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최부군 신양범과 함께  03.7) - 최부군

새벽 4시 20분, 김 미옥씨가 잠을 깨운다. 6시면 공항 가는 미니 캡이 오기로 되어있다. 북 유럽 국가들로의 여행이다. 씻고 식사를 하고 준비를 끝내고 차를 기다린다. 차가 늦는다. 차가 오지 않는다는 여래님의 호통 소리에 여행을 떠난다는 실감이 더욱 뚜렷해진다.

일요일 새벽 길은 한산하다. 25분을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는 아예 라인에어 단골이 되어버린 듯하다. 싸기 때문으로 한 푼이라도 절약해야 한다는 여래님의 뜻과 너무나 잘 맞는 항공사다. 어쨌든 자기들도 벌이가 되기 때문에 벌인 사업이리라.

탑승 수속을 하는 직원의 손길이 서툴다. 신입인가 보다. 출발이 20분 지연되어 8시 50분이 되어서야 이륙을 한다. 비행기는 두 시간 정도를 날아 스톡홀름 남쪽의 시골 Skavsta공항에 예정 보다 20분 늦게 11시 5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받는데 직원이 남한과 북한의 구분도 잘 하지 못한다. 나중에 양범을 통해서 들은 사실로는 라인에어가 이곳을 공항으로 사용하기 전에는 거의 알려지지도 않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고 한다. 스톡홀름까지 버스도 새로 생기고 근처 소도시까지 시내버스도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12시 30분이 되어서야 스톡홀름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가 몇편 되지 않아 한편의 비행기에서 내려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전 승객을 다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헬싱키로 가는 배 시간이 오후 4시 50분이어서 여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는 달리 의외로 시간이 빡빡하다.

스톡홀름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배표 예매 장소를 찾았다. 약간 헤매기는 했지만 스웨덴어가 유창한 양범의 덕분으로 어렵지 않게 바이킹 라인(Viking Line)의 예매소를 찾았다. 휴가철이라고는 하지만 배 삯이 너무 비싸다. 가장 싼 캐빈 두개와 그 바로 윗 등급의 캐빈 하나에 요금이 180유로, 20만원이 넘는다. 그래서 캐빈은 가장 싼 것으로 하나만 선택하여 130 유로, 15만원 정도에 표를 구입했다. 점심 식사를 해야 하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다. 버스 터미널 내를 돌아다니다 한켠에 벤치가 있다. 메뉴는 집에서 준비해 온 김밥이다. 봉투를 열어보니 제법 양이 많다. 충분히 먹고 세줄을 남겨 저녁에 먹기로 했다.

초행길은 언제 어디서나 불안하다. 버스를 타더라도 목적지로 가는지 가지 않는지를 몇번이고 확인해야 한다. 페리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한참 동안 기다린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배가 크기 때문에 승객이 상당히 많다. 오후 4시 50분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9시50분까지 꼬박 하룻밤을 가야 한다. 처음 타 보는 큰 배라 구조가 막막하다. 탑승이 시작되었다. 여래님과 양범은 캐빈 내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달려가고 나는 캐빈이 없는 승객들이 앉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허겁지겁 찾으러 달려간다. 짐을 들고 몇 층의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한 끝에 좌석이 있는 방을 찾았다. 아주 조그만 방이다. 의자가 채 20석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 양탄자가 깔려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바닥에 누워 잘 수 도 있겠다. 자리를 확인을 하고, 2층 캐빈으로 내려간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양범이 내가 들고 온 짐을 캐빈의 침대 밑에 넣는다. 캐빈 티켓 자체가 열쇠 겸용이기 때문에 짐의 안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배가 스톡홀름 항구를 빠져 나간다. 8층 후미에 야외 커피숍이 마련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맥주며 음료수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빈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점심 때 남긴 김밥 세 줄과 빵, 치즈, 그리고 우유로 저녁 식사를 한다. 젊은 놈들이야 이 정도 음식으로 한끼의 해결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여래님께서는 사정이 다를 것이다. 이런 행동들이 몸소 가르치시는 많은 예들 중의 하나이다. 배가 항구를 떠나 한참을 나왔는데도 여전히 배의 양쪽에는 육지가 같이 달리고 있다. 소위 말하는 피요르드식 만이다. 추운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의 만으로 그 길이가 어마어마 하다. 여유롭게 주위 경관을 즐기다 8시 30분이 되어 Sleep-in(캐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방. 카펫이 바닥에 깔려 있음.)내의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위도가 매우 높은 북쪽 지방이라 10시가 되어서야 해가 진다. 이미 대해로 나온 뒤라 처음으로 수평선 상의 일몰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양범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자다가 한기를 느껴 잠이 깨었다. 주위에는 잠들 때는 보이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자고 있다. 양범이 덮은 듯한 지도가 이불을 대신한다. 부랑자들이 신문 한장으로도 길거리에서 따뜻하게 잠을 잔다고 하더니 지도가 제법 제 역할을 한다. 그렇게 그 밤은 지났다.

7월 7일 월요일. 아침 6시 30분쯤 되었을까? 여래님께서 올라오셨다. 가장 싼 캐빈이라 맨 아래층에 유리창도 없다. 그렇게 편하지가 않으셨던 모양이다. 어제 저녁 먹다 남은 빵과 치즈, 그리고 물로 아침을 대신하고 헬싱키에서의 일정을 체크한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한 항구 근처 숙소도 헬싱키 시내 중심의 호스텔로 바꾸었다. 호스텔 주인에게 물으니 항구에서 2번 트램을 타고 헬싱키 기차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갈아타야 한다고 한다. 지하철 역과 호스텔 위치를 확인한다.

배가 헬싱키 항구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리면 또 전쟁의 시작이다. 교통편이며 숙식 문제며 활동을 위한 시내 정보의 수집 등. 일단 예약한 호스텔로 가는 교통편을 찾는다. 버스도 보이고 트램(전동차)도 보인다. 배 매표소 안을 둘러보다 가게에서 트램표를 팔고 있음을 알고 1.2 유로(천 오백원 정도) 짜리 세 장을 구입했다. 터미널을 나오니 저만치 2번 전기차가 보인다. 여래님께서는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계신다. 허겁지겁 트램에 올랐다. 숙소는 헬싱키 기차역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헬싱키는 아주 작은 도시이다. 지하철 노선도 하나 밖에 없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 지도를 들고 호스텔의 위치를 물으니 멀지 않은 곳에서 쉽게 호스텔을 발견할 수 있다. 호스텔 리셉션에 물으니 1시가 되어야 방이 빈다고 한다. 바로 신문사를 방문하라는 여래님의 지시에 따라 미리 찾아둔 주소를 근거로 기차역 근처의 Helsingin Sanomat 신문사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 신문사는 북 유럽에서는 가장 큰 신문사라고 한다.

신문사에 들어서니 예상했던 대로 정문 현관에서 사람이 지키고 있다. 철학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지적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을 모시고 왔으니 편집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조금 뒤 중년의 여자가 나온다. 자기는 여행 부문 편집장이라고 소개를 한다. 7월의 핀란드는 최고의 휴가 시즌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고 없다고 한다. 자기도 막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길이라고 한다. 과학과 철학을 담당하는 부서의 편집장과 기자들을 소개 받아 연락을 취했으나 휴가를 떠났거나 자리에 없다고 한다. 국제부 편집장과 통화를 하니 국제부 과학 담당 기자를 내려 보내겠다고 한다. 얼마 후 만난 기자가 설명하는 이 신문사의 신문 만들기는 어이없기 그지없다.

기사의 대부분이 과학 연구의 성과 위주로 채택되고 있는데, 다른 통신사나 방송국의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기사를 얻는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 나라 수도에 있는 헬싱키 대학에 관한 기사도 BBC 홈페이지를 통해서 소식을 알게 되었고 그제서야 헬싱키 대학에 연락해서 기사를 썼다는 이야기도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소재들이 확실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정확하게 확인도 되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이렇듯 아무 의미 없는 빈칸 채우기 식의 연구 성과들에 대한 보도는 잘도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부분에 관한 이해나 그런 능력을 가진 인물에 대한 기사는 다룰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헬싱키 내의 과학자나 철학자에 관한 정보는 헬싱키 대학에서 알아보아야 한다는 하는 말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모시고 여행 중인 자연과학학회 회장님은 기존이 잊고 있는 철학과 과학 세계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이해와 어떻게 하면 철학과 과학의 연구가 올바르게 진행될 수 있는 지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여행하면서 그런 것들을 전하고자 하고 있으니 기사를 만들어 볼 용의가 없는지 물어 본다. 나중에 연락을 준다는 말을 하면서 미팅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배웅한다.

신문사를 나와 호스텔로 돌아오니 여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방도 빈 모양이라 서둘러서 짐을 풀었다. 405호다. 모처럼 만에 방이 마음에 드시는 듯하다. 방이 넓고 깨끗하다. 먹다 남은 치즈와 빵과 호스텔 옆의 가계에서 구입한 콘플레이크로 점심을 마치고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둔 국립과학기관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한다. 헬싱키는 정말 작은 수도이다. 여래님 말씀으로는 진주 보다도 작다고 한다. 과학단체를 방문하니 여전히 리셉션이 있어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현대에 무언가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잘도 숨어 지낸다. 문지기 뒤에 숨고 비서 뒤에 숨어 있다. 여래님 소개를 하고 방문 목적을 설명하니 잠시 후 한 여자가 나온다. 자기 단체를 소개하는 중국어로 딘 팜플렛을 한아름 들고 왔다.

-----------(녹음 테잎)

과학 단체를 나오니 언제나 그렇듯 허탈함을 감출 수 없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하룻밤의 배 여행이 상당히 고달팠던지 피로가 밀려온다. 잠에서 깨니 벌써 저녁 7시다. 저녁 식사도 점심과 거의 비슷한 메뉴로 해결을 했다. 아무래도 여래님께서는 식사가 마음에 드시지 않는 모양이다. 설사까지 하셨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다 태운 밥이었지만 나름대로 이론을 배운 터라 다시 시도해 보고자 쌀을 사기로 했다. 쌀을 사러 나간 길에 정보나 수집할까 해서 부둣가로 나갔다. 밤 9시가 넘었지만 아직 밝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양범은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한 장소을 가리키며 탈린 가는 여객선 터미널인지를 확인한다. 터미널이 두 곳이 있는데 그 중의 한군데라고 한다. 잠시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으니 덩치가 큰 남자애가 한명 걸어온다. 말을 시켰더니 이것저것 말이 많다. 미국에서 보디가드로 1년간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요즘은 일본 건강용 자석을 판매하는 회사에 근무한다고 한다. 구 소련 국가들을 방문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경험담을 들려주는데 웬지 예감이 좋지 않다. 에스토니아는 핀란드와 상당히 가까운 국가라 핀란드 모방을 많이 한다고 한다. 심지어 애국가의 곡조는 똑 같고 가사만 조금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물가도 비싸고 사람들 인심도 그다지 좋지 않다는 설명이다.

10시 쯤이 되어서 숙소로 돌아와서 밥을 지었다. 걱정은 되었지만 들은 요리법대로 시간을 보아가며 냄비 안을 살폈다. 초보자 치고는 나름대로 괜찮게 지어졌다. 여래님께서는 고추장과 김으로 야참을 드셨다. 숭늉도 끓여 맛있게 나누어 마신다.

 

7월8일 화요일. 6시에 눈을 떴다. 어제 저녁 성공한 밥 짓기에 조금 신이 난다. 밥을 하고 김과 고추장으로 식사를 한다. 설겆이도 마치고 나니 8시 20분이다. 북 유럽 국가에서는 공무원들도 일찍 업무를 시작한다는 말에 헬싱키 대학을 방문하기로 한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수위만이 우리를 반긴다.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으니 총장실의 위치를 가르쳐 준다. 2층이란다. 2층에 올라갔으나 총장실이 보이지 않아 무작정 옆의 문을 두드렸다. 방안의 남자가 총장실의 위치를 가르쳐준다. 총장실 문을 두드리니 여비서가 앉아 있다. 거의 대부분의 교수들은 휴가를 떠났다고 한다. 아는 것도 없이 헛된 것을 가르치는 인간들이 있을 때 찾아가면 바쁘다고 하고 오늘 또 오니 휴가가서 없다고 한다. 멧세지를 총장에게 전해달라고 하고 그곳을 나왔다.

1층으로 내려와 수위에게 핀란드 기독교 추기경 관저 위치를 물으니 어렵지 않게 알려준다. 판란드에는 러시아 정교, 마틴루터교, 로마카톨릭교 등이 공존하고 있는데 각 종파의 가장 큰 교회와 추기경 관저가 비슷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추기경 관저를 먼저 방문하기로 했다. 그런데 입구가 잠겨져 있다. 건물 뒤로 돌아가 보았으나 아예 문이 없다. 안내판도 없다. 그래서 바로 옆의 마틴루터교 교회로 발길을 옮겼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니 안내 책자를 파는 중년의 여인만이 영어를 모른다며 웃을 뿐이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이것으로 핀란드 헬싱키의 일정의 사실상 끝이 아닌가 하는 여래님의 말씀이시다. 여래님께서는 미리 숙소로 들어가시고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가는 배편을 알아보고 시장을 보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 시작 전부터 계속 걱정이 되었던 여래님의 발이 편하지가 않으신 것같다. 양범이 준비해 온 상비약으로 소독을 해 드린다. 다음날 아침 탈린으로의 여행을 위해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7월 9일 수요일. 새벽 5시 30분 여래님께서 움직이는 소리에 잠을 깼다. 오전 10시 배라 조금 여유가 있으리라는 예상은 무참히 깨어진다. 정신 없이 세수를 하고 짐을 싼다. 우리가 지나간 흔적은 전혀 남기지 않는다. 7시부터 시작되는 아침 식사를 하던 도중 여래님께서는 지금 서둘면 여덟시 배를 탈 수 있을 지도 모른다시며 재촉하신다. 배 시간은 여덟 시와 열 시이다. 또 허겁지겁. 급히 길을 물어 물어 전동차를 탔더니 이리저리 도시를 둘러가고 있다. 바로 가면 5분도 되지 않는 거리를 10 넘게 걸렸다. 8시 5분 전에 터미널에 도착하니 표가 한 장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무거운 짐에 편하지 않은 발을 이끄시고 달려오셨지만… 하는 수 없이 예정대로 10시 배를 타기로 했다. 같은 배를 기다리던 리투아니아 여대생에게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에 대한 사정을 듣는다.

11시 20분 경 탈린 항구에 도착했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시내의 여행자 안내소까지는 30크로나 (1유로는 16.5 크로나 정도) 정도면 갈 수 있다고 한다. 택시 기사에게 요금을 물으니 대뜸 7유로를 내라고 한다. 흥정을 해서 40크로나를 내기로 했다. 잔돈 40크로나를 미리 준비해두라는 말씀에 헬싱키 항구에서 바꾼 130크로나의 돈을 보니 100짜리 한 장에 10짜리 세 장이다. 또 한번 야단을 맞는다. 돈을 바꿀 때에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어느 정도의 작은 돈을 바꾸어 두었어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반성과 서너 번의 추가 야단을 맞는다. 후진국의 경우, 미리 40이라고 정했다고 하더라도 큰 돈을 주면 잔돈이 없다고 때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100짜리를 주었더니 녹색 지폐 두 장과 분홍색 한 장을 준다. “No! No!”를 외치며 지폐를 보니 60이 맞다. 영국 지폐에 20짜리가 있어 20짜리 두 장에 10짜리 한 장으로 알고 No를 외친 것인데 가만히 보니 25짜리이다. 아무튼 다행이다.

서둘러 여행자 안내소로 들어섰다. 서너명의 안내원들이 앉아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친절했다. 우리를 대신해서 호텔이나 호스텔에 전화도 해 주고 버스표 열장을 한꺼번에 사면 한 장에 10 크로나  인 것을 7 크로나에 살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원래 그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고맙기까지 하다. 몇번의 연락을 취했으나 마땅한 숙소가 보이지 않는다. 호통이 시작되었고 양범은 약간 당황하기 시작했다. 여래님의 호통은 누구도 처음부터 익숙해질 수는 없는 것같다. 몇배 앞, 몇배 빨리, 몇배 많이 보시는 분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못난 이들은 감정만 상할 뿐이다. 결국은 많은 교훈을 얻게 되지만.

한참을 노력한 끝에 시내 중심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호스텔을 하나 찾았다. 주인이 러시아 사람인 모양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린다. 표를 사려고 여러 가게를 들러보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다. 길 한쪽으로 무작정 달려가다 보니 우리나라 시내버스 파는 것과 같은 창구를 가진 곳이 보인다. 안을 들여다 보니 버스표 같은 것이 보인다. 서로 통하지 않는 말로 손가락 열개를 펴서 가르키니 7이 적인 버스표 열장을 건넨다. 또 한잠을 기다려서야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타서 여러 사람에게 지도를 보이며 위치를 묻자 한 남자가 서툰 영어로 위치를 설명한다. 목적지에 버스가 도착했다. 숙소가 보이지 않아 버스표 파는 이이게 물으니 바로 뒷 건물이란다. 뒤로 돌아가 보니 저만치 호스텔 간판이 보인다. 호스텔 건물을 포함해서 주위 건물들의 모양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구 소련 시대 관련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건물들이다.

호스텔 프론트가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러시아 여자라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숫자를 써 가며 방 값을 흥정한다. 방값을 깎아 달라고 손짓으로 설명을 하니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젓는다. 하는 수 없이 그 가격에 만족하고 방을 보기로 했다. 다른 여자가 한 방으로 인도한다. 방문을 열었다. 그 순간, “윽!” 쾌쾌한 냄새가 거의 살인적이다. 뒷걸음질 치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방의 문이 열려있다. 그곳은 나름대로 깨끗해 보인다. 그 여자는 황급히 그 방의 문을 닫아버린다. 도저히 안되겠다고 하시니 다른 방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역시 냄새는 나지만 아까 방처럼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잠깐! 저거 뭐꼬?” 방 한가운데로 파이프가 세 개가 드러나 있다. 무심코 보면 무언가 장식을 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니 파이프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벽지를 발라놓고 꽃 바구니 등을 달아 놓았다.

해도해도 너무 하다며 시내도 돌아가자고 하신다. 이미 점심 식사 시간은 훨씬 지났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서 걸었던 거리에 식당이 많은 것을 보아두셨던 모양이다. 그 거리로 돌아가 중국 식당을 찾으니 다행히 한 곳이 있다. 배도 고프고 급한 마음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계란 볶음밥이 30크로나이다. 계란 볶음밥 3인분에, 브롱콜리랑 계맛살이 섞인 58크로나 짜리 요리를 하나 주문했다. 주문을 받던 웨이트리스가 그게 다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까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알겠다고 한다. 음식이 나오는 사이 여행자 안내소로 다시 뛰어가 탈린 내의 신문사의 위치를 묻고 호텔 관련 책자를 들로 돌아왔다. 10분 정도가 지났으나 음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우리 보다 늦게 들어 온 사람들은 이미 음식을 먹고 있다. 이상하게 생긴 그릇에 이상한 소리까지 나는 요리이다. 몇번을 항의하고 35분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조그만 그릇에 3인분의 계란 볶음밥과 요리가 나온다. 별로 시키지도 않았으면서 유세가 대단하다고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신문사를 찾아 길을 서둘렀다.

언제인가부터 모르는 길을 찾아 나설 때에는 평소 보다 훨씬 더 난감함을 느낀다. 젊은 우리들이야 상관이 없지만 예순이 넘어버린 연세에 불편한 발까지 이끌고 걸어야 하는 여래님께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실 것이기 때문이다. 양범이 한 여자에게 길을 물어 거의 확실한 위치를 알아냈다. 목적지 근처에 오기만 하면 그 다음 몫은 대부분 여래님 차지가 된다. 대뜸 어떤 문으로 들어서신다. 그러고 보니 문 위에 신문사 이름이 있다. 글도 잘 읽으시지 못하시면서… 서둘러 따라 들어가니 이미 리셉션의 여자에게 헬로우를 외치신 이후다.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이며, 에스토니아 사람들을 돕고자 왔으니 편집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한다. 여자는 여기저기로 전화를 해 보고는 신문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바빠서 아무도 나올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탈린 내의 여러가지 사정을 잘 아는 기자 한 명을 소개해 달라고 하자 모두가 바빠다고 한다. “나는 이 나라 사람들을 돕고자 여기에 왔다. 그런데 모두가 바빠서 나를 만날 수 없다고 하니 어떻게 하겠는가? 이 나라에서는 더 이상 내가 할 일이 없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Riga)로 가는 버스 터미널의 위치를 묻고 신문사를 나왔다.

적당한 교통편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 지나가는 중년의 여자에게 물으니 버스는 없고 전동버스나 택시를 타야 한다고 한다. 택시는 기본 요금이 25에서 35크로나 정도이다. 몇대의 택시가 지나간 후 한 대의 택시가 우리 앞에 서더니 대뜸 트렁크를 연다. 요금을 물었더니 70크로나라고 외친다. 무언가 말을 하려니까 여래님께서 “포티(40)!” 라고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이신다. 오케이라며 동의한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정말 가깝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유로 라인(Euro-Lines)은 매표소를 별도로 가지고 있다. 짐을 맡길 곳을 찾아 터미널 주변 이곳 저곳을 돌다가 한켠에 세워놓은 컨테이너를 발견했다. 컨테이너 안에는 중년의 여자가 앉아 있다. 가방 네개에 60크로나를 달라고 한다. 짐을 맡기고 리가행 티켓을 구입했다. 밤 11시 45분 버스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수퍼마켓을 찾아갔다. 프리스마 (Prisma) 라고 하는 곳이 저쪽 언덕 위에 있다고 한다. 또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20여분을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그 때까지 보아왔던 에스토니아 시내의 풍경과는 전혀 딴판이다. 유명 브랜드의 차들이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고 수퍼마켓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도대체 어떤 수입원이 있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켓을 가득 채우고 것인지 궁금하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급히 허기라도 채울 요량으로 빵 세개, 떠먹는 요구르트 세 통, 우유 세 통, 그리고 콜라 2리터 한 병을 샀다. 쇼핑 센터 내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저녁을 한다.

버스 시간인 저녁 11시 45분까지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아무 버스나 타고 가다가 교회가 보이면 내려서 방문하기로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상한 것은 버스를 타도 검사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도 일부러 검사를 받거나 하는 사람이 없다. 공짜로 탔다가 내리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우리도 7짜리 10장의 버스 티켓을 들고만 다니면서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다녔다. 한참을 기다리니 17번 버스가 와서 무작정 탔다.

버스 옆을 스쳐가는 시내 풍경을 보면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거리의 한 편은 새롭게 잘 지어진 건물들이 고급스럽게 늘어서 있고 다른 한 편은 금방 쓰러질 듯한 건물들이 폐허처럼 남아있다. 간혹 그 폐허 같은 건물들 속에 주차하고 있는 값비싼 브랜드의 신식 자동차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여러개의 교회들이 보인다. 버스에서 내렸다.

이런 교회들은 의례 정문을 잠궈두거나 열려도 아무도 없기 마련이다. 뒤로 돌아가니 벨이 달린 문이 있다. 벨을 누르니 한 중년의 여자가 고개를 내민다. 독일어는 알지만 영어는 모른다고 한다.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냐고 묻자 고개를 젓는다. 여래님께서는 영어를 알지만 모른 척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다른 교회는 어디있느냐고 물으니 시계를 가리키며 시간이 늦었다고 한다. 영어를 모른다고 우기는 것이 가상하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같은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돌아왔다. 터미널 내에 있는 지하 화장실로 내려갔다. 막 화장실로 들어가려는데 한 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그쪽을 쳐다보니 나이 많은 여자가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고 있다. 유로 화장실이다. 한국의 공중 목욕탕처럼 가운데 돈 받는데가 있고 양쪽으로 여자 화장실과 남자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4센티움을 내야 한다고 한다. 돈을 뒤지니 돈이 모자란다. 여래님께서 모자라는 돈을 들고 한국말로 이것 밖에 없으니 들여보내달라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림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밖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7주고 사 놓은 버스표 생각이 났다. 다시 내려가 표 한장 내고 들어가면 안 되겠느냐고 표 한장을 눈 앞에 내밀었다. 잠깐 보더니 고개를 힘차게 휘젓는다. 모두가 공짜로 타는 버스표가 왜 필요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프리스마(수퍼마켓)에 가서 볼 일을 보기로 했다. 걸어가면 20분이나 걸리는 거리라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이미 여덟시가 지난 시간이라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묻지만 영어도 통하지 않고 잘 아는 사람도 없다.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무작정탔으나 결국 옆으로 새고 말았다. 버스를 내려서 수퍼마켓으로 걷고 있는데 도중에 아파트 촌으로 보이는 장소 부근에 한산한 곳이 있어 다짜고짜 여래님께서 볼 일을 보신다. 양범도 따르고. 반 억지로 나도 동참을 한다.

짐을 맡긴 콘테이너의 주인이 10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였기 때문에 서둘러 밤새 먹을 것들을 구입했다. 터미널로 돌아와 짐을 찾고 벤치에 앉아 버스 시간을 기다린다. 저만치 한 무리의 외국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는지 모여있다. 다가가 리더처럼 보이는 남자 학생에게 말을 거니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고 다른 여자애를 부른다. 자기들은 국제 기독교 단체에서 벌이고 있는 러시아 아이들을 위한 자원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러시아로 간다고 한다. 애들을 돌보고, 같이 잠도 자고, 같이 먹고, 신에 대한 믿음도 나눈다고 한다.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결과를 맺게 될런지 정확하게 알고 행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들의 삶 속의 행동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자기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러시아의 상황도 잘 모르고 거기 아이들 개인개인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인가? 한참을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미국 남자애가 대화에 끼어든다. 유창한 영어로 제지를 하려는 것인지 말이 많다. 신에 대한 믿음이 실제 생활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는데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를 물으니 성경 속에 있는 구절만 끝없이 외우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끝이 없는 대화이다. 여래님께서 그만하라고 양범을 보내셨다.

11시 30분이 되자 러시아로 떠나는 버스가 출발한다. 자기가 망한 것도 비참한 일인데 순수한 러시아 애들까지 망치러 간다고 혀를 차신다. 슬픈 현실이다.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들어온다. 국제 버스라 약간은 기대도 했지만 그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좌석 번호가 자리에 붙어 있는데 33번과 34번 좌석이 없다.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기 때문에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곤란할 뻔 했다. 한 순간 황당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내 이렇게 저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이제 곧바로 리가로 떠나는가 보다 했더니 승객을 태우기 위해서 탈린 시내의 모든 여객선 터미널을 돌고 있다. 임시석까지 만드는 등 노력을 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서서 가게 생겼다.

버스가 출발한지 두시간여 지났을까? ‘Pärnu’ 시에 도착했다. 25분여를 정차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명색이 국제 버스인데. 방송으로 운전수가 무슨 말을 하니 남자 몇명이 버스를 내린다. 아마 차를 밀 모양이다. 잠시 후 버스가 몇번 멈칫 멈칫 하는 움직임을 하더니 시동이 걸린다.

한참을 달린 버스는 이번에는 국경에 도착을 했다.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승객 전원의 여권을 회수해간다. 삼십 여분을 기다리니 여권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국경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휴게소에서 또 한번의 정차를 한 뒤에서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한다. 실제 2, 3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6시간이나 걸려서 도착을 했다.

7월 10일 목요일. 새로운 도시에서의 새로운 새벽이다. 버스 터미널 내에서 여행자 안내소를 찾았으나 6시나 되어야 문을 연다.3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잠시 쉬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가까운 호텔에 가서 가격을 확인하시자며 재촉을 하신다. 라트비아의 화폐인 라트(LVL)은 파운드 보다 1.1~1.2배 정도 비싸다. 호텔도 여간 비싼 것이 아니다. 숙소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에 걱정부터 앞선다.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 안내소가 열리기를 기다린다. 6시가 되자 중년의 여자가 문을 열고 우리를 맞는다. 호텔이며, 교통편이며 여러가지를 묻는다. 라트비아의 물가가 에스토니아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안내 책자에 나와있는 호텔이며 아파트 랜트며 호스텔이며 거의 모든 곳에 전화를 한다. 그나마 가격대가 만족스러운 호텔 하나가 있어 그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싼 호스텔 한 곳도 알아두었다. 안내소 여자의 도움으로 지도 상에 위치와 버스편을 확인했다. 안내소를 나와 일단 짐부터 맡기기로 했다. 안내소 옆에 짐을 맡기는 곳이 있다. 처음 52 센티움(1,000 원)을 내고 이후 시간당 20 센티움을 부과한단다. 이것도 장난이 아니다. 어쩔 수 없어 짐을 맡기고 길을 재촉한다.

그런데 버스를 타는 곳까지 가는 것 자체가 문제다. 일단 초행길인데다 지하도를 두 곳이나 헤매어야 하고 오거리이기 때문에 정확한 버스 정류장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밤을 지샌 여행과 어제 아침부터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이다. 여래님께서는 발까지 편찮으신 상태다. 두 곳의 지하도 내에서 한참을 헤맨 후, 원하는 버스가 정차할 것으로 짐작이 가는 곳에 도착했다. 마침 벤치가 있어 여래님을 모시니 한 말씀하신다. “너희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 내가 울고 싶다 울고 싶어!” 몇번의 여행을 여래님과 동행한 바 있지만 처음 듣는 말씀이다. 황망하고 황송하지만 현재의 위치도 확신이 가지 않는다. 난감하다. 다시 한번 지도로 위치를 확인한다.

리가에는 버스에도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전기로 움직이는 버스, 즉 트롤리 버스라고 부르는 것이 있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버스, 즉 오토버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호텔로 가기 위해서는 트롤리 버스를 타야 하는데 현재 우리가 위치한 정차역 앞으로는 지나가는 전기선이 보이지 않는다.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도로 두개 너머 저쪽 정류장으로 가야 한다. 또 걸어야 한다는 말씀 조차 드리기 황송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참을 걷고 또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원하는 버스가 온다.

호텔에 들어서니 전화 통화 내용과는 사정이 다르다. 세사람에 50라트(10만원)를 달라고 한다. 더 싼 방은 없냐고 물으니 12라트(24천원) 짜리 방이 있다고 한다. 방을 보자고 했더니 한 사람이 안내를 한다. 에레비이트를 내리니 근사한 통로가 보인다. 통로를 한참 걸어가더니 한 문을 열고 나간다. 문을 통과하는 순간 여기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어디선가에서 맡았던 냄새가 가득하다. 방문을 열자 에스토니아 탈린에서의 방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50 라트 하는 방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것도 그렇게 훌륭한 수준이 아니다. 40 라트로 깎아 준다면 투숙하겠다고 했으나 절대 가격 인하는 없다고 못을 밖는다. 힘 없이 호텔을 나왔다. 지도를 보니 주위에 몇 개의 호텔이 보인다. 직접 방문을 해 보기로 했다. 허나 이것도 만만치가 않다. 호텔이 지도 상에는 있으나 실제로는 없다. 결국 말씀을 드려 마지막 남은 호스텔로 가 보기로 했다.

호스텔로 가려면 6번 트램(레일 위로 달리는 차)을 타야 한다. 또 한참을 걸어 트램을 탔다. 옆에 있는 승객들과 차장에게 몇번이나 확인을 하고 원하는 곳에 도착한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거리의 이름만 알고 있으면 지도로 목적지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이런 나라들에서는 지도만으로 특정 장소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여러 차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으면서 거의 2키로 정도의 거리를 가니 호스텔이 있다. Placis Hotel이다.

리셉션이 2층에 있다. 중년의 여자가 우리를 맞는다. 영어가 능통하지는 않지만 통하기는 한다. 오늘 당장은 우리에게 맞는 방이 없다면서 이리저리 살피더니 바로 옆방을 보여준다. 여기도 냄새는 나지만 그렇게 심한 수준은 아니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시설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고 부엌도 아주 만족스럽다. 여래님께서는 오늘 하루는 여기서 지내고 내일 다른 방으로 옮기시자며 짐을 찾아오라고 하신다. 일단 한 시름은 놓은 셈이다.

버스 터미널로 가는 버스 정류장를 물으니 지도가 그려진 호텔 명함을 준다. 찾아올 때 걸어온 반 정도의 거리에 오토버스 정류장이 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니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이 보인다. 짐을 맡긴지 세시간이 꽉 차는 시간이라 뛰어갔다. 짐을 맡기면서 받은 표를 돌려 주니 30 센티움을 달라고 한다. 아침에 있던 남자는 시간당 20 센티움을 더 받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60 센티움이어야 한다. 아마도 그 남자가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던 모양이다.

짐을 들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는데 저만치 Rimi라고 씌여진 수퍼 마켓이 보인다. 6개 35 센티움 하는 계란을 샀다. 정류장을 찾아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시간표 대로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조금 작은 버스가 한대 온다. 번호를 보니 호스텔 명함에 나와 있는 버스다. 운전수에게 호스텔이 있는 거리를 물으니 간다고 한다. 서둘러서 버스를 탔다.

리가는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과는 달리 차비를 아주 철저히 받고 있다. 일반 버스나 트램에는 차장이 있어서 일일이 표를 끊어주면서 차비를 받고 차장이 없는 버스는 운전수가 직접 차비를 받는다. 인접한 나라에서 이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니. 차비는 20 센티움으로 400원 정도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졸음이 몰려 온다. 아무리 눈을 감지 않으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시내로 올 때 보아둔 건물들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한참을 졸고 있으니 운전수가 자기 한테로 오라고 손짓을 하며 부른다. “Please come here!” 잠결에 무슨 일인가 하고 가 보니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 한다. 처음 버스를 탈 때, 어느 거리에 가느냐고 묻는 소리를 운전수 뒤에 앉은 할머니가 들은 모양인데 목적지에 도착해도 우리가 내릴 기미가 없이 졸고 있자 걱정이 되어서 운전수한테 전한 모양이다. “Thank you, Madam!”

호스텔에 도착을 하니 여래님의 예상 시간 보다 늦었는지 걱정이 되었다 하시며 반가이 맞으신다. 어제부터 근 하루를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셨으니 우선 밥부터 지어야 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계란 후라이, 김, 고추장, 그리고 밥이 전부다. 입맛이 반찬이라는 여래님 말씀을 실감하며 맛있게 식사를 한다. 오전 중에 호텔로 가는 길에서 큰 수퍼 마켓을 보셨다고 저녁을 위해 쇼핑을 하러 가시자고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서 보니 제법 큰 동네 수퍼를 본 터라 일단 거기로 안내를 한다. 일단 들어서고 보니 제법 크다. 양파, 꽁치 통조림 두 개, 콜라, 그리고 힘 없는 쌀 8인분용 한 통을 사서 호스텔로 돌아왔다. 방이 리셉션 바로 옆인지라 무척이나 시끄럽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피곤에 지쳐 시간을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저녁 일곱시다. 위도상 일곱시라 하더라도 한낮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양파를 까고 통조림을 열고 조금 남은 쌀로 밥을 짓고, 추가로 힘 없는 쌀도 3인분 뜨거운 물에 쪘다.

식사를 마치고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라운지에서 여래님께서 찾으신다. 영어를 하는 사람이 라운지에 있는가 보다. 설겆이를 끝내고 라운지로 나가니 여대생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여럿 앉아있다. 에스토니아에서 독일어 여름 학기 강좌를 듣기 위해서 왔다는 학생과 대화를 나누었다.

---- 테잎내용

오랜 만에 뜨거운 물로 오래 동안 샤워를 하고 곤한 잠을 청한다. 새벽에 여래님께서 화장실 가는 소리에 잠을 깼다. 화장실을 공통으로 사용하는 터라 약간 걸어가야 한다.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있자니 발걸음이 고르지 못하다. 절뚝거리시는 모양이다. 걱정이다.

 

7월 11일 금요일. 또 새로운 아침이다. 오늘은 리가 시내의 신문사와 대학을 방문해야 한다. 서둘러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한다. 날이 비가 올 것 같다. 먼저 라트비아 대학을 방문하기로 했다. 자유 기념탑(Monument of Freedom) 근처에서 버스를 내렸다. 대학 본관을 지척에다 두고 다섯명 정도 되는 사람에게 묻고 나서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총장실을 찾는데 대학생들도 영어가 서툴다. 라트비아 말로 총장이 렉토르(Rector)라는 것을 겨우 알아 내고 2층으로 올라갔지만 역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지나가는 여자에게 물으니 총장실 앞으로 인도한다. 문을 두드리니 한 여자가 안에서 전화를 받고 있다. 쳐다 보지도 않는다. 전화가 끝나기까지 한참을 기다려 사무실로 들어가 인사를 하고 방문 목적을 알리니 사람을 불러줄테니 기다리라고 한다. 이윽고 영어가 유창한 국제 관계 부서장인 여자가 자기 사무실로 인도한다.

어떤 일을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묻는다. 과학 계통 교수들과의 미팅을 주선해주었으면 한다고 하자 관련 학과들을 일일이 열거한다. 지구과학 계통 교수를 소개해 달라고 하자 몇 곳에 전화를 시도한다. 한 곳이 연결되었는지 언제 만날 것인지 묻는다. 바로 만나면 좋겠다고 하니 위치를 가르쳐 준다.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양범은 앞에서 길을 찾아 달리고 나는 서로 길이 엇갈리지 않도록 중간에서 달린다. 약속시간 11시를 10여분 지나서야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첫인상이 무척 순해 보이는 교수다. 지구과학 계열 학과장이라고 소개하고 커피를 권한다.

---- 테잎 내용

국제관계 부서 사무실로 급히 돌아갔다. 그 교수의 따뜻한 인사와는 달리 부서장 여자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하다. 교수가 추천했던 다른 교수와 연락을 취해 보더니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특별히 누구를 만나기를 원하는 지 물으면서 휴가철이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철학과 건물의 위치를 받고는 점심을 먹기 위해 서둘러 숙소로 돌아간다.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양범이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본 모양이다. 호되게 야단을 맞는다.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호통의 연속이다.

호스텔로 돌아오니 방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나는 식사 준비를 하고 여래님과 양범은 새로운 방으로 짐을 옮긴다. 싱글과 더블이 같이 연결된 방이다. 욕실과 화장실도 달려 있다. 30라트라고 한다.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계속 야단을 맞는다. 김 한 장 제대로 굽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계란을 찌라는 것을 잘못 이해해서 삶아 버린 것까지… 급히 식사를 하고 설겆이도 마치고 철학과와 신문사를 방문하기 위해 3시에 숙소를 나왔다.

철학과 건물을 찾으니 모든 교수들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지나가는 여학생 두명에게 물으니 휴가 중이라는 말만 할 뿐이다. 남학생도 한명 있다. 여학생들은 4학년이고 남학생은 3학년이다. 영어가 서툴지만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듯하다. 학생들이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해 본다. 철학을 3년, 4년 씩이나 배웠는데 철학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하는지 물으니 웃기만 한다. 철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우게 되면 철학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고사하고 혼돈만 더 생길 뿐이다라고 설명하니 철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대답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여학생들은 바쁘다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남학생을 붙들었다. 양범은 여학생들에게 받은 교수들의 연락처를 가지고 연락을 시도한다. 결국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신문사로 발길을 돌렸다.

대학에서 10분 정도를 걸어가니 Baltic Times라는 신문사가 있다. 이 신문사는 별도의 리셉션이 없다. 신문사가 작은 모양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한 여자가 용무를 묻는다. 편집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잠시 후 한 남자가 나온다. 영어가 유창한 남자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미리 밝히다. 자연과학학회는 철학과 생명 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지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라트비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한다. 라트비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에 대한 정보의 제공과 여래님과 여래님의 능력에 대해서 보도를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도움을 찾을 수 잇는 길을 마련해보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한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Baltic Times는 그런 일은 하지 않으며 사건 위주로 보도를 하되 돈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자연과학학회에 대한 보도는 할 수 없다고 한다. 돈이 되는 일은 하되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냐고 다시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한다. 더 이상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해서 그곳을 나왔다.

리투아니아로 가는 교통편을 확인하기 위해 버스 터미널과 기차역에 들렀다. 버스는 6 라트(만 2천원 정도), 기차는 8.4라트(만 7천원 정도) 라고 한다. 이렇게 오후 일정도 허탈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한다. 여래님과 양범이 시장을 보러 간 사이, 점심 때의 계란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네 개의 계란을 까서 열심히 저어 놓았다. 양파도 까 놓고 마늘도 다져 둔다. 시장을 보고 막 돌아오신 여래님께서는 계란은 손대지 말라고 하신다. 계란찜은 하지 말라시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는 수 없어 계란을 찌기로 했으나 방법이 잘못되어 타고 말았다. 참치 통조림에 이것저것 섞어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양배추를 삶았으나 식사가 끝날 즈음 다 삶겨져 내일에나 먹어야겠다.

식사를 하는데 핀란드 여자가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남자 친구와 여행을 하고 있단다. 애인이 아니고 그냥 친구라는데 장도 봐 주고, 밥도 해 주고, 맛사지도 해 준단다. 하지만 절대 애인은 아니란다. 그 남자와의 관계 등 이런저런 고민이 있는가 보다. 삶에 관해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저녁에 우리 방을 방문해달라고 전했다. 결국 그들은 방문하지 않았다. 또 하루가 끝이 났다.

 

7월 12일 토요일. 아침 6시 40분에 눈을 떴다. 오전에 라트비아의 종교를 찾아보기로 했다. 아침은 콘플레이크와 빵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9시 30분이 되어 자유 기념탑이 위치한 구(old) 리가로 갔다. 리가에 도착한지 사흘이 된터라 이제 지리는 어느 정도 파악된다. 버스를 내리니 바로 앞에 큰 교회가 있다. 교회 안팎에 많은 사람들이 옷을 차려입고 몰려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합창이 울려퍼지고 옷을 차려입은 애기들과 어른들로 꽉 차있다. 무언가를 팔고 있는 듯한 여자에게 물으니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교회를 나와서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로 가는 버스표 예매를 하고 다른 교회를 찾기로 했다.

유럽 전역에는 Euro Lines라는 버스망이 있다. 전날 문의하기로는 월요일 표는 많다고 했는데 오늘 다시 물으니 자기들은 다섯 장 밖에 팔지 않으며 두 장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국제 사무실로 가서 표를 사라고 한다. 나와서 한참을 찾다가 보니 국제 사무실은 앞에 들런 예매소 바로 앞에 있다. 쉽게 얘기해주면 될 것을 매우 불친절한 사람들이다. 예매를 하려고 들어가니 Euro Lines 티켓은 팔지 않는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자기들이 운영하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그 표를 세 장 예매했다. 여행이 시작된 후, 무언가를 살 때에는 반드시 사전에 물어야 하는 것이 있다. 60세 이상인 경우 할인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깜빡했다. 여래님께서 지적하셔서 물으니 할인이 된다. 여러번 겪었음에도 또 잊어버리고 말았다. 언제쯤 나아질런지…

표 예매를 마치고 또 다른 교회를 방문한다. 안에 들어가 영어를 할 수 있는 성직자를 찾으니 라트비아 말 밖에 하지 못한다고 한다. 도대체가 말이 통하지가 않는다. 여래님께서는 목표를 바꾸어 부동산 시세를 알아보자고 하신다. 날이 날인지라 부동산 사무실이 문을 닫았다. 여기도 주 2일 휴일이라고 한다.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조금 멀리 떨어진 정류장을 목표로 길을 걸었다. 가끔씩 물가를 확인하기 위해 가게들에도 들러보고 정류장 가까이에 시장이 있어 구경도 하고 저녁 반찬거리도 샀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마치시자 바로 라운지에 터를 잡으신다. 양범과 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 보기 위해 산책길을 나선다. 여래님께서는 소연 스님과 통화 중이시다. 산책길에서 본 라트비아의 모습도 에스토이나와 같이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보기에도 부러울 정도의 근사한 집을 지어 놓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오래되어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집에 사는 사람도 있다. 쓰러져가는 집의 창가에 꽃 화분이 아름답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라운지로 부르신다. 샤워를 마친 양범은 라운지에 앉아있던 스웨덴 여자애를 만나 통역을 한다.

 

7월 13일 일요일 아침. 늦으막이 일어나서 식사준비를 한다. 아침은 빵과 계란 후라이, 그리고 큰플레이크로 하신다고 해서 준비도 한결 간단하다. 식사를 하고 10쯤이 되어 다시 나가 보시자고 한다. 특히, 가볼 곳이라고는 교회 밖에 없다.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묻고 물어서 확인을 해 본 결과, 어제 갔던 그 교회가 러시아 정교에서는 가장 큰 교회(Cahtedral) 라고 한다. 양초를 팔고 있는 여자는 교회의 리더는 지금 예배를 진행 중이지만 그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성직자들이 있는 사무실 주소를 물어 받아 적었다. 그렇게 멀지 않아 걸어서 찾아갔다. 사무실 문은 닫혀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만치 다른 큰 교회가 여기저기 많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영어를 하는 성직자가 전혀 없다.

그렇게 걷다 보니 강이 보인다. 강둑 계단에 잠시 앉았다. 강 건너 빌딩 위에 LG의 광고판이 보인다.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왔던 길을 돌아가는데 거쳐왔던 한 교회 앞에 수녀가 몇몇 일반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헬로우!”를 외치시는 여래님. 영어를 진짜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영어를 하는 성직자를 찾으니 고개만 좌우로 흔들고 있다.

숙소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그간의 라트비아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정리를 하고 내일 떠날 채비를 한다.

 

7월 14일 월요일 아침. 5시 40분에 눈을 떴다. 여래님께서는 벌써 준비를 시작하셨다. 쿵쾅쿵쾅 이리저리 다니시면서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으니 더 자라고 하신다. 우리도 서둘러 준비를 하고 라트비아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라트비아 돈을 리투아니아 돈으로 바꾸었는데 잔돈이 86센티움(천 육백원) 남았다. 버스 터미널 바로 옆에 시장이 있어 남은 돈으로 과일이나 사기로 했다. 천도 복숭아가 좋아 보인다. 가격을 보니 1키로에 1라트가 조금 넘는다. 돈을 내 보이고 손짓 발짓을 해서 우리가 가진 돈 만큼만 사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양범이 7개를 봉지에 담아서 건네자 무게를 단다. 두개를 집어낸다. 양범과 나는 손가락 하나를 펴서 “원 모어, 원 모어(하나더 하나더)!”를 외쳤지만 소용이 없다. 자꾸 떼를 쓰자 욕까지 하는 눈치다. 돌아서는 수 밖에. 다른 곳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결국 천도 복숭아 5개를 사서 들고 와서는 인심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여래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림없는 소리라고 하신다.

버스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려는데 중년의 한국 남자 세명이 같이 갈 모양이다. 연세대 교수들인 모양인데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호텔을 어디서 묶었느냐고 물었더니 인당 45라트하는 싱글 룸에서 잤다고 한다. 식사도 일 인분에 17라트 하는 한국 식당에서 했다고 한다. 물가가 참 비싸다고 말을 건넸더니 그만하면 싸고 좋은 것 아니냐며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버스가 출발한다. 두어 시간을 달렸을 때 휴게소에 정차한다. 우리는 준비한 빵과 삶은 계란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차가 다시 출발하고 얼마 뒤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라트비아 입국 때와 마찬가지로 한 남자가 여권을 거두어 간다. 그 사이 화장실에 가려는데 돈을 받고 있다. 양범이 물으니 1달러를 내야 한다고 한다. 나 보고 돈을 내라고 하시며 여래님께서는 양범과 먼저 들어가신다. 돈을 받는 아이의 눈을 쳐다 보면서 화장실로 들어서니 아무 말이 없다. 강제로 돈을 내어야 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볼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한국 사람들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은 줄을 서서 돈을 내고 있다.

버스가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에 도착했다. 버스가 한참을 시내를 달리는데 리가에서와 같이 버스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필요한 돈을 더 환전을 했다. 작은 돈도 충분히 교환한다. 여행자 안내소를 찾으니 터미널에는 없다고 한다. 양범이 인터넷이나 리가의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소개 받은 빌니우스 내 세 개의 호스텔에 전화를 하니 방이 없다고 한다. 한 곳에서만 오늘 당일만 방이 있으나 내일부터는 없다고 한다. 이전에 거쳐갔던 사람들 이야기로는 방이 많았다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알 수 없다. 일단 하루라도 묶기 위해 터미널을 나섰다. 비가 내린다. 터미널 내 일하는 이에게 물으니 택시 기본료가 10리타스(4천원) 정도 한다고 한다. 저만치 정차하고 있는 택시로 달려가서 창을 두드린다. 식사를 하고 있다. 가격을 물으니 15리타스를 달라고 한다. 흥정을 해서 8리타스에 가기로 했다.

호스텔에 도착하니 비가 더욱 거세다. 영어를 모르는 주인 할머니가 밖으로 고함을 치고 전화를 하고 정신이 없다. 그러기를 몇분, 학생인듯 보이는 여자애가 온다. 호스텔 담 내의 건너편에 일반 가정 집에 빈 방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짐을 지키고 여래님과 양범이 방을 보러 갔다. 10분 쯤 지났을까 양범이 돌아와서 짐을 옮기잔다. 머물기로 한 모양이다. 일반 가정집의 2 층을 수리해서 빌려주고 있는 것 같다. 침대가 6개 있는 방에 셋이서 사용하기로 하고 인당 25 리타스에 흥정을 끝냈다. 인당 하룻밤에 만원 꼴이다. 결코 싼 물가가 아니다.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수퍼 마켓의 위치를 확인하고 비 오는 거리를 걷는다. 버스를 타고 큰 수퍼마켓에 가고자 했으나 도중에 괜찮은 가게가 있어 거기서 장을 보기로 한다. 웬만한 것은 거의 다 있다. 쌀, 생선캔, 물, 양파, 계란을 사서 돌아왔다. 반대쪽에도 다른 가게가 있다고 해서 여래님과 양범은 그곳에 가보기로 하고 나는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리가의 호스텔과 비교하면 취사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 조그만 가스통에 사용할 수 있는 노즐도 두 개 밖에 없다. 냄비도 없고 도마도 보이지 않는다. 개미도 기어다니고 먼지도 많다. 다른 한 방에 폴란드 학생들이 있다고 하는데 밥을 하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냄비가 모자라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아랫층의 주인집에 가서 큰 냄비 두개를 빌렸다. 양파를 까고 마늘을 빻고 계란찜을 준비하고 있는데 여래님께서 들어오신다. 아침에 콘플레이크로 식사를 해결하고 벌써 오후 다섯시가 넘었다.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생선 찌게, 참치 볶음, 계란 찜, 오이 피클, 구운 김. 이만하면 이런 상황에서는 진수성찬이다. 맛이야 입맛이 밥맛이니 문제 될 것이 없고. 쌀이 리가에서 산 쌀 보다 질이 영 떨어진다. 쌀겨도 많이 섞여 있다.

설겆이를 하고 휴식을 취한다. 방문할 대학과 신문사의 위치를 확인하고 방문 일정을 세운다. 잠을 청하려는데 창에 커텐이 없어 곤란하다. 10시가 넘었는데도 밖이 훤하다. 10시 반이 되자 가로등이 켜져 창으로 바로 보인다. 방을 개조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페인트 냄새가 심하게 나고 공기가 상당히 건조하다. 그래서 그런지 여래님 코가 막히셨다. 더운 물을 냄비에 받아서 바닥에 두었다. 곧 풀어지셨는지 진정이 되셨고 잠이 들었다.

 

7월 15일 화요일. 뒤척이며 하룻밤을 보냈다. 잠을 깨니 6시 반이다. 머리를 감고 아침 준비를 하려는데 따라 나온 양범이 너무 이르지 않느냐고 묻는다. 시계를 잘못 본 모양이다. 5시 반이다. 조금 빠른 아침이 되겠다. 메뉴는 어제 저녁과 동일하다. 식사와 설겆이를 마치고 양범과 둘이서 나가기로 했다. “나가서 당당하게 할 수 있겠느냐? 어디를 가든 항상 당당하게 행동해야 한다.”

다시한번 다짐을 하고 길을 나선다. 양범이 인터넷에서 찾아온 지도도 나름대로 정확했지만 작은 골목까지는 나와있지 않다. 서너번을 물어서야 라트비아 대학 본관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여자의 도움으로 총장실의 문을 들어서니 공간히 상당히 넓은 사무실 한 가운데 놓인 테이블에 늘씬한 미녀가 비서인양 앉아 있다. 총장을 만나 여래님의 멧세지를 전하고자 왔다고 하니 총장은 휴가를 가고 없다고 한다. “자연과학학회는 철학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학회장님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빌니우스에 와 계시다. 이곳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으며 오늘 총장과의 미팅을 주선하고자 왔다. 그러나 총장이 휴가로 부재 중이니 멧세지를 총장에게 전해달라.” 멧세지를 받은 비서는 총장에게 전하겠다고 하고 우리를 국제교류 분과로 인도한다. 국제 분과에는 세 명의 여자가 있다. 대학의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철학과나 생명 과학 관련 학과의 교수들을 만나고 싶다고 하니 휴가 시즌이기 때문에 아무도 없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나 누군가 있는지 확인을 해 달라고 하니 몇 군데 전화를 해 보고는 아무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잇는 능력과 지적 자산을 가진 사람이 찾아와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어 신문사의 위치를 지도에 확인받고 대학을 나왔다.

대학을 나와서 5분 정도를 걷자 저만치 건물에 ‘i’ 마크가 보인다. 여행자 안내소임에 분명하다. 부리나케 들어가 지도를 찾았다. 여행자 안내소에는 의례 그 도시의 지도를 공짜로 제공한다. 물어 보니 국영 안내소가 아니다. 지도를 사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비싸다. 다시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걸어 양범의 지도에 나와 있는 국영 여행자 안내소를 찾았다. 그런데 리투아니아에서는 다른 나라에서와는 달리 무료로 제공되는 자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단지 간략하게 그려진 지도만이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그나마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미리 찾아간 주소로 거리 이름을 확인하고 Kauno Diena 신문사에 도착했다. 팻말이 붙은 통로 안으로 들어가니 분위기가 스산하다. 오래 된 건물에 신문사의 위치도 정확하지 않다. 잘 보니 구석에 통로가 있다. 아래로 걸어들어가니 조그만 사무실이 하나 있고 서너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Kauno Diena 신문사가 맞는지 확인을 하니 맞기는 맞는데 본사가 아니라 지사라고 한다. 본사는 Kauna에 있으며 편집장도 그곳에 있다고 한다. 한 기자가 전화를 연결해 주어 편집장과 통화를 했다. 최고의 지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목적, 그리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신문사를 방문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여 편집장은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서 어떠한 실적이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도움이 되겠다고 한다. 이전에도 많은 단체들이 도움을 주겠다며 찾아왔으나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몰라 실패한 사례가 많다고 한다. 자연과학학회 회장의 능력과 원하는 바를 담은 멧세지를 보고 그 내용들을 확인하게 된다면 스스로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라 하니 알겠다고 한다. 전화를 걸어준 기자에게 편집장의 E-mail 주소를 받고 Kauno Diena 신문사를 나왔다. 첫번째 방문한 신문사가 지사라 조금 실망한 우리는 다른 신문사를 찾기로 했다.

주소를 보니 우리가 왔던 길에 있다. 다시 한참을 되돌아 갔다. Lietuvos Aidas 신문사 건물은 제법 그럴듯 하다. 3층으로 올라가 편집장을 찾으니 양복을 입은 흰 수염에 뚱뚱한 신사가 기다리라고 하더니 여자를 한명 데리고 온다. 언어 때문이다. 방문 목적을 이야기 하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일단 분위기는 좋다. 자리에 앉으니 남자 기자 한명과 아까의 여기자가 들어온다. 철학과 생명 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지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고 하며 멧세지를 전한다. 편집장에게  대화 내용과 멧세지의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데 편집장이 바쁘니 나중에 다시 와야 한다고 한다. 양범은 그가 멧세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몇번을 확인을 했으나 다 이해한다고 자신한다. 한 시간 뒤에 전화로 확인을 하기로 하고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다. 건물을 막 나서려는데 양범이 지도를 두고 왔다고 하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10여분이 지나서 나온 양범이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한다. 다시 올라갔더니 그 사이 남자는 편집장에게 이미 설명을 했고 편집장은 별 관심이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더우기 놀라운 것은 기사를 싣고 싶다면 돈을 내어야 한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 자기 나라 사람들을 돕고자 왔다는 사람들 한테 관심은 커녕 돈을 내어야 기사를 실어준다니. 어쨌든 결과를 빨리 알게 되어서 헛고생이 하지 않게 되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클라이페다(Kleipeda)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다음날 10시 35분 표다. 인당 41 리타스(1만 6천원 정도)이다. 그런데 세사람이면 합계가 123 리타스여야 하는 것이 124.5 리타스이다. 물어보니 예약이기 때문에 예약비를 내어야 한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숙소로 다시 돌아오니 오후 1시 20분이다. 택시를 이용하라는 말씀이 계셨지만 도보로 일정을 마쳤다. 도시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다. 하지만 제법 걸었는지 피곤한 다리가 꽤 무겁다. 점심 식사 준비를 한다. 처음에는 이런 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밥을 해 먹나 싶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전혀 불편함을 모르겠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시내를 둘러 보시자며 나가신다. 크고 화려한 건물은 모두 교회요 성당이다. 일반 건물들은 폐허처럼 대부분 쓰러질 것 같다. 그러면서도 물가는 상당히 높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회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짓는데 옆방에 있는 폴란드 애들이 돌아왔다. 우리 물건을 잘 챙기시라고 당부시다. 식사와 설겆이를 하고 클라이페다에서 스웨덴의 칼샴으로 갈 배를 예약하고 다음날의 여행을 위해 집을 챙긴다.

 

7월 16일 수요일.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머리를 감고 아침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오랜 동안 아껴 먹던 고추장도 다 먹고 나머지 들고 갈 수 없는 음식은 다 처리하기로 했다. 식사도 끝내고 여행 준비도 다 마치고 나니 일찍부터 서둘렀던 터라 시간이 남는다. 버스 시간까지 휴식을 취한다.

시간에 맞추어 터미널에 도착하니 앞 버스가 출발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는 듯 보이나 공산권에서 막 벗어나 돈맛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 모습이 역력하다. 시간이 되자 서둘러 버스가 들어온다. 짐을 싣고 짐칸이 닫힐 때까지 확인을 하고는 차에 올랐다. 색다르게 버스에는 조수가 있다. 스탈린 같이 멋진 수염을 하고는 커피며, 초콜렛을 팔고 있다. 커피 한 잔 하겠느냐고 묻는다. 마치 공짜로 서비스를 해 줄 것처럼. 하지만 어찌 속겠는가? 미리 준비한 빵과 물이 있다. 버스는 태울 수 있는 모든 사람은 다 태운다. 차장은 아예 차 바닥에 앉았다. 이름 모를 조그만 역에 정차해서 5분 휴식한 후 다시 출발한다. 네 시간여 만에 클라이페다에 도착했다.

버스 터미널에 있는 안내소에 물으니 여행자 안내소를 가르쳐 준다. 클라이페다에는 미니 버스가 유행인가 보다. 요금이 1.5 리타스라고 한다. 택시가 있어 요금을 물으니 10 리타스를 내라고 한다. 5 리타스에 가자고 하니까 안된다는 눈치다. 여래님께서 “Six!”라고 외치시자 오케이다. 터미널 안내소에서 여행자 안내소가 있다고 한 거리에서 내렸다. 그러나 안내소는 보이지 않는다. 길가는 학생에게 물으니 위쪽으로 한참 가야 한다고 한다. 한참을 가다가 지나가는 여자에게 물으니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내렸던 거리의 반대편에 여행자 안내소가 있다고 한다.

여행자 안내소에 들어서니 미국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무언가를 묻고 있다. 조금을 기다려 호텔을 찾는다고 물으니 호텔 값이 장난이 아니다. 가장 싼 호텔이 200 리타스라고 한다. 그것도 250짜리를 최대한 깎은 것이란다. 일단 미리 예약한 배 표를 사기로 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여객선 예매소가 있다. 배표가 예상 보다 훨씬 비싸다. 아마도 배편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배편이 그것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배표를 파는 여자에게 물으니 가까운 곳에 아주 싼 호텔이 있다고 한다. 다행이다 싶어 방문을 해 보기로 했다. 호텔이 좋지는 않지만 하룻밤 지내기는 괜찮다. 가격을 물어보니 350 리타스를 내라고 한다. 아무 말도 못하고 호텔을 나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어 여행자 안내소에서 소개한 호텔에 묶기로 했다. 실망한 표정으로 나왔으나 다시 돌아갈 때에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해야 한다. 안내소 여직원의 소개로 배 터미널 가까운데에 있는 호텔에 예약을 하고 찾아가기로 했다.

미니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여래님께서 호텔 이름을 물으신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여러 장의 쪽지가 나온다. 갑자기 당황하다 한 소리 듣는다. “저렇게 어리석어서야 무슨 일을 하겠나?” 다시 안내소로 달려간다. 여직원에게 물으니 이름을 적어주는데 다시 보니 이미 받아 적은 쪽지를 가지고 있다. “Vetra Hotel” 어쩔 수 없다. 지나가는 친절한 여자의 도움으로 미니버스 운전수에게 우리가 어디에 내려야 하는 곳까지 일러준다. 한치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는다.

배 출발 시간이 아침 7시라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소파 가운데가 내려 앉아서 잠자리가 불편하다. 뒤척이다 밤을 지샜다. 미리 4시 30분에 택시를 불러 두었는데 제 때에 올지 걱정이다. 준비를 하고 내려가니 입구가 잠겼다. 사람을 깨워 문을 여니 택시가 와 있다. 터미널에 일찌감치 도착해서 Check-In을 하려는데 우리 앞에 있는 학생들 무리가 곤란한 일을 당하고 있다. 아침 표를 예매했는데 저녁 표라고 예매 창구의 여자가 이야기 하는 모양이다. Check-In을 하고 출국 수속을 하러 간다. 우리가 첫번째다.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출국 수속을 하는 곳에 직접 업무처리를 하는 여자 둘과 관리를 하는 남자가 한 명이 있다. 모두 군복을 입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출국은 여권의 사진 확인만 하고 통과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들은 여권의 모든 폐이지를 공부하듯이 한장 한장 넘기면서 보고 있다. 10분이 넘게 걸려서 겨우 통과를 하고 버스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는데 아까의 여자가 다시 와서 여래님 여권을 다시 달라고 한다.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냐를 따지고 묻자 남자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겠느냐고 윽박지른다. 이런 경우 여래님께서 한국말로 하시는 말씀을 다 통역하기란 힘들고 통역 보다도 여래님의 태도에 상대방들은 일단 질리기 마련이다. 관리하던 남자는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영어를 잘 하는 매표소의 여자를 불러온다. 무엇이 문제이냐고 묻기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사람을 출국 심사대에서 10분 이상을 붙들어 두며 그것도 모자라 여권을 다시 보자는 것이냐며 따졌다. 그랬더니 이 여자도 스웨덴으로 가고 싶지 않나며 오히려 큰소리다. 여래님께서 지금 우리를 협박하는 것이냐라고 묻자 뜨끔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가진 잡지에 이 사실을 실어야겠으니 이름과 싸인을 해 달라고 하자 버스 운전사를 불러 버스를 출발시킨다. 서둘러 배로 보내라고 했는가 보다. 소련 연방에서 독립하여 자유 국가로 운영되고 있으나 아직도 관료주의며 권위 의식은 살아있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위협이고 협박이 통하겠지만 여래님께는 어림없는 일이다. 아마 저들도 느낀 바가 있으리라.

오전 7시에서 스웨덴 시간으로 저녁 8시까지 14시간의 배 여행을 해야 한다. 아침 식사가 제공된다는 예상치 못한 기쁜 소식도 있었다. 물론 제공되는 음식이래야 소세지와 계란찜, 그리고 양배추 샐러드가 전부였지만. 갑판에 나가니 아까 배표 때문에 고생하던 학생들이 나와있다. 가만있을 여래님이 아니시다. 한편에 앉은 학생들에게 말을 거니 마침 미국 여자 학생이다. 여래님 말씀으로는 배에 탄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이미 성령이 내린 모양이다. 이런 경우, 늘 그렇듯 소 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다.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으나 소용없다는 사실만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스웨덴 시간으로 오후 8시가 되어 배가 항구에 도착했다. 서둘러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유럽 국가의 경우는 대부분 EU 회원국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의 입국 심사를 별도로 행한다. 우리쪽 입국 심사를 맡은 사람은 나이 많은 여자이다. 그런데 여자가 어째 좀 이상하다. 우리가 앞에서니 덜덜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리고는 우리가 이틀 뒤에 영국에 간다는 말을 듣고는 영국 입국 시의 비자 문제를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 다른 사람들이 입국 심사를 다 마칠 때까지 뒤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도대체 정확한 이유가 없다. 한 시간여를 기다리게 한 뒤 아무 설명도 없이 통과되었으니 나가라고 한다. 여래님께서는 당신하고는 안 되겠으니 상관을 부르라고 한다. 한참을 기다리니 상관이 나온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한 시간 이상 기다리게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가를 물으니 그런 경우가 많다는 말만 하고 있다. 그러면 담당자 기분 대로 이유도 없이 사람을 몇시간이고 잡아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냐라고 물으니 화를 내면서 출구는 저쪽이니 빨리 가라고 되려 난리다. 어이가 없다. 여래님 말씀으로는 나이 많은 여자가 문제가 있다고 하신다. 앞으로는 여행이 점점 힘들어지실 것 같다고 하신다. 신을 가진 사람들이 이유없이 우리의 일을 방해하고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렇지 않아도 고생스러운 여행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아무도 없다. 두 시간을 넘게 기다린 지안과 지안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시간을 보니 9시 30분을 넘고 있다. 이것으로 이번 여행도 사실상 끝이 났다. 양범의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여행 도중 여래님께서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본다. “비록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들의 진실에 무관심해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나의 여행들은 그것 자체가 후세에 큰 가르침으로 남을 것이다.”

발트해 연안국 기행문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