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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방문기

최부군

 

11월3일 00:13

인천공항 107번 게이트 앞에서 암스테르담행 00:55 비행기를 기다린다. 두번을 갈아타는 여행인데 벌써 피곤하다. 여행을 대비해서 사전에 준비 운동도 했었는데... 여래님은 어떠셨을까? 지금의 내 나이 보다 더 많은 연세였을때에도 정정해보이셨는데.

처음혼자 떠나는 여행이어서 그런지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다.

나는 당당하다. 나는 당당하다.

내가 있는 곳이 당당하고, 내가 하는 일이 당당하다. 나의 삶이 당당하고, 내 자신이 당당하다.

 

11시간 30분의 비행을 마치고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암스테르담 게이트 C15 앞에 앉았다.

좋은 여행이 되려나? 옆좌석에 앉았던 이는 서른 두살의 회사원이었다. 인상이 밝고, 대화도 잘 통했다. 사회가 물질 만능주의와 외모 지상주의에 휘말려 인간의 정신이 망해가고 있다는 말에 평소 자신도 나누고 싶었던 주제라고 했다. 연락처를 주고 받고, 후일에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

스페인까지는 세시간 정도 걸리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11월 4일 화요일

본격 출동의 첫째날. 밖은 의외로 쌀쌀하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더 낮다. 십오분 정도를 걸어서 작년에 알베르토가 만났다는 두사람의 사무실에 도착한다. 다행히 한 사람이 있다. 영어 액센트가 거의 미국식이다. 물어보니 미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고 한다.

철학의 정의를 물어보니 해답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라도 찾은 구체적인 해답이 있느냐고 물으니 하는 답이 뜬 구름잡기이다. 옳고 그름은 따로 없고 섞여 있는 중립적인 것들이 있을 뿐이란다. 세월호 예를 드니 그것은 나쁘다고한다. 결국 현재의 철학이 하는 일이란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고작이다. 절대적 진리의 존재도 부정하며, 개인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만법귀일의 법칙과 덧셈을 이용하여 법칙은 하나이나 들어가는 수에 따라 답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왜 이 일을 하는지 물어서, 가장 소중한 나 자신을 위하는 유일한 길이 남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니 좋아한다. 연락하자고 하고 사무실을 나온다. 연락을 할까? 시차 때문에 일찍 일어나 만든 김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대학에 식당이 없다.

11월 5일 수요일

두시 반에 잠이 깼는데 목이 너무 아프다.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다섯시 반에 샤워를 하고 식사 준비를 한다. 점심까지 준비해야 하니 할 일이 많다. 하루는 샌드위치, 하루는 김밥으로 정했다. 살라망카는 유명한 교육 도시로, 큰 대학은 두 곳이 있다. 오늘은 기독교 계통의 뽄띠삐띠아 대학이다. 일단 철학과 교수를 만나기로 하고 4층으로 오르니, 사무실 한 곳이 열려있다. 알베르또에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고 농담을 하며 노크한다. 나이든 히부리어 신부 교수다. 목이 아파서 질문의 답을 듣고 간단히 질문만 하려 했지만, 사설이 너무 길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좋은 부분은 있단다. 근본은 다 좋다는 뜻인듯 하다. 교육을 통하여 모든 나쁜 사람을 좋게 만들 수 있단다.

전과자를 예를드니, 그런 사람들은 속에 나쁜 병같은 것이 들어 고칠 수 없단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하려고 하니 수업이다. 사무실을 나와 포스터 하나를 붙이고 약국을 찾아간다. 입술용 스틱과 목보호용 사탕을 산다. 워~ 비싸다. 구천원이다. 대학이 이상하다. 학생도 얼마없고, 보이는 아시아계 학생들은 거의 스페인어를 배우는 중국애들이다. 지나는 길에 슬쩍 벤치에 앉은 여학생에게 말을 거니 반가워한다. 고고학자가 되고 싶단다. 미래의 꿈을 실현하자면 그에 합당한 원인을 지어야 한다고 하니, 자기는 할 수 있단다. 그러면서 수업시간이라고 서둘러 가버린다. 허망해하다가, 살라망카에 있는 성당에 신부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성당은 관광용이고, 거처는 따로 있다. 한참을 걸어 가니 신부들 거처가 있다.

안내원이 나이든 신부를 원하는지, 젊은 신부를 원하는지 묻는다. 당연히 젊은 신부지. 십여분을 기다리니 한 사람이 온다. '헐 안 젊은데?' 그 신부는 그 곳 숙소의 관리자로, 초등학교 교사를 은퇴한 후이다. 나이는 일흔둘. 그는 그 곳에서 가장 젊은 신부이다. 대학생용 메세지를 보고, 하나하나 답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근본적인 일들에 관해 생각해보라는 의도인데. 교육자든, 종교가든, 정치가든, 다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다는데 왜 사회는 어두운지를 물으니, 첫째 이유가 애들이 제멋대로 행동해서 그렇다고 한다. 애들이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부모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다고 한다. 부모가 왜 잘못 가르치냐고 물으니 기분이 나빠지는지 한시간이나 지났다며 피곤하니 가 달란다.

쫓겨나오니, 배가 고파 광장벤치에서 점심을 먹는다. 속이 계란, 참치, 오이, 그리고 김치로 만들어진 샌드위치다. 목이 아픈데 음료수는 커피다. 먹고 있으니 눈이 먼듯 보이는 할머니가 젊은이의 부축을 받고 걷다가 우리에게 햇살이 좋은지를 묻는다.

조금 전의 가장 젊은 신부에게 물어 진짜 젊은 신부들의 거처를 알아내었다. 근처에 거의 도착했는지, 알베르또가 지도를 보고 있다. 길가에서 학생인듯 보이는 애가 담배를 피다 지나가는 친구들과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한 곳으로 들어가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찾는 곳이다.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문을 열어준다. 어제 방문했던 살라망카 대학의 철학과에 다니는 학생이다. 자원해서 성당의 일을 봐주고 있다고 한다. 신부의 주소를 얻고 나가려는데, 알베르또가 이 학생은 그냥 두고 가냐고 쳐다본다. 헙! 그냥 갈뻔 했다. 몇마디 인사를 하고는 철학과 학생이라 철학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철학이 사물의 의미를 찾는 것이란다. 그래서 지금까지 찾은 것 하나만 말해보라고 하니, 믿음이 곧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믿음이 농사를 잘 지어주고, 수학 문제를 잘 풀어주고, 삶을 잘 살게 해주냐고 물으니 그것은 아니란다. 하지만 여전히 믿음이 인생이란다. 아르바이트가 하기 싫지만, 믿음이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할 수 있는 이유를 주는 것과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 그제서야 수긍한다. 좀더 이야기를 하려는데 수업 시간이라 간다고 한다. 목이 너무 아프다. 조금 일찍 들어가 밀린 글이나 쓰고 일찍 쉬어야겠다.

바람 막이가 있는 벤치에서 자르지 않은 김밥을 베어문다. 준비해온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면서 기회가 되면 말을 붙이기로 한다. 약간 떨어진 건물 앞에 학생들 무리가 있다. 무리에서 떨어진 세명이 있어 말을 붙이니 선뜻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영어가 유창하지 못하여 대화를 이끌기가 쉽지 않다.

철학과 학생들이라 아는 것도 많다. 제대로 대화를 해보려고 하니 수업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대화하기로 한다.

캠퍼스에 이공계가 없어서 알베르토에게 물으니 따로 캠퍼스가 있다. 알고보니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도중에 두 학생이 건물에서 나온다. 그들이 나온 곳은 기숙사다. 무심히 걷고 있는데, 그 학생들이 오래되어 보이는 벽을 따라 만들어진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저거다 싶어 알베르토에게 따라 가자고 한다. 헉헉. 한참을 오르니 캠퍼스다. 건물 안에서 포스터 붙일 곳을 찾는데, 아까 그 학생들이 맞은 편에서 걸어온다.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케이팝을 모른다. 케이팝이 유럽에도 인기가 있다는 것은 헛소문인듯 하다. 두 학생 모두 컴퓨터 공학 전공이다. 공대생들과는 대화가 쉽다. 사실 확인이 쉽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대학원 때의 일화를 인용하여, 사실도 거짓말을 하지않는다고 설명하니 아주 좋아한다. 명함을 주며 꼭 연락하자며 당부한다. 학교 내의 다른 게시판을 찾아 포스터를 붙이고 나오니, 아까 그 학생들이 저만치 길건너에서 걸어온다. 손을 흔드니 같이 흔들어준다. 마음도 흔들렸을까? 숙소로 가는데 목이 칼칼하고 입술이 말라버렸다. 바람이 차서 그런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11월 6일 목요일

목 상태 때문에 약간 늦게 하루를 시작한다. 첫째날 방문했던 살라망카 대학으로 간다. 붙여놓은 포스터를 확인하면서 사람들을 찾는다. 학생들을 위한 건물이 잠겨있는데, 한 여학생이 들어가려 한다. 급히 붙잡아 세운다. 포스터 내용을 보여주며 올바른 삶에 관해 이야기하니, 관심이 있다고 한다. 내일이 시험이라 시험이 끝나면 연락하겠다면서 헤어진다. 그런데 대화 중간에 전화가 왔는데, 늦게 받아서 끊겨버렸다. 서둘러 남겨진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생물학과에 다니는 여학생이다. 한시에 만나기로 하고 어제 붙이지 못한 게시판들에 몇개의 포스터를 붙인다. 한시가 되어 약속 장소인 생물학과 입구에서 기다니는데 늦다. 알고 보니 입구가 두개다. 길이 엇갈린 모양이다. 전화 통화로 결국 만나게 되었는데, 저만치서 아주 힘든 얼굴을 한 여학생이 자전거를 끌면서 다가온다. 근처의 카페를 찾아 들어가 앉는다. 아프단다. 병원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고. 몇가지 물으니 전형적인 신 관련 문제인 것같다. 최선을 다해 여래님께 들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전해주고, 원하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건넨다. 힘이 빠진다. 자신에게 문제나 고통이 없으면, 삶,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첫번째 전화라 잔뜩 기대했었는데...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했던 후안 까를로스에게서도 초대에 대한 아무런 답이 없다.

인문계 캠퍼스를 떠나 이공계 캠퍼스를 가본다. 포스터 확인하며 둘러 보지만 사람들이 없다. 추워서인지 수업인지 다들 어딘가에 숨어있나 보다.

살라망카가 유명한지 관광객이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별로 대단해 보이는 것도 없는데. 감기 증상이 더 심해졌다. 그 여학생을 만난 이후로 머리도 지끈지끈 쑤신다. 열도 난다. 일찍 쉬고 싶다. 이거 혹시 내가 무언가에게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11월 7일, 금요일

한국에서 가져온 점퍼가 하나 뿐이고, 겨울용이 아니라 쇼핑을 사기로 했다. 버스로 십오분 정도, 도보로 사십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걷기로 한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 오후에 자리잡을 곳을 미리 보기위해 방향을 바꾼다. 자리를 찾다가 경찰이 보여 혹시나 허가가 필요하지 물어본다. 경찰서로 가서 허가를 받아야 한단다.

경찰서의 담당관에게 물으니 들려오는 답변이 당황스럽다. 허가를 받으려면 신청을 해야 하는데, 십일이 걸린단다. 살라망카에서는 사일 후에 떠날텐데. 좋은 일을 하러 왔으니, 절차만 말하지 말고 융통성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없겠냐고 하나 듣지도 않는다. 길에서 전단을 나누어 주는 것도 안되냐고 하니 처음에는 돈을 맞기면 된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안된단다. 열이 받아서 목소리가 커지는데, 살찌고 기름끼가 자르르한 키큰 이가 온다. 상관인가 본데 한마디로 노우란다.

열은 받지만, 그대로 질 수는 없다. 일단 복사집에 가서 대학생들용으로 만든 포스터를 개조해서 A5 크기의 종이 양면에 영어와 스페인어를 인쇄했다. 점심 먹으러 돌아오면서 조그만 광장에 전을 펼치기로 한다. 점심 준비를 하는데 또 전화가 온다. 페루 사람이다. 다싯시에 만나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경찰을 피해서 외진 곳에 자리잡아서인지 사람도 적고 말 거는 사람도 거의 없다. 지나가던 노부부가 하는 일은 있냐면서 되려 걱정을 해준다. 허가를 안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면서 떠난다. '씨 띠에네스 띠엠뽀, 뽀르빠보르 씨에를로(시간이 있으면 저거좀 읽어봐주세요.) 두어명 잠시 읽다가 가버린다.

다섯시 약속시간이 되어 약속 장소로 가니 남아메리카인처럼 보이는 이가 있다. 

약대 졸업반 이라는데 포스터 내용이 평소 자신이 생각하던거란다. 졸업생인데 취업 걱정을 하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제칠안식교 신자다.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의 요구에 몇번의 시도를 하다 정곡을 찔리자 당황해한다. 하지만 이내 성경 내용을 되풀이한다. 집에 가서 증거를 찾으면 다시 보자고하고 한시간 반만에 헤어진다. 집에 와서 빰플렛 장수를 세어 보니 백두장이다. 백 구십 여덟장을 나누어주었다. 오늘 저녁은 된장찌게다.

11월 10일, 월요일

이런저런 생각에 몇번이고 잠이 깬다. 살라망카에서 활동하는 마지막 날이다. 9시에 집을 나선다. 오늘 날씨는 맑고 바람도 없어 좋다. 닥치는대로 교수들의 문을 두드려 보기로 한다. 너무 일러서 인지 대부분 문이 잠겨있다. 거의 포기하려는데, 한 문이 열린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논리학 여교수다. 뭔가 많이 반기는듯 한데, 한국에 아들이 살고 있다. 한국에 방문했을 때의 사진도 몇장 걸려있다. 대화가 잘 되려나? 오랜 독재로 인한 사회의 부패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나라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어도. 학생들은 이미 어른이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으며, 단지 자신의 과목인 논리학을 기르칠 뿐이라고. 좋은 학생들을 길러내고 있다고 해서, 결과는 그와 다른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기분이 나빠지는 모양이다. 세미나 준비로 바쁘다고 바이바이다. 무거운 발걸음이 더 무거워진다. 저멀리 벤치에 한 남자가 앉아있다. 책 편집 일을 하는 하비에르다.

여친을 기다린단다. 벌이가 만족스럽지가 못한 모양이다. 메세지를 보여주니 질문을 한다. 진리는 각자마다 다르다고. 더하기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각자가 가진 숫자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하비에르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친이 와서 명함을 주고 헤어진다.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마드리드행 버스를 알아본다. 직행은 24유로이고 완행은 14유로이다. 싸지만 짐을 조심해야 한다. 지도를 보던 알베르토가 근처에 교회가 있다고 한다. 가보니 없다. 막 승용차에 타는 이가 있어 물어보니 십오분쯤 가면 비슷한 곳이 있단다. 그곳은 카톨릭 계통의 기숙사다. 안으로 들어가니 젊은 남자가 있다. 기숙사 사감이자 교육자이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제대로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자신들은 충분히 잘하고 있고, 부정부패로 가득찬 사회에 대한 큰 불만도 없는 듯하다.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카톨릭계통의 사람들은 독재자 프랑코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쁘다며 작별을 고한다.

며칠전 바람막이가 있는 벤치에서 토스트를 먹는데, 금요일에 만났던 페루 출신 학생이 걸어온다. 영어 수업을 받는단다. 회비가 시간에 비해 꽤 비싸다. 페이스북에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남겼다고 한다. 점심 후, 아까의 벤치로 가니 또 한 사람이 있다. 신체단련 강사과정 4학년인 이마놀이다. 단련이란 신체에 국한시키지 말고 정신도 같이 훈련시켜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 좋아한다. 메세지를 주며 페이스북을 통하여 연락하자고 한다.

마지막으로 카톨릭계통의 뽄띠삐띠아 대학의 철학과 교수들을 만나보러 간다. 대부분의 문들이 닫혀있고, 지나가던 교수는 바쁘단다. 그런데 저만치 한 방에서 학생을 마중하는 교수가 있다. 종교철학 교수다. 종교 계통의 사람들을 만날 때는 특히 더 경계를 해야 하는데, 방심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반격이 힘들다. 속으로 집중을 외치며, 말의 모순을 찾아간다. 신이 곧 진리라는 말에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진리의 정의를 말하면서 왜 진리가 들어가냐고 물으니 좋은 지적이란다. 구체적인 예시의 요구에도, "인 헤네랄. 인 헤네랄 (일반적으로)" 만 외치고 있다. 끝까지 집중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바쁘다며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세련된 태도로 좋은 대화였다고 마무리를 한다. 아주 혼났다. 좋은 경험이다. 종교인을 만날 때는 미리부터 경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살라망카도 이제 마지막이다. 살아서 다시 못올거라며 알베르토를 보고 웃는다.

11월 12일, 화요일

마드리드에서의 첫째날이다. 처음 가는 곳은 콤플루텐세 대학이다. 지하철을 이용한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슷한 것같다. 바쁜 걸음걸이와 굳은 표정들. 지하철을 나와 대학쪽으로 걷는데, 서울에 비해 숲이 많다.철학과 건물에 도착해서 몇 장의 포스터를 붙이며 어설렁거린다. 조그만 공간에 학생 둘이 물건을 옮기고 있다. 한 학생에게 말을 거니, 영어가 유창하다. 스페인 사회 속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 물으니,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일을 배워야 한단다. 근본적인 사실을 물었으나,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의 견지에서 생각하고 있다. 지적을 해주고자 하지만 수업이라 시간이 없단다. 끝나는 시간을 물어 4시 10분 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다. 건물에서 나와 건물을 돌아가는데, 앞에서 세 명의 학생이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고 있다. 법대생들이다. 오늘 학생들을 만날 때에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를 기본 소재로 대화를 이끌어간다. 무엇을 배워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쳐야 할 첫째는 지식, 혹은 정보의 전달이다. 이는 세상의 거의 모든 교육 단체에서 행해지고 있다. 물론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는 경우도 많다.

두번째는 지혜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시력의 예를 이용한다. 시력의 수준에 따라 볼 수 있는 거리가 달라지듯, 지혜의 수준에 따라 사물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달라진다. 처음에 관심을 보이던 학생이 무관심해지는가 하면, 별관심이 없다가 진지해지는 학생이 있다. 사실에 대한

꾸준한 의문과 확인을 통하여 지혜를 키울 수 있다. 좋하하는 듯하다. 제발 잊지말고 연락하자고 부탁해 본다.

철학과 건물을 나와 법대 건물로 향한다. "행복해지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자원 봉사활동을 할 학생을 모집하는 포스터가 있다. 심심하던 차에 시비라도 좀 걸어볼까? 위치가 이상하다. 가는 도중에 학생회가 있다. 몇개인가 방이 있는데, 통로 전체가 어둡다. 어두운데 한 여학생이 앉아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 남학생이 문을 열어 그 방에 자리잡고 앉는다. 같은 질문이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속을 것을 알면서도 기대를 해본다. 살라망카는 꽤 추웠는데, 마드리드는 따뜻하다.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멀리 떨어진 캠퍼스로 이동한다. 텔레커뮤니케이션 학과 건물이다. 포스터를 붙이고 나오는데 세 명의 학생들이 잡담 중이다. 지식과 지혜에 관한 이야기에 한 학생이 별관심이 없다면서 스스로 잘 할 수 있단다. 백퍼센터 확신할 수 있느냐고 하니 그건 아니란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며 연락을 당부한다.

몇개의 건물에 포스터를 붙이고, 피곤해져서 벤치에 앉아 알베르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4시가 되어 오전의 약속 장소로 간다. 약속한 방앞에는 스페인에서 대학을 상업화한다는 기사가 다수 붙어 있다. 결국 그는 오지 않는다. 역시나 하며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11월 13일, 목요일

오늘은 식사 당번이라 조금 일찍 일어나야 한다. 한국에는 오늘 수능날인데. 잘들 하겠지 바래보며 아침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알베르토가 방문할 대학을 정리하고 있다. 오늘은 어제 방문한 콤플루텐세 대학 바로 옆에 있는 폴리테크닉 대학이다. 이공계 학과가 주인 대학이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인지 학과 건물들은 없고, 기숙사들 뿐이다. 무슨 기숙사가 이렇게 많지? 지나가는 이가 알아서 잘 가르쳐 준다. 알고보니 어제 방문한 텔레커뮤니케이션 학과는 컴플루텐세 대학이 아니라 폴리테크닉 대학이다. 삼림학과 중심의 캠퍼스는 재미있다. 대형 금붕어를 처음 본 알베르토는 사진 찍고 난리다. 어제와는 달리 구름이 짙어 어둡고 약간 쌀쌀하다. 학생들도 안 보인 다. 어제 방문했던 텔레커뮤니케이션 학과로 간다. 한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어 들어가니, 건물이 또 있다. 네명의 학생이 놀고 있다. 말을 거는데 거부감이 없어서 좋다. 학생으로서 배워야 할 것들에 대한 질문은 반응이 좋다. 자신과 자신의 삶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이야기도 진지하게 듣는다. 명함을 건네며 연락하자고 한다.

한참 떨어진 곳에 새로 지어진 컴퓨터 공학과가 있다. 게시판이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식당 앞의 한 곳밖에 붙이지 못한다. 축구를 하지말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는 곳에서 공을 차고 있는 애들이 있다. 그 옆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세명의 학생이 있어 말을 걸어본다. 마지못해 대화에 응해주는 티가 역력하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야한다. 기계 공학과를 포함한 몇 개의 공학과들 은 우리 거처를 기준으로 정반대편에 있다. 지하철로 다시 이동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허겁지겁 우산을 펴는데, 바로하라는 학생이 페이스북으로 친구 신청이 와서 급히 수락하고 인사를 건넨다. 향하는 건물이 도시 한복판에 있다. 자유게시판이 화장실 옆에 있는데, 구조학상 층마다 같은 곳에 게시판이 있을듯 하여 한층 올라가 본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옆에 게시판이 있다. 그러고 있는데, 아래가 무척 시끄럽다. 내려가니 여학생 한 명과 남학생 두 명이 시끄럽게 대화 중이다. 기계공학과 학생들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여학생이 대뜸 여기 무엇하러 왔는지 묻는다. 대답하려는데, 옆에서 한 남학생이 남북 관계에 대해 묻는다. 다른 남학생은 건네준 메세지를 보더니 자신이 항상 자신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라고 한다. 관심이 간다. 학생들이 자리를 옮기자고 한다. 교내 식당이다. 그런데 너무 시끄럽다. 특히, 남북 관계 물은 학생은 대책없이 떠든다. 전부 자기 얘기 뿐이다. 정신없는 학생이 혼자 내일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자리를 뜬다. 남은 남학생을 보고 있자니, 대학 때의 나의 모습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다시 만나려는데, 다음 주에 시험이 있단다. 본인도 만나고 싶은 것같이 보인다. 가능성이 커보이는데? 몇번이고 연락하라 당부하고 헤어진다. 식당이 너무 시끄러워 귀가 윙윙울리는 듯하다. 거처로 돌아가며 그 학생이 꼭 연락해주기를 바래본다.

11월 14일

금요일오늘은 Autonoma(아우토노마) 대학에 가기로 한다. 세계 대학 순위에도 들어가는 스페인에서는 나름 알려져 있는 대학이다. 마드리드시 외각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 목적지 역에 도착하니, 흡사 기차역이 대학 내에 위치되어 있는 듯한 구조이다. 주 건물은 여러 개의 건물이 바둑판처럼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다. 포스터를 붙이면서 대화할 만한 학생들을 찾는다. 아래층 현관에 흡연실처럼 보이는 곳에 세명의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담배 때문에 괴롭지만 가보자. 세명 모두 인류학과 학생들이다. 이야기 도중에 친구인듯한 학생이 한 명 온다. 철학과 학생이다. 지혜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다들 관심을 보인다. 지속적으로 연락이 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들은 이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을까? 내가 얼마나 간절한지 알고 있을까? 그들과 헤어지고, 포스터를 붙이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화학과 학생회 룸이 보인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한 학생이 자다가 일어난다. 칠레에서 온 파블로이다. 정신이 멍한지 덩달아 대화가 잘 안된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부도 하느라 바쁘고 피곤해 보인다. 언젠가 칠레에 가면 만나자고 하니 그저 웃는다.

밖에는 비가 내려서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으려는데, 한 곳은 파는 것 이외에는 먹을 수 없고, 다른 한 곳은 먹을 수 있다. 앞의 카페테리아는 거의 비어있고, 뒤의 것은 손님이 가득하다. 도시락을 싸온 학생과 안 싸온 학생이 점심을 같이 먹으려면 뒤의 카페테리아에 가야 한다. 앞의 곳은 장사를 잘못하고 있다.

있던 건물에서 나와서 대로를 걷는데, 벤치에 두 명의 학생이 있다. 체육과 학생들이다. 알베르토가 말을걸어 본다. 반응이 좋다. 명함을 주고 연락하자고 한다.

약간 떨어진 곳에 몇 개의 학과 건물이 있다. 건물 안의 구조가 박물관 수준이다. 포스터를 붙이고 돌아보는데, 학생이 거의 없다. 옆 건물에 들어가려는데, 문이 닫혀있다. 금요일이라 오후가 되자 벌써 건문들 문이 닫혀있다. 어쩔 수 없이 기차역으로 향한다.

[ 아우토노마 대학의 한 건물 안에서... ]

[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에서 ]

[ 살라망카를 떠나며 ]

 [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

​[ 살라망카 대학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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