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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장

화두(話頭)

 

 

편집부

 

1992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때 나는 2년여 전부터 자주 뵙던 중년 신사 한 분이 있었다. 그 분은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목욕탕의 3층이 댁이었다. 나는 평소에 자주 그 곳을 방문했었다.

그 날도 특별한 일없이 목욕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막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마침 전화가 왔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번 찾아 뵙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자 하는데 괜찮겠느냐는 한 젊은 남자의 요청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심심해하던 차였기에 우리는 그 이방인의 방문을 쾌히 수락하였다. 소문을 듣고 그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그 젊은 사람이 목욕탕 3층으로 방문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는 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서너 살 더 많았는데 불교 서클의 한 행사장에서 처음 만났고 그 이후에도 여러 모임에서 만났는데 그는 깨달음과 진리,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화두선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 젊은 사람과 중년 신사와의 대화를 옆에서 듣게 되었는데 그 대화 내용이 무척 인상 깊게 남아 있어서 지면을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

 

그 젊은 사람이 들었던 소문은 대충 이러한 것이었다.

"오쇼 라즈니쉬는 400권이 넘는 저서를 출판하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났지만 실제 그는 모르는 자이다. 내가 라즈니쉬에게 10개의 문제를 질문해서 그 중 2개를 정확하게 알아 맞춘다면 나는 다시는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서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또 나는 그가 가르친 내용에 관해서만 질문하겠다. 그가 무엇을 알고 가르쳤다면 자신이 가르친 내용에 관하여 나의 질문에 정확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라즈니쉬가 그러리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는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도대체 이 한국 땅에서 누가 그렇게 큰 소리를 치는가 하는 호기심이 생겼고 자신이 궁금해하던 화두선에 관해 질문하기 위해 수소문하여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젊은 사람이 중년 신사에게 질문을 했다.

질문 : 마가집 며느리에 관해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 : 있는 것을 질문하시오. 판사는 재판을 할 때 있는 것을 보고 사실 속에 있는 증거를 봅니다. 만들어 낸 이야기 속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질문 : 어떤 여자의 남편이 풍랑에 휩쓸려 죽었는데 그 여자도 남편이 죽은 지점에 빠져 남편과 같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 끝에 '만법과 짝을 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니 '마가집 며느리이니라' 했습니다.

답변 : '짝'법이 시집을 갔다는 이야기인가? '마가집 며느리'는 만든 이야기가 아닌가?

질문 : 경전에 이르기를 '지난 마음도 현재 마음도 얻을 수 없는데 네 마음은 어디다 점을 찍으려 하느냐' 했는데.

답변 : 깨달은 자의 말이 아니다.

질문 : 경전 속에 있는 글들을 무시합니까?

답변 : 거짓에 속지 말라. 실상에 대해서 물으시오. 나는 환상 속에 있는 일은 모른다. 있는 것을 보고 배우라. 있는 일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질문 : 화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답변 : 화두는 장님의 가르침이다. 법은 실상의 가르침이다.

질문 : 장님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한 것이 화두가 아닙니까?

답변 : 화두를 통해 눈을 뜬 자가 있으면 이야기하시오.

질문 : 나는 일반적으로 우리와 같은 사람을 중생으로 봅니다.

답변 : 화두는 장님의 이야기이다. 깨달은 자는 세상을 보고 이야기한다.

질문 : 깨달은 자는 자신이 깨달았다고 하지 않아도 남이 먼저 안다고 하던데.

답변 : 당신은 잘못 알고 있다. 깨달으면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석가모니는 깨달은 후 80살이 되도록 사람을 찾으러 다니다가 길 위에서 죽었다. '나는 깨달은 자이다, 나는 보는 자이다, 여래다' 하였으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는 최고의 스승이었다.

예수도 세상에 와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행한 삶을 보고 그것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십자가에 못 박혔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사람들의 위선적인 삶을 보고 '너 자신을 알라'고 길거리에서 등불을 켜놓고 이야기하다가 독약을 마셨다.

노자는 중국이 낳은 최고의 스승이었지만 제자 하나 없이 떠돌아다니다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어찌 깨달은 자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람들이 안다고 하는 것이오. 꿈을 깨시오.

 

질문 : 석가부처께서 열반에 드실 때 '나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고 나는 한 중생도 제도한 바가 없다'하였다는데.

 

답변 : 석가모니는 길 위에서 죽었는데 그 말을 누가 다 들었다는 것인가? '나는 내 말을 한 적이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내 생각을 가르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한 것은 전부 있는 것을 보고 이야기한 것이다. 법이요, 진리다. 내 말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거꾸로 들어 진실을 망친다. 이것은 업을 짓는 일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석가모니는 날마다 법을 설한다고 말했다.

 

질문 : '나는 깨달았다, 여래다' 했는데 왜 입적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까?

 

답변 : 석가부처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당신에게 한가지 묻겠다.

당신은 공부하는 목적이 중생을 위해서인가? 자신을 위해서인가? 세상을 위해서인가? 무엇 때문에 깨달음을 원하는가?

동쪽으로 갈 사람과 서쪽으로 갈 사람은 가는 길이 틀린다. 꿈속으로 갈 사람은 잠을 자야 하고 현실로 갈 사람은 잠을 깨야 한다. 목적지와 길이 나와 다르다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목적이 있을 때 이 깨달음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냥 재미로 들은 소리를 듣고 아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진리를 말할 수 없다.

 

질문 :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은?

 

답변 : 장님의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 장님이 동쪽으로 갈 것인지 서쪽으로 갈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깨달음을 위해 화두선을 하였다는데 깨달음은 자신, 중생, 세상 중에서 무엇을 위하여 필요한 것인가?

 

질문 : 깨달음은 자신과 일체 중생을 위해 필요합니다.

 

답변 : 중생을 외면한 깨달음은 필요 없다. 만약 중생을 섬기지 않는다면 절대 깨달음은 없다. 먼저 중생을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능히 중생을 섬기려면 중생보다 앞선 자가 되어야 한다.

왜 깨달으려고 하는가? 만약 당신의 대답이 진실하다면 깨달을 수도 있다. 깨닫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만약 서울로 가고자 하는 자가 자꾸 해남 쪽으로 가고 있다면 길이 아니다. 제 시간에 서울 가기 힘들다.

제일 먼저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자기를 지키고 이루는 길이다. 삶은 배우지 않고 수수께끼만 배워서는 이야기 속에서 증거를 찾아보기 힘들다.

 

질문 : 화두법은 대립적 개념을 잘 설명해 줍니다. 절대적 자비와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답변 : '댕기 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뭐냐' '연기다' 이런 것은 1,000개를 알아맞힌다 해도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질문 : 화두 그 자체를 지혜라고 말합니다.

 

답변 : 지혜라는 것은 있는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1+1=2' 이것이 수학의 원리이고 모든 이치와 법은 수학과 같다.

 

질문 : 불교계는 문제점이 많지만 단지 화두만 가지고 사기라 할 수 있습니까?

 

답변 : 나는 사기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보지 않아서 모른다. 불교계를 모두 싸잡아서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나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은 나쁜 근본이 있어서이고, 좋은 것을 가르치는 사람은 좋은 근본이 있기 때문이다. 쉽사리 단정짓는 것은 경솔한 짓이다. 보고 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우리 나라에 경전이 들어올 때, 들은 소리에다 학자의 주석을 달아 그들의 생각이 보태어 졌다. 장님은 장님의 이야기를 더 잘 알아듣고 수용한다. 그래서 노자가 말하기를 진리를 들으면 상인(上人)은 기뻐하고 중인(中人)은 반신반의하고 하인(下人)은 비웃는다고 했다.

자신의 근기(根氣)를 높이기 위해서는 옳은 삶이 필요하다. 장님이 꿈 깨기를 싫어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깨어나게 하고 싶어도 길이 없다. 어두운 세상에서는 좋은 가르침이 필요하다. 법이 필요하다. 법은 본 것만을 이야기해야 한다. 보고 경험한 것을 듣고 깨닫게 해야 한다. 절에 간다고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생활 속에 도가 있다.

 

질문 : 다른 사람들을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기 전에 논리적 사고로 접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변 : 진실을 모른다면 모르는 자이다. 3+3=9 라고 한다면 모르는 자의 이야기이다.

누가 나를 보고 아상이 크다고 했다. 아상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모르는 것이나 자신의 생각을 마치 아는 것처럼 강하게 주장하는 것을 아상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바로 알고 이야기한다.

나는 정치, 경제, 철학 등 세상일을 환하게 보고 이야기한다. 책을 보고 깨달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진실하다면 그에 따른 증거가 있어야 한다.

 

질문 : 세상이 이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변 :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땅을 가꾸어야 한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땅이 필요하다.

 

질문 : 오욕칠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입니까?

 

답변 :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나 번뇌가 없다. 모든 세상의 문제에 대해 책을 보고 만들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모든 세상의 문제에 대해 있는 것을 보고 이야기한다. 방안에 혼자 있을 때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잠이 오면 잠을 자고, 잠을 자면 모른다.

 

질문 : 그 상태를 공적의 상태라 할 수 있습니까?

답변 : 어떤 상태를 공적의 상태라 하는지 모른다.

 

질문 : 가만히 있을 때는 허물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답변 : 나에게 업이 있을 때에는 생각이 일어난다. 업이 없을 때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탈을 하면 업장을 소멸할 수 있다.

 

질문 :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 해탈을 한 것입니까? 생각이 가라앉아 있을 때 정리된 상태이고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줄어듭니다. 예쁜 여자를 보면 음욕이 일고 나쁜 생각이 죄를 일으키는 것 아닙니까? 죄의 정의에 대해 말해 주십시오.

 

답변 : 거짓과 속임수가 바로 죄이다.

 

질문 : 생각이 일어날 때 죄가 일어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답변 : 생각이 왜 일어나는가? 의식의 구조에 대해 말하겠다. 기운에 의식이 붙어 있고 이것이 현상과 부딪히면 마음이 발생하고 마음은 행동을 유발하고 행동은 다시 마음을 짓는다. 이 마음이 의식을 짓고 연결되어 되풀이된다.

묻는 사람에게 기초가 있어야 내가 대답을 하면 알게 되어 기쁘고 감동도 일어난다. 제대로 모르고 물을 때는 정답을 들어도 기쁨도 감동도 없다.

 

질문 : 예수에 대해서 말해 주십시오.

 

답변 : 예수는 성자이다.

 

질문 : 석가와 비교한다면?

 

답변 : 석가는 여래이고 예수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자는 아니다. 예수는 해탈을 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와 노자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할 수 있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스승에게로 나를 데리고 가라. 그러면 나는 그 사람에게 사실에 대해서 묻는다. 자신이 가르치고 있으면서 모르고 가르친다면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나를 공박하면 나는 사실을 지적하고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있는 것을 보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세상 어디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모든 분야에 막힘이 없어야 눈을 뜬 자이다. 동쪽은 보았는데 서쪽을 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다.

 

질문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답변 : 지금은 내가 살아있는데 죽음에 대해 왜 생각하는가? 누구나 나고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인데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시대에 나보다 앞선 자는 없다. 있다면 내가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기를 치고 있는 줄 알게 되면 나는 다시는 사기를 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무엇을 대답해야 하는가? 나는 곧 세계를 여행할 것이다.

 

질문 : 가까운 곳에 제도할 중생이 많은데 왜 먼 곳까지 가야 합니까?

 

답변 : 그릇된 자는 옳은 자에게 표를 던지지 않는다. 바라바와 예수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인연이 없는 중생은 구할 수 없다. 법은 필요한 자에게 주어야 한다.

 

질문 : 옛날 조사 스님들이 화두를 풀면 생사를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계속 내려왔으니 세뇌가 되어 있어서 머리에서 없애 버리기가 힘듭니다.

 

답변 : 그것은 수수께끼다. 거짓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참말인지 아닌지도 내가 본 후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화두를 통해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질문 : 고등 수수께끼라고들 합니다. 화두 타파 후 생과 사가 자유로워졌다고 합니다.

답변 : 생과 사에는 자유로워졌지만 중생에게는 하나도 가르칠 게 없었는가? 세상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잊어버리게 된다.

 

질문 : 삶 속에서 의문을 갖게 될 때,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면 그 의문이 풀리게 될 때 진리에 눈뜨게 되는 것 아닙니까?

답변 : 진리에 눈을 뜨면 자유와 행복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전해줄 때 그 가르침 속에 진실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것을 나에게도 보여 달라. 그 가르침을 보고 맞는가 틀리는가는 나중에 결론지어도 늦지 않다.

질문 : 가르쳐 달라고 이야기하면 말해주지 않고, 자기 스스로 그 의문을 풀어서 해결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누구입니까?

 

답변 : 나는 나이다.

 

질문 : 최초의 나는 누구입니까?

 

답변 : 당신은 어리석다. 나는 나로부터 태어났고 나는 나를 만들고 나는 나를 짓고 있다. 공은 닦은 데로 가고 업은 지은 데로 간다. 항상 자기 속에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이지. 나의 과거로부터 와서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다.

 

질문 : 그것을 아직까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답변 : 과거에 들었던 것을 잊어버리시오. 그러면 사실이 사실대로 보이고, 환상이 사라지면 문제를 풀고 답을 알 수 있다. 문제를 보고 세상을 보고 지적해서 알게 해 주는 것이 깨달은 자의 일이다. 나에게 어떠한 문제를 가져와도 그 문제를 보고 답을 푼다.

 

질문 : 예를 들어 화두를 속임수라 가정한다면?

 

답변 : 나는 화두를 속임수라고 말 한 적이 없다.

 

질문 : 왜 사람들이 화두에 끌려 다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답변 : 나는 혼자이고 화두 신봉자는 수만 명이다. 도둑 소굴에 도둑질을 하지 않는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그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도둑들은 거북스러워한다. 그런데 그가 '도둑질은 나쁜 일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당장 죽게 될 것이다.

 

질문 : 깨달은 자라 하더라도 장님 생각을 모른다는 말입니까?

 

답변 : 깨달은 자가 어떻게 장님의 생각을 알 수 있겠나. 우리는 삶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의 환경도 중요한 것이다.

나는 생활을 가르친다. 생활을 이루고 근기(根氣)가 커지면 이렇게 이렇게 살아라 하고 말해 준다. 먼저 환상을 깨어야 한다.

 

질문 : 제가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답변 : 들은 것을 가지고 자꾸 생각을 일으키니 생각에 가려서 사실을 들어도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다. 환한 등불 앞에서 눈을 감으면 혼동이 온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어쓰면 환상이 온다. 1년 정도 나에게서 진실을 들으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어떤 사람이 말을 하면 당신은 질문하게 되고 상대는 아무 것도 모른다. 당신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니까. 계속해서 1년 정도 더 들으면 당신은 매우 뛰어난 자가 되어 있다.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장님과 조금 보는 자는 천양지 차이이다.다시 1년 정도 지나면 좋은 기운이 일어난다. 진실이 살아나니 양심과 용기가 생긴다. 그러면 능히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남을 사랑으로 섬기면 큰 공덕을 이루게 되고 그로 인해서 큰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내 말이 틀리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

 

질문 : 육조 혜능조사에 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답변 : 육조는 부처의 가사를 없애고 법통을 끊어 버렸다.

 

질문 : 어느 날 신수의 제자가 혜능의 법문을 듣기 위해 알리지 않고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여기 법을 훔치러 온 자가 있구나' 하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을 알고 이야기했다 합니다.

 

답변 : 점을 치고 남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사람들은 시중에도 많다.

 

질문 : '가사를 누구에게 전해야 합니까' 하니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옷은 전하지 않는 것이 옳으니라' 하였고 자신의 말을 초록하여 '법보단경' 이라 하고, 이것을 전하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신통력을 부렸고 법력이 높았으며, 해명이라는 한 힘센 장사가 가사를 빼앗기 위해 혜능을 잡으러 왔을 때, 혜능이 가사를 바위 위에 놓으며 '이 가사는 믿음을 표시하는 것인데 힘으로 빼앗겠느냐' 하며 넝쿨 속에 숨어 그 거친 성질을 제압하고 가사가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게 했다는데.

 

답변 : 황진이는 열두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던 상여를 자신의 속옷을 벗어 던져 주어 상사병으로 죽은 영혼을 달래어 그 상여를 움직이게 했다. 한 장수가 옷을 들고 가지 못하게 하는 것쯤이야.

 

질문 : 혜능은 또 달마 대사의 이야기를 하며 '성품을 보는 것이 공덕이다' 라고 했는데.

 

답변 : 어떻게 그러한 일이 존재하는가. 사실 속에 존재하는 약속이 진리이다. 혜능의 이야기는 단지 말에 지나지 않는다. 육조 혜능 이후 가사가 없어지고 법이 끊어졌다. 그의 말 속에 문제와 답이 있거든 말하시오. 사실에 대한 말에 대해서 진실을 가릴 수 있다. 지혜가 있는 자라면 문제와 답을 알아야 한다.

 

질문 : 혜능은 금강경을 독송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하고, 또 소인은 금강경을 보아도 모르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답변 : 석가부처는 금강경을 읽지 않아도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질문 : 어리석은 자도 홀연히 깨달아 마음이 열리면 부처가 된다고 했습니다.

 

답변 : 어떻게 어리석은 자가 홀연히 깨달을 수 있는가?

 

질문 : 한 생각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라고 했습니다.

 

답변 : 보는 것이 아니고 생각을 깨우쳐라? 법은 우리 눈 앞에 있는데 어디 가서 법을 찾는가.

 

질문 : '선악을 구분하지 말라.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답변 : 그렇다면 이미 끝장 난 것이다. 더 말해서 무엇하나.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거늘 혜능의 말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부처의 말에는 행함이 있다. 부처는 항상 사실을 근거로 하여 말했다.

 

질문 : 혜능은 왕이 법문을 청하자 자신의 추한 얼굴을 보고 법문을 비하할까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답변 : 혜능의 글보다는 심청전 같은 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질문 : 그의 게송 중에 '지혜가 곧 마음이요, 정한 것이 곧 부처'라 했습니다.

 

답변 : 마음 따라 지혜가 나온다. 그 속에 근본이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

 

질문 : 그는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요, 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답변 : 바람이 불 때 깃발이 있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은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다 하였으니 더 이상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질문 : 그의 죽음 직전 게송을 보면 '일체 참된 것이 없으니 참으로 보지 말고 참이라고 보면 그것은 거짓이다' 라고 했습니다.

 

답변 :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지 진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거짓을 알 것인가? 진실을 모르는 자는 거짓도 모른다. 옳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좋은 것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질문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는 의료보험 공단 직원으로 있다가 지금 공무원시험 준비 중입니다. 여러 가지로 충격적인 내용들이 많아 얼떨떨합니다. 다음에 다시 시간을 내어 찾아 뵙겠습니다.

 

답변 : 그렇게 하시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 와서 질문하시오.

 

초저녁에 시작된 질문과 답변이 장시간 계속 되었지만 누구 한 사람 지루해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밤이 너무 깊어져서 대화를 중단해야 했다.

우연한 기회에 불쑥 찾아온 방문객 덕분에 나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화두, 수수께끼, 고등 수수께끼라....

깨달음을 화두 타파를 통해서는 도저히 얻을 길이 없다.

화두는 단지 수수께끼에 불과하다.

환상이 사라져야 사실을 바로 바라볼 수 있다.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실을 보아야 한다. 증거가 있어야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내 속에서는 대화가 이어지고 질문과 대답이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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