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여행
인도에서 만난 사람
윤 소 연
1989년 9월, 나는 스승과 인도에서 만난 바바 고빈다라는 요가 수행자와 함께 인도사람들이 성자라고 부르는 사이바바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풋다푸티로 가기로 했다.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12시 30분에 출발한다는 버스가 오후 2시 30분이 되어서야 나타나더니 오후 3시가 넘어서 겨우 출발하였다.
그나마도 풋다푸티까지 바로 가는 차편이 없어서 뱅가로드라는 곳에 가서 풋다푸티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버스는 뱅가로드까지 11시간이 걸린다고 했으나 밤을 새워서 달린 버스는 아침 9시가 되어서야 뱅가로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18시간이 걸린 것이다.
뱅가로드에서 갈아탄 풋다푸티행 버스는 폐차를 하고도 남을 만한 고물차였다.
인도의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쿠션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딱딱한 의자에 세 사람이 몸을 밀착해서 앉아야 했다.
버스는 곳곳마다 정차를 했고 그때마다 거지들이 버스에 올라왔다. 버스에 오르지 못한 거지들은 밖에서 버스의 유리창을 두드렸다.
거지들 중에는 손이 뭉개진 나환자들이 많았다. 거지들은 손을 자신의 이마에 대었다가 우리 일행 앞에 내밀면서 동정을 구했다.
오후 4시가 넘어서 버스는 풋다푸티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소에서 사이바바가 있는 수도원까지 멀지 않다고 해서 우리 일행은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긴 여행으로 피로한 탓에 수도원까지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수도원에 도착해보니 거대한 성(城)처럼 웅장했다. 수도원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 인도인들이 아닌 외국인들이었다.
나는 바바 고빈다와 함께 수도원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사무실 벽에는 인상이 매우 좋지 않은 인물사진이 든 액자가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액자를 가리키면서 바바 고빈다에게 말했다.
"저 사람이 사이바바? 인도 최고의 성자라는 자가 저런 모습이라니."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이미 그곳에 갔기 때문에 만나 보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숙박료를 물었더니 1인당 10루피라고 했다. 무척 싼 가격이었지만 우리를 대하는 사무실 직원들이 너무 오만불손해서 일반 여관에서 자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수도원 밖으로 나와서 여관에 가서 알아보니 동물우리나 다를 바 없는 방 1개에 100루피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내키지 않았지만 다시 수도원으로 되돌아가서 여권을 맡기고 숙박료를 지불하고 또 몇 가지 수속을 더 하고 나서 겨우 방을 얻었다.
그러나 막상 지정된 방을 찾아가서 문을 열어보니 기가 막혔다. 수십 명도 더 누울 수 있는 넓은 방이었지만 아무런 시설도 없이 그냥 시멘트 바닥만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사무실에 물어보자 필요한 베개와 매트리스ㆍ방석 등은 돈을 내고 빌리거나 사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매트리스 한 장을 빌리는데 120루피라고 했다.
스승은 "이런 나쁜 곳에 머물 수 없다."고 하면서 숙박료는 포기해도 좋으니 여권을 찾아서 당장 나가자고 했다.
나는 사무실에 가서 먼저 여권을 찾은 다음 숙박료를 돌려 달라고 했다.
그러자 직원들은 "여기는 수도원이지 호텔이 아니다."면서 숙박료를 환불할 수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래 좋다. 호텔보다 돈을 더 벌려고 하는 곳이 수도원이냐?"하고 대들었다. 옥신각신 끝에 숙박료 40루피를 환불받고 그 곳을 나왔다.
한참동안 숙소를 찾아 헤맨 끝에 작은 여관에 짐을 내렸다.
방에는 나무침대가 두 개 놓였을 뿐 창고나 다름없었다. 침대에 깔린 매트리스는 솜이 뜯겨 나오고 울퉁불퉁 해서 매트리스를 걷어내고 나무판자 위에 자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다.
스승은 당장 사이바바에게 보낼 메시지를 썼다.
나는 스승의 메시지를 들고 숨돌릴 틈도 없이 다시 수도원으로 갔다.
거리에는 벌써 어스름이 깔렸다.
수도원에 들어가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이바바가 있는 곳을 물었더니 중앙에 위치한 한 건물을 가리켰다.
나는 한달음에 건물의 출입문으로 보이는 곳까지 갔는데 문지기가 황급히 달려오면서 나에게 되돌아가라고 야단이었다.
내가 사이바바를 만나러 간다고 말하자 문지기는 내 발에 손가락질을 하면서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 장소에는 40미터 앞에서부터 신발을 벗어 놓고 맨발로 걷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여자는 정문 출입마저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할 수없이 그 자리에서 신발을 벗어 들고 흰 양말만 신은 발로 되돌아서 나와야 했다.
왼쪽 편으로 다른 출입구가 있기에 들어가려고 하자 지키고 있던 두 명의 여자가 나를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며 뒤쪽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건물을 돌아서자 넓은 광장이 나왔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서 2층을 향해 경배하고 있었다.
사이바바는 건물의 2층에 거주하고 있었고 그 아래층은 신전이었다.
나는 2층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사이바바를 직접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신전의 출입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나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 뒤에 섰다.
신전에 들어서자 중앙에는 죽은 사이바바가 안치되어 온통 꽃으로 덮여 있었고, 현재 살아있는 사이바바의 대형초상화가 신전 벽면에 여러 개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경건한 자세로 초상화를 우러러보면서 이마를 땅에 대고 경배했다. 나는 금방 밖으로 나왔다.
사이바바를 만날 수 있는 묘안을 궁리하다가 지나가는 한 남자에게 물어 보았다.
그 남자는 나에게 광장에서 다르샨이라는 의식을 하는데 그때 사이바바가 직접 사람들을 만난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사이바바의 아침 다르샨은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있다고 했다.
나는 저녁 늦게 여관으로 돌아왔다. 몸은 몹시 피곤했지만 모기들의 극성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인도의 모기는 크고 검고 무서웠다.
새벽 4시 30분에 방문을 두드리는 스승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풋다푸티의 새벽은 활기에 넘쳤다. 꽃ㆍ과일ㆍ우유 등을 파는 사람들로 북적대었다. 모든 것이 싱싱했다.
방금 짜온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나서 우유 파는 아낙에게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주위에 있던 꽃 파는 아낙과 과일 파는 남자도 합세해서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광장에는 신전을 향해 경배하는 사람들의 수가 무척 많았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나는 몇몇 사람들에게 어디서 왔느냐? 무엇을 원해서 여기에 왔느냐? 하고 물어 보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르샨에 참석한 사람들은 광장 바닥에 질서 정연하게 줄을 지어 빽빽하게 앉았다. 천 여명이 넘는 군중이었다.
어디선가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묘한 음악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사이바바를 기다렸다.
조금 후 사이바바가 2층으로부터 내려오더니 광장에 모인 군중들 사이로 순회를 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는 스승의 메시지를 사이바바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을 상기했지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돌아설 수 없었다. 군중들을 비집고 신전의 입구를 향해 걸었다. 나는 안으로 무조건 들어가려고 했지만 여러 사람들이 막아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여관으로 돌아오니 스승과 바바 고빈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승이 말했다.
"결과가 어찌 되었건 우리는 사이바바를 만나러 왕복 2,500킬로미터의 이곳까지 왔었고 그 대가는 충분히 얻었다. 신의 이름을 따르고 신을 만나려고 하는 자들은 반드시 악마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도 무서운 일을 보았다."
우리 일행은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인도인 남자가 가까이 와서 바바 고빈다에게 경의를 표했다.
나는 그 인도인에게 스승을 소개했다. 그러자 그는 매우 기뻐하며 스승에게도 경의를 표했다.
스승은 인도인에게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질문하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스승에게 "저는 독실한 힌두교인 입니다. 그래서 저는 채식만 하며 술도 담배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나이가 56세인데도 불구하고 이십대 청년과 다름없이 정력이 넘칩니다. 그래서 아내 외에도 다른 여인들을 보면 언제나 욕망이 솟구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의식을 느낍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스승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자신이 세상의 있는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알게 되면 욕망은 차츰 사라지게 된다."
그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스승의 말뜻을 누구나 금방 알아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인도인이 스승에게 말했다. "당신의 눈을 잠깐만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스승이 허락하자 인도인은 2-3분 동안 스승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인도인이 "당신의 머리 주위가 온통 빛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라고 하며 경탄했다.
스승은 인도인이 하는 말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 말했다.
"여러분은 진리를 통하여 최고의 자신을 얻으려고 해야 한다. 있는 일을 통해서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들이 신의 이름을 통해서 자신을 이루려고 한다면 그들은 곧 악마를 만나게 될 것이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일은 자기 스스로가 해야 한다. 신이 직접 인간의 일을 대신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도인은 스승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면서 다시 만날 것을 굳게 약속하고 떠났다.
풋다푸티에서 뱅가로드로 가는 버스는 오후 2시에 있었다.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다시 한번 수도원에 가보기로 했다.
수도원의 사무실에 들어가서 직원에게 정식으로 요청했다.
"우리는 세상의 훌륭한 구루(guru)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다. 인도에 와서 사이바바의 명성을 들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사이바바와 만날 수 있게 해달라."
그러자 직원은 거칠게 대꾸했다.
"사이바바를 다른 구루들과 비교하지 말라. 그는 다른 구루들과 다르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사이바바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냐?"
직원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는 신이다."
다시 내가 물었다. "사이바바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주는가?"
직원은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그는 사람들의 더러운 마음을 성스럽게 해주며, 헌금으로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 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며 세상을 위해 좋은 일들을 많이 한다."
나는 냉소를 지었다. "무엇으로 사이바바가 신이라고 말하는가?"
직원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볼 수 있다."
거만하고 퉁명스러운 직원은 자신이 세상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완강한 어리석음과 무지 앞에 항복을 하고 수도원을 나왔다. 그들은 정녕 사람이 되는 길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는 말과 행동을 거침없이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