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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가르침이란

 

법(法)은 왜 지켜야 하는지?

법은 인간의 세계에서 꼭 있어야 하는지?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법률이 가지게 되는 일 속에서 사는 사람들일수록 법에 대해서 궁금하거나 회의를 느낄 때가 가끔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법은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에는 온갖 형태의 사람들이 있고, 사람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척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법이 없다면 사람들은 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할 것이고 따라서 세상은 제멋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사회는 너무나 불행하고 위험한 사회로 돌변할 것이다.

'법은 꼭 지켜야 하는가?'

지켜야 할 법은 지켜야 하지만 지킬 필요가 없는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법은 인간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 공정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가져야 하는데, 그 공정성이 허물어진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소크라테스가 결코 악법(惡法)을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그 말을 했던 요지는, 악법도 법은 법이니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깨우쳐서 세상 사람들이 그러한 악법을 경계하고, 악법을 벗어나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악법을 지키고 악법에 순종하라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떤 법이 어떤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진실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나 원칙 같은 것이 있는지?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깨달음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를 때는 자연적으로 거짓을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쁜 일을 한 번 하게 되면 그 나쁜 일이 자기 속에 입력된다. 그래서 같은 일을 보게 되면 무심결에 그런 일을 되풀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길이 들어서 그 사람의 의식에서는 항상 나쁜 일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의식이라는 것은 있는 일을 그대로 받아서 자기 속에 간직하고, 자기 속에 들어온 것은 계속 활동을 통해서 자기에게 그와 같은 일들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의 사물을 볼 때 어떤 사람은 제대로 보고 어떤 사람은 차이가 있게 본다. 진실도 이와 같다. 사람마다 진실이 다 같지는 않다.

진실이 큰 사람이 있고 진실이 작은 사람이 있다. 진실이 큰 사람은 거짓을 잘 말하지 않고 항상 있는 것을 말하게 되고, 진실이 부족한 사람들은 항상 있는 일에다가 무엇을 보태거나 빼서 거짓을 말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가 진실한 자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해 놓은 일을 보면 이 일은 진실한 사람이 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양심이 있으면 진실하다. 양심이 있는 자는 남의 일을 할 때에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있는 일을 생각하고, 자기가 돈을 받는 것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한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는 인간의 진실성 문제이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진실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진실성은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 사회환경에 의해서 파괴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있는 일을 얼마만큼 제대로 배우느냐 배우지 않느냐에 따라서 의식이 진실하게 길들여질 수도 있고 또는 진실을 상실할 수도 있다.

진실에 대한 기준은 있는 일을 보고 거기에서 정해야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는 상대방의 진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다만 사람을 한두 번 만났을 때는 어떤 가장(假裝)에 의해서 속을 수도 있으니까 몇 차례 계속적으로 잘 관찰해야 한다. 상대방의 행동을 계속 관찰하다 보면, 사람은 자기 속에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몇 차례는 속이다가도 결국 그 사람의 본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방의 본성을 보고 나서 그 사람의 진실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진실을 얻고자 하는 데는 하나의 깨달음이 중요하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는 기본은 있는 일에 대해서 진실성을 아는 것이다.

있는 일을 똑바로 알아야 깨달음이 있게 된다. 그리고 깨달음이 있어야 나쁜 일을 안 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일을 하지 말아라." 이런 말은 백 번을 한다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쁜 일을 안 하고 싶었는데도 자기로부터 행동이 나와서 나쁜 일을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몸은 의식의 지배를 받고, 의식 속에서는 자기 속에 있었던 활동에 의해서, 어떤 환경에 부딪치면 항상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의식을 진실하게 하고 싶다면 먼저 깨달음과 접해야 될 것이고, 깨달음과 접하기 위해서는 있는 일에 대해서 알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있는 일을 알게 되면 거짓말을 안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일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사실과 다르게 말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다.

 

우리 사회에서는 각종 구호를 많이 내세운다. 국가적인 구호에 호응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가 아닌지?

사람들은 진정으로 알아야 할 일은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항상 쓸데없는 일들에 매달려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도덕성을 회복하자." 이러한 구호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 지도층이라는 대학교수나 국회의원, 장·차관, 대기업 간부임원 등을 다 모아 놓고 "도덕이 무엇인가?"하고 물으면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윤리나 지침, 강령 등을 열거하면서 도덕을 설명하려고 할 지 모른다.

도덕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덕성을 회복하자"는 구호를 외치면서 따르라고 한다면 도덕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도덕성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도덕성을 회복하자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도덕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도덕성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해답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우리가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풀어서 가르치는 일이다.

농사를 짓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땅을 주면서 좋은 열매를 수확하라고 아무리 강요한다 해도 좋은 열매를 얻는 기술을 알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가 좋은 열매를 수확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큰 부담만 안겨 주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얻어 오라는 말을 할 때는 상대방에게 먼저 좋은 열매를 얻는 기술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좋은 열매를 가져오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적으로 그 사람은 자기가 아는 기술을 활용하여 좋은 열매를 만들어서 가지고 오게 된다는 것이다.

실례(實例)를 들겠다. 1960∼70년대에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씨는 우리 나라 전역에 새마을 운동이라는 것을 보급시켰다. 그리고 정부나 언론에서는 이 새마을 운동이 우리 사회에 부(富)의 원천이 되었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확인해 보면, 사실 새마을 지도자나 새마을 부녀회장이라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기여할 만한 유능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또한 새마을 운동 중앙본부나 정부조직에서 국민들에게 국가 부흥의 길에 대해서 아무 것도 가르친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능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국가를 부흥시키는 국민운동을 했다는 것인가. 이러한 일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농로나 골목을 넓히고, 집을 개량했다 해서 그것이 부의 원천이 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새마을 운동이라는 구호 아래 일련의 사회 단체를 만들어서 그 사람들에게 힘을 부여해 주고 그 힘을 이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정권이 권력유지를 위한 밑바탕을 만든 것이며 정권이 국민을 이용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국가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그 부흥할 수 있는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기술을 가르쳐서 기술자가 되도록 하여 그 기술자들이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고, 수출을 많이 해서 국가를 부흥시켰다거나, 정신적인 면을 가르쳐서 그 정신이 좋아져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원천이 되어 많은 장인(匠人)을 배출하고,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양성했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히 국가를 잘되게 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새마을 연수원에는 그런 가르침이 전혀 없었다. 실제로 그곳에 나와서 강연을 한 교수나 연사들은 세상에 있는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장님들이었다. 그러므로 하나의 구호나 말만으로는 오늘날 위기에 빠진 우리 사회와 사회를 구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단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언론들이 이러한 일에 대해 국민들에게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언론은 지금까지 이런 진실을 밝히는 일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것은 이 사회에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개혁의 목소리는 높지만 어떻게 이 사회를 개혁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있는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람들을 모아 놓고 어떤 일을 하자고 구호를 외치고 말만 내세운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헛일에 불과한 것이다.

 

어떤 가르침이 좋은 가르침이며, 어떤 가르침이 나쁜 가르침인지?

좋은 가르침이란 있는 일을 바로 가르치는 것이다.

자기가 좋은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있는 일을 바로 배우는 것이다. "어떤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가?"

농부는 농사기술을 제대로 배우면 훌륭한 농부가 될 수 있다. 기술자는 자기 직장에서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의 기술을 제대로 배우면 훌륭한 기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운전기사는 운전 기술을 제대로 배우면 훌륭한 운전기사가 될 수 있다. 세분화되어 있는 현대 사회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 좋은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나쁜 가르침이란 있는 일을 그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정의(定義)를 들으면 "그런 것 정도야 나도 안다"고 하겠지만 내가 세상에서 보았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실례를 들겠다. 영국을 여행했을 때, 런던에서 한 사람과 만났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영국에서 유명한 철학자였다. 약속을 하고 정작 만났을 때, 그는 내 모습을 보고는 차(茶)도 내놓지 않고 시계를 자주 쳐다보는 것이었다. 빨리 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그에게 말했다.

"나는 영국에 오면서, 영국에 가면 좋은 가르침이 있고, 또 좋은 스승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아직도 영국에서 나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자존심 강한 영국의 철학자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한마디 내뱉었다.

"영국에는 좋은 가르침도 많고 좋은 스승도 많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한 가지만 당신에게 질문하겠다. 방금 당신이 영국에도 좋은 가르침이 있고, 좋은 스승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좋은 스승이고, 어떤 가르침이 좋은 가르침인지에 대해서 대답해 달라. 내가 그 대답을 들으면 즉시 이곳을 나가겠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록 대답이 없었다. 그 철학자는 얼굴만 점점 더 붉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그 대답을 내가 이 자리에서 해주고 가도 괜찮겠는가?"라고 하자 그제야 말해 달라고 했다. 나는 즉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많은 가르침이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좋은 스승이란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을 좋은 스승이라고 한다. 그리고 좋은 가르침이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것을 좋은 가르침이라 한다."

그러자 철학자는 얼굴에 화색이 가득해지면서 나에 대한 태도가 돌변했다. 당장 비서를 부르더니 차와 음식을 권하면서 무엇을 말하겠느냐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시계를 쳐다보지 않고 나에게 질문을 하고 나의 대답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인도의 델리 대학에 초빙되어 갔을 때 철학과 교수 8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들 앞에 앉자마자 2명은 나가고 6명이 남았다. 나머지 6명도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이 바쁜 것 같다.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한 가지만 물어 보고 가겠다. 유명한 대학의 철학과 교수들이니 당신들이 가르치고 있는 철학에 대해서 질문하겠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에 대한 정의를 내려 달라."

그러자 6명의 교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한참이 지난 후에 일어나면서 말했다.

"내가 당신들 입장이라면 나에게 최소한 이런 말을 되물었을 것이다. '철학의 정의에 대해서 밝혀 주십시오'라고."

이것이 오늘날의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이다.

철학이라는 용어에 대한 해석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철학을 가르치고, 석사를 만들어 내고, 박사를 만들어 낸다. 과연 그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이후에 무엇을 하겠는가. 그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와서 대학 강단에 선 사람은 전임강사로부터 시작해서 교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많은 젊은이들 앞에 서서 가르칠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 교수가 가르치는 내용은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인도의 힌두 대학에 초빙되어 갔을 때, 그곳에는 학장과 20여 명의 교수, 그리고 대학원생들이 학장실에 모여서 매우 호의적인 만남을 가졌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오늘 나를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으니 나도 우정의 표시로 좋은 선물을 하나 남겨주고 싶다. 이 선물을 여러분이 갖는다면 이것은 일생 동안 여러분을 당당하게 해줄 것이다.

나의 선물은 물질이 아니고 가르침이다. 먼저, 여러분이 나의 선물을 시시하다고 할 지도 모르니까 선물을 주기 전에 이 선물이 시시하지나 않은지 먼저 확인해 보아야겠다.

그래서 한 가지 물어보겠다. 세상에는 많은 철학자들이 있고, 또 대학마다 철학과를 만들어 놓고 철학을 가르친다. 과연 당신들은 철학의 정의를 무엇이라고 나에게 말해 줄 수 있는가? 당신들이 배우고 가르쳐야 할 철학에 대한 정의를 밝혀 달라."

그런데 그들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교수가 말했다.

"그 대답은 학장만이 할 수 있다."

그러자 학장은 마지 못해 일어나서 그들이 썼던 논문을 가져와서 그 내용을 읽었다.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의 글에도 일리(一理)는 있다. 그러나 내가 묻는 것은 '과연 철학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자 학장이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그 해답을 선물로서 주겠다. 철학이란 있는 일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미래에 있게 될 진실을 밝히는 것은 미래철학을 하는 것이고, 서양 사람들의 어떤 생활이나 정신적인 진실을 밝히는 것은 서양철학이고, 동양 사람들의 사고를 알아내고 밝히는 것은 동양철학이며, 그리고 생활 속에 있는 일들을 밝히는 것은 생활철학이고, 정치에 대해서 그 비밀을 밝히는 것은 정치철학이다.

모든 것의 있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하고 나는 말했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가르침은, 가장 좋은 교육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한국의 대학이나 외국의 수많은 대학에서는 아무도 몰랐는가?

진실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배울 수 없었던 것을 이제부터는 누구라도 배울 수 있다.

사람은 삶을 통해서 자신의 길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삶이 가장 훌륭한 삶인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생활을 하고, 그리고 그런 일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모든 사람들이 점점 근면하고, 검소하고, 정직하게 살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천국이 될 것이다.

있는 일을 바르게 알고 자기가 아는 것을 남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한다면 바로 이것이 세상을 밝히는 길이고 천국을 만드는 길이다.

對談

사람들은 진정으로 알아야 할 일은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항상 쓸데없는 일들에 매달려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일     시 : 1998년 3월 29일

장     소 : 국제정신문화연구원

대담자 : 원장  이 삼 한

                 박수태. 이문우. 김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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