 세상 일의 옳고 그름에 대해 눈을 뜨지 못하면 실천하기가 어렵다. 사랑에도 수학의 공식에서처럼 큰 사랑과 작은 사랑이 존재한다. 내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 축복을 만드는가에 따라 큰 사랑도 될 수 있고, 작은 사랑도 될 수 있다. 세상에서 업을 만드는 원인이 수없이 많 듯이, 축복을 만드는 원인도 수없이 많다.
축복은 세상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사랑은 세상을 축복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질문: 업(業)도 애착을 갖는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지?
답변: 세상에 있는 일을 보면 거기에서 모든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죽을 때 편안하게 죽는다. 그런 사람은 삶에 대해 큰 애착을 가지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반면에 나쁜 일을 많이 하면서 잘못 산 사람들일수록 죽음에 이르렀을 때 안 죽으려고 더 발버둥을 친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애착이 선업이 큰 자보다 악업이 큰 자가 더 크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오래 산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그들 대부분의 삶이 행복하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애착이 크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들이 대부분 오래 산다. 세상에서 적(敵)을 많이 만들지 않고 모질게 살지 않은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의지가 약할수록 업이 크고 애착이 많다.
업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업은 자신을 실수하게 만든다. 미리 경계를 하고 있어도 부지불식간에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업에는 개인의 습성이 내재되어있기 때문에 자신 속에서 습성이 시키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업은 항상 자신 속에 있는 일을 그대로 나타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