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통곡(痛哭)
記者室
우리들이 자연의 가르침을 발행하기로 뜻을 모으고, 그 소중한 뜻을 현실화하기 위한 일을 시작한지 어언 1년이 지났습니다.
국가 사회를 위하여, 인간의 세계를 위하여 진실을 밝히고자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기자실 앞에 부닥치는 현실의 벽은 높고 또 높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진실을 알릴까? 책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도 해보았지만 유행에 민감하지 못한 책이라 누가 보겠느냐는 냉담한 반응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최신의·최고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자연의 가르침 속에 있다고 당당하게 말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씁쓸한 미소뿐이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두드려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현실이라는 벽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살면서도 현실을 잊고 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현실을 외면해야만 하는가?
記者室은 현실을 외면한 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현장에 함께 하면서 月刊자연의 가르침의 발행 목적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뛸 것입니다.
1999년 7월 21일 오전 9시,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청 건축과에서 일어난 일이다.
구청의 하루 업무가 막 시작되는 시간에 60세 가량의 한 남자(이하 시민(市民))가 건축과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출입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책상으로 가서 자리에 앉아있는 공무원에게 물었다.
"저는 전포동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근에 짓는 빌라 신축공사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어서 좀 알아보러 왔는데 담당자를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담당공무원이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서 시민을 앉게 했다.
시민은 담당공무원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어 신분을 밝히고 통성명을 하고 나서 공무원에게 몇 가지 사항을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1.전포2동 177-1번지 인근에 6층 아파트 5동, 60가구 분의 건물 신축공사가 시작되고 있다. 공사 현장은 좁은 막다른 골목 위에 있는 경사지를 깎아서 건물 5동을 신축하는 일인데, 공사를 하게 되면 공사현장 주변에서 자연히 발생하게 되는 제반 문제점들에 대한 대비책은 마련되어 있나?
2.대형 공사차량의 통행과 작업진동으로 인한 기존 가옥들에 대한 균열, 붕괴 및 도로의 파손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3.신축건물과 인접한 가옥들의 일조권(日照權)확보에는 문제가 없나?
4.공사현장 출입도로가 사도(私道)로써 최대 폭이 3m 60cm 인데 대형 차량의 출입과 완공 후 60세대와 기존 세대들의 승용차 출입에는 문제가 없나? 그리고 막다른 골목 좁은 도로 안에서 대형 건축공사가 가능한가?
5.이러한 중요한 사안들을 인근 주민들과 협조(協調)한 사실이 있나?
민원인으로서 소재지 관할 구청의 담당 부서를 찾아온 시민은 주거지 인근의 대형 공사로 인해 야기되는 자신의 걱정과 주민들의 불편 사항을 호소하고 대책이 필요함을 전달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공무원은 시민에게 건축관련 법률서류와 공문들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공무원 :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기 때문에 허가가 난 사항이다.
시민 : 좁은 도로 안의 경사지에 대형 다가구 주택이 들어서는데 입지조건 또는 분쟁의 사전예방을 위해서 공사현장을 확인해 본 적이 있나?
공무원 : 공무원이 직접 공사현장을 확인하라는 법이 없다. 신청서류만으로 허가가 가능하다.
시민 : 주민들이 공사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면 어디서 보상을 해주나?
공무원 : 그런 걸 왜 여기에 와서 묻나?
시민 : 대형 공사로 인해서 주민이 생활에 불편과 위험을 느끼게 되었으니 주민을 위해서 존립하는 행정관청에 찾아와서 호소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냐?
공무원 : 우리는 법대로 허가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민 :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답이다. 만일 주민이 피해를 입게 되면 어디에 가서 호소해야 하나?
공무원 : 피해가 나면 피해를 유발한 당사자가 보상을 할 것이다. 사고가 나게 되면 피해에 따라 사고를 낸 당사자가 보상해 줄 것이다.
시민 : 아니 사고가 나서 피해가 생기고 나면 피해발생 원인을 찾아서 보상해 준다는 말이냐?
공무원 : 사고가 난다면 그렇다.
시민 : 돈 몇 푼 벌려고 공사를 뗀 업자나 공사차량 운전기사가 보상을 한다는 말이냐? 아니면 시공자나 구청이 보상한다는 말이냐?
공무원 : 공사를 하는데 왜 사고가 생기도록 하겠느냐? 당연히 사고가 나지 않도록 공사를 할 것이다. 사고가 난다고만 가정해서 자꾸 질문하지 마라.
시민 : 기막힌 말이다. 그런 말은 최근에 있었던 씨랜드 사건의 전말(顚末)을 다시 듣는 것 같은 대답이다.
공무원 : 씨랜드 사건을 왜 여기서 들먹이느냐?
시민 : 공무원들은 법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문제가 되었던 많은 공사들은 잘못하려고 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냐?
공사차량이 겨우 몇 대 지나간 지금 벌써 골목의 지반이 내려앉았고 곧 주민들이 각종 피해로 시달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사고에 대비한 대책을 주민 당사자들이 직접 세우란 말이냐?
공무원 : 공사와 직접 관련된 일은 시공자가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시민 : 말문이 막힌다. 현장진입로가 폭 3m 60cm의 좁은 막다른 골목뿐인데 완공이후에는 차들이 어디로 다니나?(막힌 도로는 폭이 6m이상 되어야 됨)
공무원 :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시민 : 문제가 안 된다니 도대체 현장을 알고 하는 말이냐?
공무원 : 진입도로 좌우측의 건물들이 오래되었으니 곧 언젠가 허물고 새로 짓게 될 것 아니냐? 그때 도로에서 안으로 2m씩 떨어져서 집을 짓도록 허가하게 될 것이니 그러면 자연히 해결된다.
시민 : 아니 20-30년전에 지금의 집들을 지을 때 각각 경계선에서 1.5m씩 떨어져서 집을 짓고 사도를 내어서 사용하고 있는데 다시 또 2m를 떨어져서 지으라고 한다면 도대체 개인의 재산권을 제멋대로 박탈하고 엉뚱한 사람에게 이익을 보게 하는 그런 법은 무슨 법이냐?
공무원 : 내가 6년 동안 이 자리에 근무했는데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나를 신문하는 거냐? 당신이 수사관이냐?
시민 : 주민에게 당장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니 제대로 확인하는 것 아니냐?
구청이 무엇 때문에 존립하나? 우리 주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공직사회이고, 주민들간의 분쟁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 공무원 아니냐?
공무원 : 우린들 어떻게 할 수 없다. 법대로 처리된 것이다.
시민 : 주민들의 민원을 담당부서에서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법률상 하자가 없는 공사라고 시공자만 두둔하고, 실제로 주민의 피해가 예상되는 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결국 주민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냐?
공무원 : 당신이 그렇게 똑똑하면 국회에 가서 법을 바꾸어 오라. 공무원은 법대로만 처리한다. 법을 고쳐오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해 주겠다.
시민 : 네 이놈! 너희들을 이 자리에 앉혀 놓은 것은 이런 일들을 원만히 해결하고 주민생활에 도움이 되라고 해서 시민들이 월급을 주고 고용한 것이다. 민원인을 앞에 두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공무원이 제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주민더러 하라니 이게 무슨 소리냐?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건축허가가 난 것은 뇌물 먹고 내준 것이냐? 왜 시공자는 두둔하고 민원인에게 이게 무슨 대접이냐?
이 때 책상에 앉아있던 공무원들이 여기 저기서 쑥덕거리더니 어디선가 "저 자식 미친 놈 아냐?"하는 말이 들렸다.
시민 : 당신이 누군데 나보고 미친놈이라는 거야?
계장 : 저런 자식에게는 본때를 보여주어야 돼.
"네가 깡패냐?"
"어디에 와서 저 따위 버릇이냐?"
"저 새끼 미치광이지?"
계장공무원의 말 한마디에 몇 명의 공무원이 또 다른 폭언을 퍼부었다.
아침 일찍 주거지 구청으로 찾아가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던 한 나이 많은 시민에게 일시에 5-6명의 공무원들이 합세하여 공격한 것이다.
여러 명의 젊은 공무원들이 집단 행동을 하며 자신을 위협하자 나이가 많은 시민은 쩔쩔매며 겁을 먹었다.
공무원들은 더욱 기세를 올려서 시민에게 삿대질을 하고 윽박지르는데, 한 젊은 공무원이 시민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박을 듯이 하며 더욱 거칠게 위협했다.
순식간에 건축과 사무실은 난장판이 되었고, 시민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공무원을 본능적인 방어동작으로 두 손으로 밀쳐냈다.
이 과정에서 그 공무원의 목 부위에 극히 경미한 찰과상(피부가 손가락에 문질러져 생긴 약간의 자국-당일 오후에 없어짐)이 생겼다.
그러자 계장공무원은 "너 이 자식 이제 죽었다." 하며 즉시 부하 직원에게 병원의 진단서를 첨부하여 관할 부산진경찰서에 고소하도록 조치하였다.
그 공무원은 당일 업무시간 내내 어떤 공무도 보지 않은 채 자리를 비웠고, 어디선가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진단서를 발급 받아와서 경찰서에 시민을 고소함으로써 민원을 보러 갔던 시민은 졸지에 공무원을 상해한 피고소인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 시민은 공무원들과 밀고 밀리면서 받은 정신적 육체적 충격으로 10여일 동안 심장질환으로 통원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왜 고소한 것입니까?
법률의 대변자로써 현실을 외면하고 대책도 없이 행정의 정당성만을 되풀이하는 공무원. 시민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아무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시민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나이 든 시민 한 사람에게 젊은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온갖 모욕과 위협을 가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상해가해자(傷害加害者)로 고소하고 경찰서에서 진술조서를 받게 했습니다.
시민은 그가 믿고 찾아간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하고, '시민을 위한 행정'을 한다는 공무원들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공무원을 상해한 피고소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민은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막막한 사회를 보면서 비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성(百姓)이 관가(官家)를 찾아가면 문지기에서부터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하고 하명(下命)만 받들어 모시던 유교(儒敎)의 폐습(弊習)들이 새 천년을 바라본다는 구호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오늘날의 공직사회에서 거리낌 없이 당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주민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대변해 주지 않으면서 주민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한없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공직사회를 보면서 記者室은 손으로 자신들의 입을 막아야 했습니다. 손을 떼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마구 고함을 지르고 싶었습니다.
記者室은 정의를 찾아서 순리(順理)가 통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정의란 인간 사회를 비쳐주는 빛입니다.
정의가 법률 위에 존재한다면 빛이 있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만일 정의가 법률의 아래에 존재하게 된다면 그 사회는 암흑천지와 다를 바 없는 사회가 됩니다.
정의에 앞서는 법률을 두고 악법이라고 말합니다.
정의가 없는 사회에 법률과 제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의가 법률보다 아래에 있는 사회에서는 법률과 제도에 의해서 오히려 불신과 부정과 갈등만이 더욱 존재하게 됩니다. 억울한 자가 있어도 호소할 곳이 없고, 진실을 밝히는 일은 더욱 외롭고 힘들게 됩니다.
예로부터 인간사회에는 '순리가 역행하면 그 사회는 멸망할 것이다.'라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사회.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사회. 정의가 말살된 사회는 스스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인간 사회의 순리-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이 일은 이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사회에 정의가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배우려는 사람도 없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양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정의는 사회를 지키는 빛이며, 양심은 자신을 지키는 빛입니다.
정의를 잃어버린 사회는 거짓이 진실을 앞서게 됩니다.
양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잘못을 보고도 모른 체 하게 됩니다.
정의를 찾기가 어렵고, 양심을 보기가 어려운 사회에서 높고 높은 장벽 같은 현실을 두드리면서 記者室 모두는 기필코 사명을 다하자고 다짐합니다.
우리들의 잃어버린 양심을 보며, 사라진 사회의 정의를 겪으며 記者室은 통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