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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人間)과 신(神)

 

 

성공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최고급의 양식

 

편 집 부

 

인간은 왜 신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왜 신은 인간과의 접촉을 끊임없이 시도해 왔는가?

인간의 세계에는 아직도 신(神)들의 활동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는 결과 속에 있는 일들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인간의 세계에 많은 잘못들을 존재하게 했고 그 피해 역시 적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일들에 대한 진실을 밝혀 보고자 한다.

먼저 신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과 인간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신들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보자.

 

 

인간들이 신(神)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연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것인가?

 

생명의 세계를 벗어나서 의식체들 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신의 세계'라고 말하고, 그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의식체들을 '신(神)'이라고

말한다.

의식체들이 존재하고 있는 신의 세계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4가지의 차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높은 차원에 존재하는 신들일수록 생명의 세계에 있는 인간과의 접촉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인간들이 접촉해 왔던 신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인간 사회에서는 인간의 세계에 나타나는 신이라는 대상을 두고 몇 가지의 용어를 혼용(混用)하여 지칭(指稱)하고 있다.

생명체를 벗어난 의식체-영체(靈體)를 두고 신·영혼·신령·성령·악령·귀신·잡신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용어들은 한 가지의 같은 대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간혹 어떤 부류들은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신은 특정한 대상의 신이라고 내세우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대상을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을 따름이다.

생명의 활동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의식체(意識體)들 중에서 자신 속에 애착이나 한 그리고 여러 가지 문제를 갖고 있는 영체들은 생명의 세계를 떠난 후에도 자기 속에 있는 문제에 붙잡혀서 계속 인간의 세계에 머물게 되고 인간에게 접촉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신이 인간과 접촉을 하게 되면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대체로 그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이상한 말들을 하거나 인간이 신을 섬겨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의 정신을 괴롭히거나 몸에 고통을 주는 등 여러 형태를 통해서 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리려고 하며, 인간의 육체를 이용하여 자신들이 가진 애착이나 한을 푸는 일을 대신하도록 한다.

인간의 세계에서 인간들이 신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매우 불행한 일이며 자신들의 미래를 망치게 하는 근원이 되고 있다.

인간의 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신들은 왜 인간을 통하여 자신 속의 일들을 해결하려고 하는가?

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신들의 세계를 존재하게 하고 있는 영체들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며 어떻게 해서 있게 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영체는 행위의 법칙에 의하여 만들어지게 된 것이며 자연 속의 현상에서 볼 수 있는 물질이나 생명체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세계에 나타나는 신이라는 대상은 두 가지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대부분의 신들은 인간의 몸으로부터 나온 영체이고 극히 일부의 것들은 오랜 시간을 통해 활동할 수 있었던 대상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의 영체들이 왜 인간의 의식에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인가?

영체가 생명을 떠나서 장시간이 지나도록 부활이 이루어지지 않고 인간의 세계에 남아서 인간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체로 영체들은 자신 속에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영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자신의 생명활동 속에 있었던 일들에 의해서 생기게 된 것들이며, 한 번 자신에게 존재하게 된 것들은 자체 속에서 끝없이 활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자신이 그 문제들에서 벗어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생명체는 활동을 통해서 자신 속에 있게 된 결과를 자신 속에 남기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활동으로 있게 되는 일의 결정체를 자신의 영체 속에 그대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이 결정체에 의해서 끝없이 같은 활동을 되풀이하게 된다. 이런 일을 두고 업(業)이라고 말한다.

업이 많고, 업이 큰 인간이 죽었을 때는 그 영체가 부활을 하거나 또는 더 높은 차원으로 이동하는 일이 불가능하므로 영체는 그대로 인간의 세계에 남게 되어 인간과의 접촉을 통해서 자기 속에 있던 일들을 계속하려고 한다.

신(神)의 세계에는 4가지의 차원이 있고 인간이 죽으면 그 영체는 삶 속의 활동에 따라 4가지의 차원으로 각각 가게 되는데, 높은 차원의 세계일 수록 자신 속에 업의 활동이 매우 적거나 없어야 갈 수 있게 되며, 자신 속에 큰 애착이나 한이 없는 영체들은 윤회를 통해서 부활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 속에 애착과 한이 커서 인간 세계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을 자기 속에 가지고 있는 영체들은 인간의 세계에 그대로 머무르게 된다.

이와 같이 죽어서도 인간의 세계에 머무르는 영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이러한 영체들 중의 일부는 인간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영체들은 인간과 접촉을 하기 위해서 제각기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일단 인간과 접촉이 성사되면 자신이 접촉한 대상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위한 시도를 한다. 이때 나타나는 현상으로써 자신이 접촉한 인간에게 고통을 느끼게 하여 영체의 존재를 알리려고 한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만났다고 주장하는 신들의 대부분은 이제까지 설명한 것과 같거나 유사한 형태의 영체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신의 영체로 인해 자신에게 미치게 되는 영향을 아는 일이다.

 

실제적으로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신과 접촉하고 그들에게 붙잡혀있으며 특히 종교를 찾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신을 받아들이고 신에게 붙들려서 그들의 의도대로 조종되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진정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들이 하고 있는 말과 행동에 대해서 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확인해보지도 않은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현상계의 근원은 있는 일과 있게 되는 일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일은 법칙 속에 있던 일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체와 접촉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현상계의 근원과 법칙 속의 일들을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런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자신이나 세상의 앞날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만일 지금까지 인간 세계에 나타났던 신들이 인간에게 축복을 줄 수 있었다면 그 근거로서 인간 사회에 세상의 진리적인 부분이 이미 밝혀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것도 밝혀지지 않은 것은 그 동안 인간들이 접했다는 신들은 현상계의 일이나 진리 속에 있던 일들에 대해서 모르는 신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인간 세계에서 신이라는 대상에 대하여 평가하고 대우하는 척도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의 질문이 있었다.

"신은 인간의 삶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대답은 이렇다.

"수학의 문제는 공식을 통해서 답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어떤 일이라도 문제를 정확히 보지 않고 대답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좋지 않는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있는 일이 우리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은 있는 일의 진실을 앎으로서 자기 속에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는 일이다.

오늘날 인간 사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조종을 받고 있으며 신과 접하고 있는 자들에 의하여 또 다른 사람들의 의식에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무당이나 점술인들이 신을 이용하여 어떤 사람의 의식 속에 있던 일을 투시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에게 있게 되는 길흉화복을 바꿀 수는 없다. 오히려 신을 접하지 않은 사람이 신을 가진 사람과 가까이하게 된다면 그 사람도 신의 조종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신에 의지하고 신의 조종에 따르게 되면 현실의 일을 무시하게 되는 때가 많고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을 해도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된다.

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왜 자신이 신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신을 접하고 조종을 받게 되었을 때 자신의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번 신에게 붙잡힌 자는 누구도 그 신의 조종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인간의 세계가 보아 온 신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까지 신에 대한 확인이 어렵고 불가능했던 것은 인간 세계에서 신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신을 보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서 어떤 일이 나타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정확한 판단이 될 때까지는 그 사람과 신에 대한 경계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인간의 세계에서 신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있는 일이 어떻게 해서 있게 된다는 진리적인 말을 하고 있지 않으며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믿음만을 강요할 뿐이다.

악마의 영체(惡靈)를 가진 신의 사주를 받고 있는 자에 의해서 신에게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을 요구받고 그대로 행한다면 사람들마다 악마에 의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인간 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신들이란 대부분이 인간의 몸으로 살았을 때 의지가 매우 부실했던 자나, 탐욕과 애착이 컸던 자나, 풀지 못한 한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죽어서 그 의식체가 인간의 세계를 떠도는 것인데 이러한 영체들이 인간 세계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던 사회에서는 인간과 신의 접촉이 크게 성행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부정했고 신에게 있던 일에 사람들의 일을 의탁하려는 풍조가 만연했다.

세상의 일들이 잘되고 잘못되는 것은 인간과 접한 신들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의식이 세상의 일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잘 행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도 있고 그 결과가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종교들이나 신들 속에 인간을 축복할 수 있는 종교적인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인간 사회에 그 가르침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신을 접하고 신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신의 말들이 현실의 일들과 같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야 할 것이며, 인간 사회에 필요한 정보나 인간의 삶을 위해 필요한 가르침을 말해야 한다.

그럴 듯한 말과 듣기 좋은 소리, 있지도 않는 이야기와 확인할 수 없는 말들은 인간 세계에서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참된 삶의 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좋은 가르침이란 있는 일의 진실을 밝혀서 좋고 나쁜 결과를 있게 하는 과정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는 좋은 가르침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점은 인간들의 삶에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 성인들이 나타나서 인간들을 깨우치려 했던 이유는 인간들이 있는 일을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있는 일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먼저 확인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은 하나의 원칙에 의해서 해답을 갖고 있고 이 해답은 있는 일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그것에 연결된 문제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며 어떤 문제라도 원칙으로 확인하면 그 해답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신은 인간에게 이로운 일보다 오히려 많은 문제들을 만들게 되는데 왜 인간 사회는 신을 숭배해왔으며 신이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고 알고 있는가.

 

모든 신들이 인간에게 피해만을 준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세계에 머무르는 신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무지를 깨우치지 못하여 자신 속에 있던 일들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세계에 나타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신들은 인간의 세계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종교계통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남의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 자들이 더러 있는데 이런 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진실을 규명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이적(異蹟)을 보였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종교계통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적을 행한다는 자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상한 일들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기관(器官)들과 그 기관들의 활동에 의해서 자신을 존재하게 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들을 신이 인간이 원하는 대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면 인간 사회에 왜 병원이 필요한 것이며, 왜 인간이 원하지 않은 일로 인해서 생명을 잃는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가.

만일 어떤 사람에게 실제로 이적이 일어난 사례가 있었다면 그것은 신에 의한 고의적인 장난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자동차의 기관과 그 원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자동차를 제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자동차의 한 부분에 의도적인 장애(障碍)를 만들어 놓으면 그 자동차는 운행하기 어렵다. 그러나 장애를 없애고 원래대로 해놓으면 정상적인 운행을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신이 어떤 사람과 접촉하여 육체의 한 기관에 고의적으로 장애를 만들어서 그 사람에게 이상(異常) 증상을 일으켰다가 다시 원래대로 해놓으면 이상 증상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이적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종교는 신을 내세워서 인간으로 하여금 신과 가깝게 하고 현실의 있는 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하고 있다.

 

 

예수를 내세우는 종교가 인간들에게 축복을 주고자 한다면 예수의 가르침을 전해야 하는데 그 종교는 인간들에게 하느님의 권능을 소개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자신을 구원받고 또 영생을 얻는다.'고 한다.

 

세상 속에 있던 일을 통해서 확인해보면 '하느님' 그 자체가 세상의 어떤 일에도 조금의 영향력도 끼친 예가 없다.

종교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써 인간의 몸을 빌어 세상에 왔다.'고 하지만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써 밝혀진 것은 아직까지 아무 것도 없는 실정이다.

법률에 의해 판결하는 재판에서 아무런 증거가 없는 사안(査案)은 판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종교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근거로써 기록을 내세우고 어느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같은 기록을 통해서 간단하게 사실 확인을 해보면 된다.

기록에 의하면 아기(예수)를 낳은 장소에는 산모와 한 남자가 있었다. 산모와 남자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산모가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게 된 것은 남자와 아직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분상으로 처녀였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의 신분으로 산모가 되어서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그 아기가 하느님의 자식이라고 주장한다면 지금도 우리 나라에는 하느님의 자식들이 수없이 잉태되고 있으며 산부인과의 의학 기술이 없다면 수 없는 하느님의 자식들이 탄생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한 사실여부는 있는 일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예수가 세상에서 활동하는 동안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예수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고 자신은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인간들이 실제로 중요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건 사람의 아들이건 간에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일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이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이 자신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예수가 인간의 세계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고 양심이 큰 좋은 사람이었으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들 앞에 나섰기 때문이다.

종교는 예수가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를 영접해서 구원을 받으라고 주장한다.

예수는 세상의 원칙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자신 속에 있던 일로 인해서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설명한 것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자신을 구할 수 없다.'

'나'라는 대상과 '자신'이라는 대상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그것은 한 가지의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통하지 않으면 자신을 구할 수 없는 것은 세상에 있는 원칙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삶은 자신의 뜻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이다.

나 자신이 공사장에 가서 하루를 일하면 몇 만원을 벌 것이고, 나 자신이 하기 싫어서 하지 않으면 몇 만원을 못 벌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의 뜻에 의한 것이다.

내가 일하러 가고 안가고, 나를 굶고 배부르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의 뜻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음식을 충분히 사서 먹게 되면 내 배가 부를 것이고, 내가 일하지 않고 돈이 부족해서 충분히 사 먹지 못하면 내 배가 고픈 것이다. 이런 것들은 전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모두 나의 뜻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통하지 않고 자신을 구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은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구해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세계에는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것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가르침이 좋은 것이며, 어떤 가르침이 나쁜 것인가에 대해서도 전혀 구별할 줄 모른다. 거기다가 있는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말을 들으면 항상 자신의 생각으로 이해하고 결정하고 있다.

세상은 하나의 법칙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법칙의 세계라는 것은 있는 것과 있는 것들이 만나서 현상을 만들어 내는 일을 두고 말하며, 세상 속에는 온갖 현상들을 만들어내게 하는 일들이 존재하고 있다.

누구든지 이런 일들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면 자신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에게 의지해서 좋은 삶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종교에다 의지하려고 하지만 만일 그곳에 가게 되면 자신은 두 번 속게 될 것이다.

교회나 절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주 그곳을 찾고 남에게 의지하려 한다면 가장 먼저 사람에게 속게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신에게 속게될 것이다.

오늘날의 종교가 내세우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항상 그 진실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또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만일 이 시대에 사성제(四聖諦)를 말하고 8정도(八正道)와 십이연기(十二緣起)를 논하면서 해탈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는 종교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그대로 따르게 된다면 그들은 자아(自我)를 상실(喪失)해 버리게 될 것이다.

자아를 상실한다는 말은 자기를 죽이게 된다는 말이다.

자아를 상실해버리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바보천치로 변해 버렸거나 또는 있는 일을 보아도 보지 못하는 더욱 캄캄한 장님이 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한 장소에 앉아서 다른 곳을 본다거나 남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허공에 떠돌던 신을 자기 속에 얻어서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자아상실과 자아완성(自我完成)은 말은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말이다.

자연의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인간 완성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의 가르침이 하는 일은 세상의 일을 밝히는 일이다.

있는 일을 그대로 설명하고, 지적하고, 토론하고, 질문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는 것이며, 이 일은 사람들에게 자아완성에 가장 필요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있는 일을 알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배우고, 증거를 듣고 확인해야 한다.

자연의 가르침의 내용들은 있는 일을 통해서, 있는 일 속에 있게 되는 것들이 어떻게 해서 있게 되며, 어떤 있는 일들이 어떻게 해서 인간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진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어라. 그러면 예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세상의 있는 것들을 있게 한 진리를 배워야 한다. 진리는 세상 어디에서도 그 증거를 확인할 수가 있다. 있는 일이 바로 진리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항상 남을 말한다. 스스로 깨우쳐서 자기에게 의지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부처나 예수나 신에게 의지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부처의 원력이나 예수의 원력에 의해서 모든 것들을 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세상의 만물이 가진 뜻을 일으켜서 그 자체를 존재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기도를 한다고 해도 기도를 통해서는 원하는 것이 얻어지지 않는다. 지극 정성으로 신에게 기도를 함으로써 그 신이 한번쯤 술(術)을 보여줄 수는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신기(神奇)한 현상을 일어나게 했다 해서 사람의 삶에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을 경계하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에서는 이 일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종교가 죽은 사람에게 의지하라고 가르치는 대로 신에 속아서 자기 몸을 신에게 빌려주고, 신이 자기 몸을 끌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삶을 사는 동안 자기를 위해서는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결국 신의 삶을 대신 살아준 것밖에 없으니 남의 삶을 살아준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앞날을 내다 버린 결과가 된 것이다.

자기를 버리는 일. 이것은 정말 옳지 않은 일이다.

사람이 생명 활동을 통해서 인간의 세계에 났다는 것은 자기를 축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큰 영광인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의 인간 세계는 귀신 천국이 되어 있다. 귀신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세계에서 인간들에 의해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들의 조종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교의 가르침이라는 한문책을 보면 철저히 옳은 말들이 적혀 있다.

삼강오륜(三綱五倫).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참 좋은 가르침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보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가르침이다.

임금을 섬기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를 다하라.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거기에는 좋은 말들을 나열하고 좋은 결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르침이 없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우면 스스로 임금도 잘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 완성을 위한 가르침은 아무 것도 없이 좋은 결과만 요구하고 있으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길이 없다면 인간에게 세상의 일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게 할 것이며, 있는 일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결국 눈을 뜨고 있어도 장님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를 두고 부처는 눈 뜬 장님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삼강오륜과 같은 좋은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을 더욱 눈뜬 장님으로 만들어 놓았다.

오늘날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이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자아의 상실을 가져오게 하고 있으며, 종교가 있는 일을 밝히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더 어리석고 무지해지고 있다.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이 시대 최고의 메시지는 '거짓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있는 일을 알아보게 되면 사람들은 사리가 분명하고 야무진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세상은 밝고 풍요로움이 넘치게 된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런 사회를 만들지 못했던 것은 올바른 가르침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사람의 가슴속에는 의식이라는 기운이 존재하고 이 기운은 의식활동을 통해서 자기의 의식체-영체를 만들게 된다.

영체는 자신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을 그 속에 입력하고 보존하게 된다. 그래서 영체 속에 있는 수 억만 가지의 일들이 활동을 하면서 사람을 움직이게 되고 이 일은 또다시 영체에 입력되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만들어진 영체에 의하여 열반이나 영생 또는 지옥과 같은 참혹한 세계도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가서 극진한 기도를 많이 해서 구원을 받거나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며, 절에 가서 시주공양을 많이 하고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해서 극락왕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일을 알아보고 자기가 노력하면 누구든지 열반하고 영생할 수 있으며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자기 속에 있던 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자기와 연결되었던 일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에게 깨달음이 필요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해 깨닫게 되면 그 일을 그릇되지 않게 잘 하게 된다. 그래서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자기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이 지어놓은 운명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잘못된 운명을 버리지도 않고 자기가 좋은 운명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행동이 변하지 않으면 의식도 변하지 않는다.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행동도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법칙이며 누구든지 볼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인간들이 이런 일들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자신의 삶이 자신을 위해서 소중한 일을 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부정하거나 있는 일에 대해서 눈을 뜨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포기하는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자기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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