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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인생

기행(奇行) 사병

 

 

李 三 漢

 

민가에서 처음 며칠동안은 모두들 잠자는 일로 소일했다.

그러나 며칠 더 지나자 잠자는 일마저도 힘들어지고 우리들의 생활은 점점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우리가 민가에서 머물고 있던 시기는 곡식을 거둬 들여야 하는 추수철이었다. 나와 화기중대 소속의 상병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농사일을 할 줄 아는 농촌 출신들이었다. 군 입대 전까지 농사일을 해왔던 세 사람에게는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서 품삯을 주면서 일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정오가 되면 부식을 수령하기 위해 한탄강 다리로 민가에 남은 사병을 데리고 나갔다.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연대의 부식수송 트럭이 다리 위를 지나갔고 나는 트럭을 세워서 우리 몫에 해당하는 충분한 부식을 받아왔다.

내가 이 일을 직접하는 것은 민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남는 주식과 부식은 모두 내 차지가 됐기 때문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서 누구도 이런 일에 대해서 나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화기중대 소속인 상병은 처음 며칠간 자신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허풍을 떨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자신이 태권도를 한다는 것과 특수부대에서 낙하산 훈련을 받았다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일행들은 누구도 그런 상병을 선임자로 대접하지 않았다.

일행들은 누가 리더가 되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상병은 일행 중에서 나이나 계급은 선임자였지만 리더로서의 자질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상병은 나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정해야 했다.

상병은 1등이 아니라면 2등이라도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결국 그는 나의 참모 일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일행들에게 밥짓는 일을 시켰고, 방안에서는 가장 좋은 자리를 골라 나의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상병은 자신이 2인자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항상 나의 곁에 앉았다.

문제는 상병의 버릇인 허풍이었다. 또한 상병은 일행 중에서 가장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항상 군복에 풀을 먹여서 빳빳하게 다려 줄을 세워 입고 다녔고 모자와 상의에는 항상 낙하산훈련 기장을 붙이고 다녔다.

어느 날, 다른 일행들이 주인집의 소개로 일을 하러 나가고 없었을 때였다. 단둘이 남게 되자 상병은 나에게 예의 허풍을 떨었다. 좋은 데가 있는데 놀러 가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무료하던 참이라 귀가 솔깃했다. "어딘데?" 하고 내가 반응을 보이자 상병은 연천 위에 있던 다른 사단의 주둔지인 대광리 쪽을 말했다.

상병이 이야기하는 곳은 우리가 있는 전곡에서는 꽤 먼 거리였다. 그리고 그곳을 가려면 연천을 거쳐야 했고, 하루에 겨우 몇 차례 밖에 없는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면 군경합동 검문소를 통과해야 되는데 이는 정식 외출증명서가 없는 우리에게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내가 망설이자 상병은 더욱 나를 꼬드겼다. 그곳에 가면 자신이 아는 여자들이 있는데 그 여자들이 자신과는 보통사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하도 자신 있게 말하는 상병을 믿어보기로 하고 다른 사단이 주둔하는 전방지역인 대광리 쪽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는 검문을 피하는 방법으로써 도로 가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군용트럭을 세워서 올라탔다. 군용트럭에 타고 있으면 헌병들이 모두를 일일이 검문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상병의 말은 허풍이라는 것이 당장 드러나고 말았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기찻길이 옆에 있는 삼거리에 지어진 외딴집이었다.

상병이 그곳에 있던 여자들을 보고 아는 체를 했지만 여자들은 상병의 말처럼 서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우리가 집으로 들어서자 오히려 여자들은 우리를 두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상병이 여자들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어디가?" 그러자 여자들은 우리가 왔던 쪽이 아닌 다른 쪽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쪽으로 간다고 말했다. 상황이 그런데도 상병은 나를 의식한 탓인지 여자들을 따라가며 아양을 부렸다.

나는 내 자신이 상병의 허풍에 속은 것을 알고 열이 올랐다. 그래서 나는 당장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가야하는 전곡 방향으로 가는 군용트럭은 금방 오지 않았다.

내가 한참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한 대의 스리쿼터가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길 중앙으로 나서서 스리쿼터의 앞을 막으며 손을 들었다. 그런데 스리쿼터는 나를 피해서 자갈투성이인 갓길로 방향을 틀며 달렸다.

나는 막무가내로 달려서 스리쿼터의 적재함 꽁무니를 단단히 붙들고 기를 쓰면서 트럭에 올라탔다. 스리쿼터의 앞좌석에 탄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스리쿼터의 적재함에는 평범한 마대 몇 개 외에는 화물이 없었다.

연천의 군경합동 검문소 근처에 오자 스리쿼터는 멈췄다. 그리고 운전사의 옆 좌석에 앉아있던 사람이 나에게 차가 다 왔으니 내리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가는 데까지 가봅시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방금 나에게 내리라는 말을 했던 사람의 태도가 달라졌다. 나에게 앞좌석으로 오라고 하더니 자신의 옆에 앉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앞좌석에 앉게 되었고 스리쿼터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스리쿼터는 연천 시내에 있던 담장이 높은 어느 집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있지 않아 그 집안에서 주인 같아 보이는 50대 중반의 남자가 나오더니 나를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방안에는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혼자 앉아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나의 손을 힘차게 잡고 나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면서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군대생활을 하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으냐고 위로의 말을 했다.

나는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는지 알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다른 엉뚱한 일이나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 나를 앞에 앉혀 두고 그 남자는 여러 가지 많은 말들을 했다.

그러면서 아가씨에게 내가 마실 차를 가져오게 했고, 또 잠시 후에는 방에 있던 작은 금고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50원권 지폐를 한 움큼 손에 쥐어 꺼냈다.

화폐개혁을 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라 50원권 지폐는 상당한 가치가 있는 돈이었다. 그 남자는 손에 쥔 지폐를 내 앞에서 세기 시작하더니 많은 지폐를 내 손에 쥐어 주면서 말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자신의 성의이니 받아서 필요한 곳에 써라."

나는 두어 번 사양을 했지만 그 남자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까지 들먹이면서 나에게 돈을 받으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마지못한 척 그 돈을 받았다.

그 남자는 나에게 정감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외출을 나오면 언제든지 자기 집에 꼭 들리라고 말했다.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그 집을 나오자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양 어깨에서는 신바람이 났다. 오늘은 일진이 무척 좋은 날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신바람이 나는 발걸음으로 군자산을 내쳐 넘어서 나의 소속 중대가 있는 부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먼저 중대의 보급계를 담당하던 소 상병을 찾아갔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진 돈 중에서 300원을 소 상병에게 주었다.

소 상병은 그 대가로 내가 입고 있던 헌 군복과 군화를 부대에 보관 중이던 새 군복과 군화로 즉시 바꾸어 주었다. 나는 이발소에 들려서 머리를 깎고 새 모자를 쓰고 새 군복과 새 군화를 착용하고 모양을 내어 다시 민가로 갔다.

화기중대의 상병은 나와 헤어지고 나서 나중에 어떻게 다시 내 얼굴을 볼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막상 저녁에 돌아와 보니 낮과는 달리 모습이 훤하게 좋아진 나를 방안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상병을 보자 한편으로는 괘씸했지만 한편으로는 상병 덕에 내 사정이 달라진 것을 생각하니 너그러운 마음이 되었다. 그러자 상병은 내가 왜 그러는지 영문도 모르면서 내 앞에서 자신도 미소를 지었다.

다시 어느 날 밤, 상병이 혼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상병은 밤이 늦어서도 숙소에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녘에야 돌아온 상병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떤 곳에 여자들이 있는 술집이 있는데 그곳에 갔더니 군인들이 많이 오더라. 그 군인들에게 자신을 군 범죄수사대에서 근무하는 요원이라고 말했더니 모두들 자신에게 잘 대해 주더라. 그리고 그 날 밤 술집의 주인까지도 자기더러 의형제가 되자고 했고, 앞으로 술집주인을 형님으로 삼기로 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러다가 탄로 나면 어쩌려고 그래? 했지만 정작 상병은 그런 일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날 밤이었다.

상병은 또 어젯밤의 일들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곳에 가자고 했다. 술은 자신이 살터이니 한 번만 함께 가자고 졸랐다.

나는 결국 또 상병의 꼬드김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따라가게 되었다. 밤중에 상병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들녘에 있던, 몇 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집주인은 민가 한 채를 빌려서 여자들을 데려다 놓고 술장사를 하고 있었다.

상병이 사립문을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방안에 있던 여자들이 우리를 술꾼들인 줄로만 알고 문을 열었다가 금방 상병을 알아보고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의 눈치로는 그곳에서도 상병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상병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끌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들은 우리에게 술을 시키거나 아양을 부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방안의 공기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상병은 혼자서 나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방문을 세차게 열었다. 방문 밖에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서 있었다. 얼른 보기에도 그 남자들은 농사일이나 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았다. 그중에 한 사나이가 방안으로 들어서며 성난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었다.

"어떤 놈이야! 기관원 사칭하고 공술 먹겠다는 놈이 엉?"

그러자 옆에 있던 상병이 다른 쪽 문을 열고 혼자서 줄행랑을 쳤다. 나도 그때만은 어떤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 역시 불량배들의 손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빨리 튀어야 했다.

나는 벼를 추수하고 난 들판의 논두렁을 힘껏 달렸다. 뒤에서는 불량배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따라왔다. 다행히 우리는 겨우 그들을 따돌릴 수가 있었다.

상병은 나보다 먼저 숙소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상병에게 이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추궁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그는 밤새도록 잠 한숨 자지 못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다음에 닥쳐질 일이 문제였다. 전곡은 작은 도시였다. 언제 어디서 다시 그들과 맞닥트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그들이 우리를 찾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일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이 일로 인해서 우리 일행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일은 내가 리더인 이상 일행들을 위해서 내 자신이 나서서 직접 해결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상병에게 술집에 가게 된 동기와 술집 주인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었다. 상병은 나의 질문에 대해서 상세하게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나는 상병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그 날 오후, 전곡에 있던 군 방첩부대의 파견대로 찾아갔다. 그리고 나는 그 술집 주인의 거동에 대해서 신고를 했다.

영문을 모르는 방첩부대의 파견대장은 그 자리에서 나의 신고정신을 크게 칭찬하더니 즉시 그곳에 있던 대원들에게 무장을 시키고 나를 군용트럭에 태워 술집 주인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나는 술집 주인의 얼굴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전날 밤 우리를 혼내려 했던 전곡의 건달 두목인 짱개의 집으로 군용트럭을 몰고 갔다. 짱개의 집은 강둑의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먼저 트럭에서 내려서 집안으로 들어섰다. 짱개와 짱개의 형은 바깥의 소란스런 소리를 듣고 손에 도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무장을 한 군인들을 보더니 기가 꺾였는지 도끼를 내려놓았다.

방첩대 군인이 방첩대원 메달을 내보이며 짱개에게 몇 가지 물었다. 짱개의 말을 다 듣고 난 군인은 이번 일이 별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무장한 군인들을 데리고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나의 계략은 척척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혼자 그 자리에 남았지만 이미 기가 꺾여 있는 짱개에게 당당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짱개에게 나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 부산에서 알려진 빼빼였다는 사실을 말하고, 이번에 있었던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대 일로 한번 주먹을 겨루어 보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러자 짱개는 나와 싸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리에서 서로 친구가 되기로 약속을 했다.

그 이후 18세였던 나는 28세의 건달 두목과 친구가 되었고, 짱개를 따라다니던 건달들로부터는 존댓말을 들으며 형님 대접을 받게 되었다.

상병은 이런 일이 있고 난 이후로는 두 번 다시 나에게 폐가되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함께 있던 일행들도 이런 일이 있고 나서는 나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졌다. 내가 어떤 일을 하건, 내가 어떤 말을 하건, 그것은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민가에서 생활한 지 45일쯤 되는 날이었다. 5중대와 3중대의 서무계에서 일을 하던 낯익은 두 병사가 우리가 머물던 민가에 찾아 왔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중대에 소속된 병사들에게 짐을 챙기게 했다. 두 중대의 서무계가 하는 말은 파견 나온 자기 중대의 병사가 다른 부대로 전출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두 사람의 전출명령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들을 따라서 같이 짐을 챙겼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엉터리 파견 생활을 끝맺어야 했다.

내가 챙긴 짐은 부대를 나올 때와는 달리 군화 두 켤레였다. 나는 군화 두 켤레의 끈을 서로 이어서 어깨에 걸치고 부대로 들어갔다. 중대에서는 아무도 나의 엉터리 파견생활에 대해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나의 기행(奇行)에 대한 소문은 점점 다른 중대나 타 부대로 퍼져 나갔고, 아무도 그런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나는 부대에 복귀해서도 배가 허전하면 언제든지 배불리 먹었고, 자고 싶으면 어느 때이건 마음놓고 잠을 잤다.

이런 나의 행동에 대해 중대장은 언젠가 한 번 버릇을 잡겠다고 별렀다. 그러나 막상 어떤 일이 생기면 다른 병사처럼 나를 함부로 다룰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한 번은 직속상관인 중대장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게 되었다. 중대장이 벼르던 기회가 오게 된 것이다.

군 검열단이 대대에 검열을 나온 날, 연병장에 전 중대원을 집합시키고 인원점검을 하는 자리에 내가 없었던 것이다. 중대장은 병사들을 시켜서 나를 찾았지만 중대원들은 나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나타나자 중대장은 화가 날대로 났다.

"너 어디 있었어!" 하면서 나의 하복부를 향해서 발길질을 했다. 그러나 그 발길질에 그냥 채일 내가 아니었다.

중대장은 자신의 발길이 허공을 차고 비틀거리게 되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숨을 헐떡거리며 중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당장 군법에 회부시키겠다고 호언을 했다.

나는 즉시 중대장의 말에 반격을 했다. "지휘관이 부하사병을 감정적으로 대한다면 어떤 사병도 그런 지휘관의 밑에서는 군대생활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먼저 상급부대에 가서 전출 상신을 하겠다."하고 말했다.

중대장은 내 말을 듣고 나더니 오히려 당당한 나의 모습에 기가 꺾이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지휘관이라도 판단력이나 임기응변에서 나를 이기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자 중대에서 나의 위치는 더욱 높아졌다.

중대장도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일등병. 그 일등병은 사병들의 머리 속에서 우상처럼 존재하게 되었다.

나는 이런 일이 있은 이후, 부대 내에 체육대회가 있을 때마다 나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나는 어설픈 씨름 솜씨로 처음 출전한 대대 체육대회에서 일등을 했고, 또 그 기세를 몰아 대대 대항 연대 체육대회에서도 일등을 했다.

그래서 나는 3년 동안 해마다 사단 체육대회가 있을 때마다 연대 씨름부의 주장이 되었고, 내가 맡은 씨름부는 항상 사단 체육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리고 더욱 나의 신화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사단 체육대회에서 씨름선수 전원이 참가하는 개인전에서도 매년 빠지지 않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보면 언제나 당당하고 말 잘하고 배짱있는, 남자 중의 남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체육대회가 열릴 때마다 고참이 되어 가는 자신을 보았고, 낯익은 얼굴들이 제대를 하고 떠나면 그 자리에 나는 새로운 병사들과 함께 있었다.

복무기간이 늘어가면서 나는 하사로 진급했고, 나의 이름과 기행을 사단 전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내가 소속된 부대의 연대장은 물론이고 사단장까지도 나의 돌출적인 행동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부대의 인근 마을에서도 '이 하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만나고 나면 호의적이 되었고, 나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영웅처럼 군림을 했다.

부대 안에서는 누구도 나의 행동에 대해서 통제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언제든지 내가 외출을 하고 싶을 때는 외출을 했고, 휴가가 필요하면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연대 안에서는 내가 소속된 대대를 가리켜 카추샤 부대라고 불렀다. 그 말은 부대의 분위기가 다른 부대와는 월등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소속된 대대 안에서 힘깨나 쓰는 병사들은 나를 개인적으로는 모두 형님같이 여겼다. 내가 내무반에 있으면 중대원들은 모두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물이 마시고 싶다고 하면 누군가가 즉시 물을 떠왔다. 내가 그 물을 보고, "야, 이 물에 대장균 있는 거 아니어?"하고 말하면,

내무반에 있던 다른 고참이 소리를 질렀다.

"청량음료!"

그러면 내무반에 있던 사람들의 눈짓이 급히 움직이고, 눈짓을 받은 병사는 부리나케 P·X로 달려갔다.

내가 내무반에 머무는 때에는 어떤 선임자도 하급자들을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나의 영향은 대대 본부중대를 기합없는 중대로 만들었고, 이런 일은 다른 중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 동안 내가 있던 부대 안에서는 아무런 사고가 생기지 않았다. 몇 년 동안, 한 명의 탈영병도 없었고, 한 건의 군기위반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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