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여행
서울에서 만난 사람
윤 소 연
스승은 자신의 진실을 전할 곳이 없어서 날마다 절망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계속되자 세상에서 진리를 밝히고 인간들을 깨우치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한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은 더 이상 무엇으로부터도 위안을 얻을 것도 없고 기대를 할 곳도 없다고 하며 서울로 가자고 했다. 1990년 5월이었다.
스승은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입구의 한쪽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자신의 앞에 메시지를 크게 쓴 종이를 펴놓고 그 옆에는 불을 켠 남포등을 갖다 놓았다.
'나는 내 자신을 최고의 깨달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세상의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으며, 인간이 가진 문제에 대하여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 이러한 일이 여러분의 앞날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지만 스승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술 취한 사람이 고함 한번 질러도 돌아보는 법인데,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 놓고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 말을 건 사람은 정신이상자인 30대 남자였다. 그는 처음부터 스승에게 반말을 했다.
"어이! 저리가"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왜 나를 이곳에서 가라고 하는가?"
"나는 공원 관리인이다."
그가 대답을 했지만 관리인은 아니었다. 그는 계속해서 횡설수설하며 스승을 괴롭혔다. 한참 후에 어떤 사람이 질문을 했다.
"당신은 깨달은 자요?"
"그렇다."
"죽은 사람도 도로 살려낼 수 있소?"
"나는 죽은 자의 몸을 보고 나서 대답할 수 있다."
그러자 그는 자기 옆에 있던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의 병을 고쳐 보시오."
"나는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나에게 찾아와서 병을 고쳐 달라고 부탁한 사람들은 많았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동정했고, 내 공덕으로 그들의 업을 내 몸에 받아들여서 병을 낫게 해주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병을 대신 앓고 있을 때조차 나를 이해하거나 나에게 감사하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런 이후로 나는 인간들의 병을 함부로 고쳐주지 않는다."
그가 다시 물었다.
"당신의 깨달음은 어디에 있소?"
"존재하는 것들 속에 있다."
"그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한 가지 물어본 다음에 그 일을 말해주겠다. 너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아는 것이 있으면 한가지만 이야기해 다오. 그 속에서 내가 말해주겠다."
"나는 개새끼를 안다."
"그런가, 그러나 나는 네가 어떤 개새끼를 알고 있는지 알지 못하니 아무 것도 말해줄 수가 없구나."
그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떠났다.한참 후에 공원 관리인이 왔다. 그는 바닥에 놓인 글을 읽어보더니 빈정거리고 지나갔다.
"이 사람 자기 PR을 하고 있구먼."
스승이 온종일을 앉아 있었지만 말이라도 건넨 사람은 겨우 서너 명에 불과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승은 탄식을 했다.
"나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단 말인가?"
그 다음날, 스승은 다시 어제 앉았던 곳으로 갔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한 남자가 오더니 사정하는 투로 말했다.
"우리는 이 장소에서 몇 년째 영업을 하면서 살고 있다. 당신이 우리 옆에 앉아 있으면 공원 관리인이 우리까지 쫓아낼 터이니 당신이 제발 다른 곳으로 옮겨가 주면 좋겠소."
스승은 그 말을 듣고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공원 밖으로 나와 큰 길가의 가로수 밑에 자리를 폈다.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은 아니나 다를까 외면하거나 멀찍이 피해서 지나갔다.
다음날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광화문 네거리의 지하도에 나가 앉았다. 그러나 그곳도 마찬가지여서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날 또 광화문 네거리로 나갔다. 그런데 자리를 정하고 앉자마자 건장한 청년 몇 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스승을 둘러싸더니 일어나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스승은 그들에게 왜 자신이 일어나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억압적으로 말했다.
"여기 앉아 있으면 안돼요. 다른 곳으로 가시오."
하는 수 없이 그들에게 쫓겨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이번에 자리를 잡은 곳은 파고다 공원 앞이었다. 공원의 정문 옆에 자리를 깔고 메시지를 펴놓고 등불을 켜 놓았다. 한 사람이 다가와서 다짜고짜 소리를 내질렀다.
"야, 이 미친놈아! 밝은 대낮에 왜 불을 켜 놓고 앉아 있냐?"
지나가던 사람들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모여들었다. 스승은 때를 놓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이곳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자신을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 자라고 말하고 있으며, 나는 세상이 가진 문제에 대해 대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뜻으로 인하여 모든 일을 나타나게 하고 있으며, 인간이 하나의 뜻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 세상의 일은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모든 일은 여러분 속에 있으며, 여러분이 짓게 되는 결과는 여러분 앞에 다시 있게 됩니다.
세상의 일을 알고 자신의 일을 아는 일은 바로 자기의 밝은 앞날을 얻는 길입니다."
모여든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이 나라의 앞날은 어떻게 되겠소?"
"나라의 앞날은 당신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당신들은 나라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고 있소?"
"잘 되기를 원하지요."
"어떻게 되는 것이 잘 되는 거요?"
그 사람은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서로가 믿고 의지하며 모두가 잘 사는 거지요."
"그런 일이라면 매우 쉬운 일이오. 먼저 당신들이 양심과 정의를 배우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면 되는 것이오."
"그런 것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지 않소?"
"당신들 모두가 진정 그런 일을 알고 있다면 왜 세상의 일이 이렇게 어두우며 사람과 사람은 서로 경계하고 있는 거요? 사람들은 양심과 정의를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오."
주위의 사람들은 스승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 물었다.
"내 이름은 무엇이고 또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지 알아 맞추어 보시오."
"너의 이름은 무엇이며 그리고 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그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스승이 말했다.
“나는 너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네가 하는 일을 보지도 못했다. 그러니 내가 어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깨달은 자가 아니다."
"너는 깨달은 자를 만난 적이 있느냐?"
"없다."
"그렇다면 너는 깨달은 자를 만난다 하더라도 몰라볼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깨달은 자란 의식의 눈을 뜬 자를 말하는 것이며, 진실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하며 거짓을 말하지 않는 자를 깨달은 자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스승의 말을 되받으며 말했다.
"당신은 아상(我相)이 너무 크다."
"나의 어떤 점을 아상이라고 하느냐?"
"당신의 말투가 그렇소."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에 거슬리는 말은 전부 아상이라고 하느냐? 콩을 콩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실하기 때문이고, 아는 일을 가지고 안다고 말하는 것은 사랑이 있어서 이다. 그러므로 사실을 모르고 사실을 판단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내가 만일 아상이 있는 자라면 왜 길거리에 앉아서 만인에게 세상의 일을 밝히려고 하겠는가.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 나는 이 시대에서 가장 사랑이 큰 자이다."
다음날도 스승은 파고다 공원 앞에 나갔다. 종교인 한 사람이 스승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당신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믿습니까?"
"나는 그런 사실을 본 적이 없다."
"당신은 성경을 읽은 적이 있습니까?"
"성경 속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나?"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어떤 것인가?"
"진리입니다."
"너는 그 진리를 아느냐?"
"나는 알지 못합니다."
"콩을 심은 곳에 콩이 났다면 그 일은 진리인가 아닌가?"
"진리입니다."
"그렇다. 있는 사실 그 자체가 진리다. 진실한 자는 날마다 진리를 말하고 살지만 진실이 없는 자는 눈앞에 진리를 두고도 그것을 말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있는 일을 알고자 하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지만 있지도 않은 것을 알고자 하거나 아는 것처럼 말하는 일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다른 사람이 질문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일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주어라."
"당장 배가 고파서 일어날 수도 없는 처지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누가 그토록 배가 고픈지 데리고 오너라. 내가 그 사람을 보고 나서 해야 할 일을 말해 주겠다."
다음날이었다. 한 사람이 스승에게 말했다.
"당신은 천부경의 비밀을 아시오?"
"천부경이란 무슨 책인가?"
"이 시대를 구할 비전(秘典)이오."
"너는 그것이 비전인 것을 어떻게 알았나?"
"세상에 그렇게 전해왔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내용을 한번 말해 보라."
"삼삼은 구요, 구구는 팔십일이라. 천부경은 팔십 한자의 글로 되어있고 그 책에는 한민족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예언이 들어 있소."
"내용을 그대로 읽어 보라."
그 사람은 천부경을 한문 그대로 읽었고 스승은 유심히 듣고 나서 말했다.
"나는 알 수 없는 말이구나.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내용이 인간의 손에 의해서 전해졌다는 것이다. 만일 미래의 일을 아는 자라면 현재의 일도 알고 과거의 일도 알 것이니 그는 그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인이다. 그 사람을 보면 그 글의 진실도 알게 될 터인즉 그 글을 지은이는 누구인가? 한 사람의 뛰어난 자가 나타난 곳에서는 뒤따라 많은 뛰어난 자들이 나오게 된다. 이는 좋은 땅에서 좋은 열매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많은 인재가 그 땅에 나게 되면 그 세상은 밝은 세상이 되고 그 곳의 인간들은 번성하게 된다. 증거가 없는 말로 남을 기만하는 자가 많이 나게 되면, 그 세상은 어둡고 혼란하게 될 것이다."
스승은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진실을 구하는 자를 찾기 위해서 밤낮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