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비가(悲歌)
인적이 없는 숲속에는 한낮에도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먹을 것을 구할 길이 없었던 화전민에게는 산나물과 나무껍질(초근목피)로 하루의 끼니를 끓이는 참담한 일이 생겨나고 있었다.
계속된 기근과 전쟁에 대한 일들이 세상의 인심을 바꾸어 버려 산골에서까지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을 경계했고, 타민족(일본인)의 지배를 받아오던 동족끼리도 생명에 대한 경시풍조가 생기고 있었다.
1941년 여름철이었다.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우동부락 안우동골이란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외진 산골에는 누가 살다가 버리고 간 집인지 모르는 오두막 한 채가 있었다.
해만 지면 오두막집은 숲속의 그림자에 가려 밤을 더 어둡게 하였고 음침한 기분은 꼭 무서운 일이 금방 생길 것만 같았다.
어설프게 바람구멍만을 때운 단간 방 안에는 여덟 명의 생명이 움츠린 채 밤을 새워야 하니 달리 찾아갈 곳도 없었던 일가족이 당장의 고달픈 생활을 꾸려보려고 머문 곳이다.
병든 남편과 철 나지 않은 자녀를 여섯 명이나 거느린 여인의 생각은 그래도 남편이 건강할 때는 지리산 계곡을 찾아다니며 주인없는 산에 불을 놓고 땅을 일구고 하던 화전민 생활을 할 때가 행복했다고 여겨졌다.
이제는 큰 딸애가 뜯어 오는 산나물과 자신이 벗긴 나무껍질로 하루의 끼니를 짓다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허기진 사람들은 조그마한 더위에도 땀을 흘렸다. 이곳의 가족은 아침이 되면 같은 생활을 두고서도, 어제 있었던 하루를 지날 때보다 오늘을 견디기가 더 힘이 들었다. 이런 비극은 계속되었다.
성한 사람이나 아픈 사람이나 다같이 머리 속에는 세상의 여느 집안 사람들과는 달리 절망이라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한다. 언제나 다급한 생활뿐이다.
아버지는 점점 더 심해지는 속병이 빨리 나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가족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갔으면 싶었고, 어머니는 죽은 조상이 남편의 병을 고쳐주길 바랬다.
열네 살짜리 큰 딸은 이야기 속의 공주님 생각을 하며 어서 자기를 데려가 줄 사람을 기다렸다. 나머지 어린 자식들은 한결같이 쌀밥을 한 번 배부르게 먹어 보았음하고 침을 삼킨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힘이 들었고 고달팠다. 감았던 눈을 뜨면 당장 암담한 현실이 눈앞에 보였다. 누렇게 뜬 얼굴, 앙상한 서로의 모습, 이런 가족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더 많은 고통을 느꼈다.
온종일 먹을 것만을 찾아 허둥대는 철없는 아이들의 행동이 너무 측은해 자신을 잊게 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금방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이런 현실을 바꾸어 보기 위해 신을 믿기 시작했다.
오직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옛말을 믿고 싶었고 그런 생각들이 생활에 큰 용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육체는 가족들을 위해 내몰았고 정성은 신을 찾는 몸부림 뿐이었다.
남이 하는 백일기도도 드려보았고 또 정성이 부족할 것 같은 생각이 들 땐 추운 날씨에도 냉수로 목욕을 하고 어두운 밤중에도 밖에 나가 혼자 산신님을 부르며 기도를 했다. 또 어떤 때는 용왕님을 부르기도 했고 칠성님께 빌 때도 있었다. 부처님을 보고 빌었고 조상님을 찾기도 했다.
어머니는 시간이 생기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신을 찾았다. 어머니의 모은 두 손 끝에는 인간의 모든 정성이 담겨져 있었다.
아버지는 이런 일을 보면서 세상을 한탄했고 아이들은 그냥 자신들의 머리 속에 생기는 공포나 불안같은 것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 속에서도 생각치 않은 일들이 닥친다.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외진 안우동골 숲속에 긴 칼을 차고 총을 맨 사람들이 찾아왔다.
일행들은 겁에 질린 아이들의 얼굴을 외면한 채 엄포를 놓았다. 사상범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따지면서 숲속까지 모두 뒤진 것이다.
일본인 순사가 크게 보아 주는 척 순박한 어머니를 두고 따로 듣는 사람도 없는데 훈시를 했다. 그러면서도 이 집에 남아 있던 놋쇠로 된 대접(조상의 유물) 몇 개를 챙기더니 징발이란 말을 내뱉고 뺏아갔다.
조상님의 제사 때 밥을 담아 놓던 귀한 그릇을 빼앗기면서도 힘이 없는 사람들은 분한 마음도 잊고 있었다. 사람 무사한 것만이 죽은 조상이 도와 준 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인지 어머니는 이런 일을 당한 날은 더욱 신의 은총을 믿으며 기도에 정성을 쏟았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저희네 가문이 일어나게 축복을 내리사 소망성취 이루어 주소서.
이렇게 기막힌 기도는 날마다 계속되었고 지칠 줄을 몰랐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날 밤이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어머니 앞에 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백발이 성성한 인자한 모습으로 말을 전했다.
너의 정성이 하도 지극하여 일러 주노니 내일 날이 밝거든 내가 이르는 대로 하거라. 너희가 사는 곳에서 청암 쪽으로 들어가면 지리산 어느 지점에 큰 나무가 있을 것이다. 그 나무 앞에 찾아가서 정성을 드리고 나면 훗날 좋은 일을 알게 되느니라.
그런 후 잠을 깨니 신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어두운 적막 속에서 어머니가 느낀 것은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아버지가 한숨을 내어 쉬며 자리에서 인기척을 했다.
어머니는 호롱에다 불을 붙였고 두 사람은 심상찮은 얼굴로 서로를 살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아버지 역시 그런 환상을 보았다며 신기해 했다.
두 사람은 금방 부풀어 오는 희망을 가지며 밤을 새우면서 상의를 했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에 깨끗한 개울물로 목욕을 하고 신에게 더욱 정성을 모으며 축원을 했다. 그리고는 꿈을 찾으러 이른 아침, 허기도 잊은 채 바쁘게 집을 나섰다.
왕복 백여 리가 넘는 신령이 가리킨 지점까지는 여인의 하룻길로는 무리가 되는 거리였지만 기를 써서 걸어갔다.
내를 건너고 작은 산을 넘으며 또 숲을 지나면서 갈증과 허기를 참았다. 한 번도 다녀보지 못한 현장을 찾아가는 어머니는 한낮이 넘어서야 꿈 속에서 본 현장과 같은 곳을 찾은 것이다.
수백 년을 묵은 것 같은 거목을 바라보며 두렵고 반가운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는 손이 떨렸다.
산신령님 산신령님 은혜를 내려 주십시요.
어머니는 온갖 정성을 다해 자신의 가슴 속을 뜨겁게 하는 애원을 했다.
마음 속에는 밀려오는 기대 때문에 피곤한 것도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다. 벅찬 감동 때문에 그때까지 모든 것을 잊은 어머니의 시야에 산의 능선에서부터 그늘이 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당장 어둡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왔던 길로 되돌아 섰다. 오랜 만에 몸도 마음도 훨훨 날 것 같은 가벼운 기분이었다. 복이 복이 축복이 온다.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 기분을 느끼면서 서둘러 오는 길은 잠시 후엔 어두움 속의 험한 길이 되었지만, 희망에 부푼 발걸음은 외진 길에서도 두려움을 이길 수가 있었다.
흠뻑 땀에 젖은 몸으로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된 시간이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로 인해 속을 태우던 아버지의 마음도 어머니가 돌아오는 기척이 나자 금방 반가운 마음이 생겨 오랜 만에 밝은 표정을 지었다.
먼 길을 다녀온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욱 신기했다.
얼마 동안은 두 사람의 마음 속에 행복같은 것이 있었고 기대감 속에서 스스로 위안을 받아 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가면서 계절은 바뀌었고 다시 짜증스러운 일들이 하나, 둘 숲 속의 빈가에서 생겨났다. 다급한 현실들이 자꾸 눈앞에 나타나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은 기대같은 걸 잊고 다시 옛날로 되돌아 갔다.
어머니는 언제나 열심히 기도를 했지만 어떤 기적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더욱 난감해진 것은 어머니의 배가 점점 불러 오는 것이었다. 하루 하루를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는 어머니의 행동은 불편해진 몸으로 가족들과 함께 허기진 배를 참는 일로 힘들게 일 년을 견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