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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여행

태국에서 만난 사람

 

 

윤 소 연

 

10년 전인 1988년 12월 22일, 스승과 함께 태국의 방콕에 도착하였다.

다음날 나는 태국에서 으뜸 가는 대학인 출라런콘 대학을 찾아가서 대학 총장을 만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온 승려입니다. 깨달은 스승을 모시고 진실한 사람을 찾기 위해 이곳까지 왔습니다. 방콕에 진실한 사람이 있으면 나에게 소개해 주십시오."

낯선 외국인으로부터 의외의 부탁을 받은 대학 총장은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내가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 분에게 당신을 안내하겠습니다."하고 겸손하게 말했다.

나는 총장의 지시를 받은 대학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캠퍼스 안에 있는 '담마사탄'이라고 하는 진리관으로 갔다. 그 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은 진리관의 원장인 라위 박사였다.

나는 라위 박사에게 스승에 대한 소개를 하고 진리관에서 강연을 갖고 싶다고 요청하였더니 그는 쾌히 승낙하였다.

강연 제목은 '붓다의 길'로 정했고 강연에 관한 홍보는 그들이 직접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진리관에서 강연을 하려고 하니 태국어를 통역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방콕의 한국 교포회를 통해 우리말과 태국어를 통역할 사람을 급하게 수소문했는데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한 한국인이 나섰다. 그런데 그는 3시간 정도 통역하는 데 7만 원을 요구했다.

태국에서 교수의 한 달 봉급이 우리 돈으로 15∼16만 원 정도였다. 우리는 아쉽지만 통역사를 구하는 일을 포기하기로 했다. 돈도 돈이었지만 그런 정도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스승의 말을 제대로 통역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다음날은 방콕 근교에 있는 '촐라부라탄'이라는 큰 사찰을 찾아갔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촐라부라탄의 가장 큰 스승을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외출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두 번째 스승이라도 만나보겠다고 요청하여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나와는 의사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내가 비구니(女僧)임을 알고는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나도 역시 그의 모습을 대하자 대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태국에서는 비구니의 지위가 매우 낮았다. 비구니는 황색 가사도 입을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안내하던 비구(男僧)에게 부탁을 했다. "영어를 잘하는 승려에게 데려다 주세요."

그랬더니 한참을 걸어가서 큰 강당 앞에 이르러서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강당 안에는 200명 남짓되는 승려들이 앉아서 어떤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승려들은 창밖에 서 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조금 후에 강의가 끝나자 강사가 나왔다. 그는 순박한 얼굴로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용건을 말했다.

나는 "스승과 함께 방콕에 왔습니다. 이 절에서 강연을 하고 싶습니다." 하고 그에게 말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금방 강연 일정을 결정해서 나왔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방콕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친절하게 다시 물었다. "안내원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두 사람의 태국인을 소개해 주었다. 한 사람은 필라이반 부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슈파방 박사였다.

필라이반 부인의 집은 아주 크고 넓었으며 부유한 가정으로 보였다. 그녀는 출라런콘 대학을 나온 인텔리 여성으로서 출판과 관계되는 일을 하는데 영국인 남편과 살고 있었으므로 영어가 아주 유창하였다.

내가 그녀에게 출라런콘 대학의 진리관과 촐라부라탄 절에서 통역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더니 쾌히 승낙하였다. 비록 3중 통역이 되겠지만 한시름을 놓았다. 스승은 한국말을 하고, 나는 그것을 영어로, 필라이반 부인은 다시 태국어로 통역하는 것이다.

나는 출라런콘 대학에서 슈파방 교수도 만났다. 그녀는 나를 위해 중국음식점에서 대여섯 가지의 반찬을 사 가지고 왔는데 그녀와 나는 그것을 가지고 구내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녀는 자기 전공 때문에나 또 불교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 한국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고, 불교와 명상에 관한 자신의 저서들도 있었다. 그녀는 진리관에서 있게되는 강연에 자기 친구와 함께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활달하고 거침이 없었으며, 방콕에서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여성이었다.

다음날, 출라런콘 대학의 진리관에서 강연이 있는 날이었다. 필라이반 부인이 승용차를 가지고 스승과 나를 데리러 왔다.

진리관에 도착하자 이미 그곳에는 라위 박사와 많은 대학생들이 참석해 있었다. 그런데 꼭 참석하겠다던 슈파방 박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참석자들에게 스승을 소개하고 나서 스승의 메시지를 낭독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인류의 길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으며,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깨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나는 영어도 태국어도 전혀 할 수 없으나, 이 사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늘날 전 인류는 매우 위험에 처해 있으며, 이러한 위기는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다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이 현상은 존재하며, 단지 세상 자체가 그렇게 되도록 되어있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세상을 구하려 한다면 그대 자신도 구할 수 있을 것이요, 그대들이 세상을 포기한다면 그대 자신도 망할 것이다.

선택은 그대들의 것이며 그대들의 결정 또한 존중될 것이다.

기적은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그대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내가 이곳을 방문한 목적을 말하겠다. 나는 그대들의 환상적인 말과 어리석은 삶을 깨어 부수고자 한다.

나는 그대들이 사실적인 세계에서 자신을 구하기를 바란다.

그대들에게 한 가지를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결과를 볼 수 있다면 당신의 현재가 당신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런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당신은 현재에 있는 미래의 원인도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런 일에 대해서 그대들을 돕고자 한다. 오늘의 이 만남은 그대들과 나를 위해 소중한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 진실한 사람이 드문 것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진리가 흐르지 않기 때문이요, 진리가 통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에게 진실이 귀하기 때문이다.

만일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자신을 아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사람은 과거와 미래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지한 자는 멸망할 것이요, 사실을 아는 자는 자신을 구원할 것이다. 그대들이 그 길을 얻고자 하거든 깨어나라. 그 길을 가고자 하거든 노력하라.

만일 자신이 진실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진리를 알아야 한다.

이제 부처의 진정한 의미를 말하겠다. 장님은 세상을 의심할 뿐, 자신의 어두움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한 세상에 어떻게 부처가 존재할 것인가?

하늘이 부처를 내는 일은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기 위함이다. 세상은 사람들이 하늘의 뜻을 알도록 부처의 길을 만든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얻게 되는 것이 뜻이다. 그대들이 나를 보지 못한다면 내가 어찌 그대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부처의 길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내가 다시 하나의 사실을 들려줄 것이니, 들을 수 있다면 그대들은 세상을 얻고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완성시키는가? 석가부처는 자신을 완성하고 나서 사람들에게로 갔다.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때 그는 대답했다. '나는 수많은 세월 동안 인간의 근본을 섬겨 왔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여래의 말을 믿어야 하고, 선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하며,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부처의 길은 자신 앞에 열리게 된다.

나에게서 부처의 세계에 대해서 듣고자 한다면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나는 그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만 나의 경험이 아닌 석가부처의 경험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누구도 부처의 마음을 알 수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부처가 되기 전에는 결코 그의 마음을 볼 수가 없다. 여래는 '해탈'이란 말을 썼다. 부처의 세계에 있는 자신을 보았다는 뜻이다.

여래가 가르친 것은 인과의 법칙이다. 그의 진실은 세상을 밝힐 수 있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진리를 말해 주어야 했으므로 한 장소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었다.

그는 진실한 마음을 찾아서 온 나라를 떠돌아 다녔다. 부처는 장님(중생)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중생 또한 부처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부처는 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여행을 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이 세상에 다시금 부처의 길을 존재하게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인과의 법을 모르기 때문에 제 눈앞에 훤히 열려 있는 세상의 실상도 보지 못한다. 그들의 진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래는 중생들에게 제발 자기 자신을 망치지 말라고 호소했다. 경전 속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도 사람의 무지에서 비롯된 죄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인과법을 안다면 자신을 구하는 일이 매우 쉽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쉽게 버릴 것이다.

나는 두 가지를 가르치고 싶다. '네 자신을 섬겨라. 그리고 세상을 섬겨라.'

이 두 가지를 사람들이 배울 수 있다면 그는 영생과 극락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일은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의 진실을 증명해 보이겠다. 무엇이든지 나에게 질문하라. 그대들은 가장 정확한 대답을 들을 것이다.

내가 그대들을 찾아온 것처럼 내가 그대들에게 결코 타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처의 길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메시지를 다 읽고 나자 라위 박사가 말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승이 물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는 사성제(四聖諦)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스승이 말했다. "당신들은 너무도 아는 것이 없어서 내가 가르치기 어렵다."

라위 박사가 물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다고 어떻게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가?"

스승이 말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쉬운 것 하나를 여러분에게 물어 보겠다. 질문해도 되겠는가?"

스승이 물었지만 그들은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스승이 그들에게 질문을 했다. "진리가 어디에 존재하는가?"

진리관 안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침묵이 답답했던지 한 여학생이 대답했다. "마음속에 있습니다."

스승이 말했다. "잘못 배운 사람은 항상 그렇게 말한다."

그때부터 스승은 삶의 의미와 삶의 길, 그리고 세상의 변화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진실을 말하였다.

강연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필라이반 부인이 말했다.

"당신들의 가르침은 훌륭합니다. 당신들은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군요. 나는 당신들을 믿습니다."

 

다음날, 필라이반 부인은 승용차를 가지고 우리를 촐라부라탄 절에 데려다 주었다.

필라이반 부인은 비구들을 보자 엎드려서 절을 3번 했다. 불교를 국교로 하는 태국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강당에는 많은 승려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강당인데 자리가 부족하여 문 밖에도 많은 승려들이 서 있었다.

지난번에 만났던 강사 승려가 우리를 맞이했다.

내가 강사에게 스승을 소개하자 그는 적잖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스승이라는 분이 당연히 승려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평범해 보이는 중년 신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매우 난처한 기색으로 우리를 강당으로 안내했고 강사가 먼저 참석한 승려들에게 우리에 대한 설명을 했다.

잠시 후 연단에 선 스승은 강당을 꽉 메운 승려들에게 말했다.

"나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알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질문하라."

승려들이 질문했다.

"당신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습니까?"

"수박에서 수박이 열렸을 뿐이다. 나는 전생에서 이미 깨달았던 사람이다."

"당신은 깨닫기 전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나는 나의 양심과 용기를 바쳐 조국과 동포를 사랑했다."

"경전이나 기도로써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를 따르고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변하게 될 것이다.1년 동안 내 곁에서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나의 말을 들어라. 그러면 자신 속에 있는 생각들이 없어지고 자기가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2년이 지나면 너희는 옳고 그름에 눈뜨게 될 것이다.그리고 3년이 지나면 큰 양심과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그 후에 너희들은 비로소 자신과 세상을 위하여 축복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승려들은 스승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승려들의 자세가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분위기는 진지하지 못했다.

스승이 그들을 향하여 외쳤다.
"너희들 중에 진정으로 깨닫고자 하는 소망과 용기가 있는 자가 있다면 일어서 보라."

장내에 일순 정적이 감돌았지만 한 사람의 승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교가 국교인 나라에서 그토록 국민들로부터 대접을 받고 있는 승려들 중에서 낯선 외국인의 지적 앞에 한 사람도 자신 있게 나서는 자가 없었다는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컬한 일이었다.

 

부처의 길도 모르면서 부처를 내세워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위해서 스승은 삶의 소중함과 깨달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그러나 강연에 참석했던 승려들은 더 이상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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