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결정
몇 시간만 지나면 고민은 풀릴 수가 있다. 변명조차 할 건덕지가 없어서 시간은 더욱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의 행동을 지켜보며 동정만 살피던 주위의 사람들이 충동질을 했다. 그때 사무장인 김 동지가 나의 이런 행동에 눈치를 챈 것인지 시간을 넘길 것이냐고 다그친다.
나는 죽을 지경이 되어서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들한테 어쩔 수 없는 답변을 했다. 운명은 기어이 나를 어려운 일에서 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등록 마감시간을 마지막 두 시간을 남겨 놓고 사무장 앞에다 도장을 내어 주고 집에다가 전화를 하여서 500만원짜리 보증수표를 끊어오게 하였다. 주위에서 지겹게 나의 동정만 살펴보던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가 솟기 시작한다.
사무장이 준비하였던 서류를 챙겼다. 몇 사람이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조금 후에 사무실로 돌아온 사람들은 후보등록 접수증을 내 책상 위에 내어 놓았다. 사정이야 어떻든 당장 마음이 바빠진다. 억지로 힘을 내었다.
그런 나의 앞에는 다음에 닥칠 일들이 두렵고 괴롭게 떠올라왔다. 어떻든 이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현실을 아는 나로서는 나의 행위가 자신의 가치를 조국에 바칠 수 있는 행동 중에서 가장 큰 수단이라고 여겼다.
양심과 용기만으로 현시점에서 권력의 배후 인물과 대결하는 자체가 얼마나 나를 멍청한 놈이라고 느꼈는지 모른다. 그런 마음 속에서도 나는 다음 세대의 용기를 위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시작했다.
나는 나의 눈앞에 떠오르는 자식과 아내 그리고 나를 아껴주신 사람들의 환상을 더듬으며 괴로운 마음을 억지로 쫓아 버렸다.
선거가 끝난 후 찾아오게 될 보복이나 후유증을 생각하면서도 나는 당장 국회의원 후보로서의 나의 소신을 꿋꿋이 지킬 결심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하나하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옆에 있던 사람들을 독촉하면서 서둘렀다.
현수막을 주문하였고 직접 내 손으로 선거 공보의 원고를 작성하였다.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가 달라져 버린다. 시간은 말도 못하게 빨리 달아난다. 나의 머리 속은 온통 내가 찾아 내어야 할 여러 가지의 일들로 계속 차 있었다.
당장 선거운동원을 동리마다 구해야 하였고 합동정견 발표장에 들고 나갈 연설문 문안도 구상해야 했다. 이런 나한테는 언제나 잠이 부족했다. 당장 자금 사정이 또 걱정이었다. 무소속이란 핸디캡은 계속 발표되는 당국의 엄포 속에서 기가 죽어 갔다.
눈만 뜨면 골이 쑤시고 머리가 무거웠다. 속수무책이란 말이 이런 것을 두고 생긴 말 같기만 했다. 생각하면 기대어볼 데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이런 지독한 현장에서 단 하나 가질 수 있는 생각은 합동연설회에다 막연하게 기대를 두는 것뿐이었다.
1978년 11월 28일은 겨울철인데도 하늘에서는 비가 뿌리고 있었다. 바로 그 날이 합동연설회가 실시되는 첫날이었다. 그러나 오후가 되니 비가 그치면서 날씨가 개인다. 그때부터 기온이 갑자기 내려갔다.
시간이 되어 청학국민학교 운동장인 연설장에 나가니 지금까지 느끼지 못하던 당황감이 자꾸만 생기는가 하면 또 머리가 괴상한 생각들로 산란했다. 걱정과 피로가 쌓여 왔다. 몸마저 추위를 느끼는지 유난스럽게 떨린다.
그때 운동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연설 순위의 추첨을 하겠으니 빨리 나오지 않는 후보자는 기권으로 알고 추첨을 하겠다고 처음부터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수월하게 말을 했다.
나의 일행 중에서 사무장이 나의 도장을 가지고 마이크가 설치된 자리 쪽으로 나갔다. 얼마 후 추첨을 하고 돌아온 그 사람이 좀 민망스런 얼굴을 하며 10번이라고 일러준다.
날씨와 시간을 생각할 때 걱정이 되었다. 혹시 또 빈 운동장을 보며 연설을 하게 되는 것이나 아닌지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런 나에게 겨울해가 서쪽 산에 걸릴 때쯤 차례가 돌아왔다. 선거관리 위원측의 마이크에서 나의 이름을 호명했다. 나는 자신 만만했던 생각과는 달리 두려워진 마음으로 연단 위로 올라갔다.
기온 때문에 더 추위가 느껴진다. 정해진 시간을 기억하면서 넓은 운동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10대 총선에서 10번의 기호를 타고 10번 째 연설을 하겠다고 이곳에 나온 이삼한입니다.」
하면서 허리를 구부렸다. 사람들은 나의 인사말에 대접을 해주는 것인지 박수를 쳤다. 나는 다음 말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번 지역선거에서 한 사람에게 십자가를 세 번씩이나 지워준 것은 나의 요술이 아니고 신의 뜻일 것입니다. 추운 날씨에 기다려 준 여러분에게 보답하기 위하여 제가 왜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되었는가 하는 말씀부터 해보겠습니다.
저의 가슴 속에는 답답한 것이 많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있는데 정치가 우리 주변에 없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들으면 애국자는 많은데 실제는 나라 꼴이 말이 아닙니다. 국민들은 정말 믿을 데가 별로 없습니다.
사기당하고 억울하다고 가슴 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많이 사는 곳이 우리가 사는 땅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런 세상이 가면 갈수록 고쳐지지 않고 더해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우리가 뽑아 보낸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나가서 도대체 어떤 일을 했기에 이렇게도 억울한 사람 슬픈 사람이 생기는가 알아봐야 하겠고, 또 방치할 수 없는 우리들 주변의 사정을 반영해 보고자 꽤 까다로운 선거에 출마하고자 여러분 앞에 나섰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돈이 많아서 명성을 얻으려 나온 사람도 아니요. 관록이 좋아서 자랑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요. 학벌이 좋아 누굴 가르치겠다고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세상 꼴과 걱정스러운 나라의 장래를 두고 참고 견딜 수가 없어서 나같은 사람이 나와서는 요런 세상에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젊은 양심은 조국을 그냥 외면할 수가 없어서 나라를 구해 보겠다고, 죽어가는 정치를 구해 보겠다고 아까운 목돈을 구해서 공탁금까지 실제 두고 보면 알 일이지만 저 같은 것은 기부금이 될 것이지만 500만원이나 내어 놓고 나왔습니다.
이번 선거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라나 우리 개인이나 중요한 선거이기 때문에 저 또한 결심이 다른 사람 같지 않고 특별히 대단하였던 것입니다.
이 중요한 선거에서 이 땅의 주권자인 여러분들께서는 안면이나 물질의 유혹이나 협박과 회유에 속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입후보 등록은 안 했더라도 한 사람의 후보자로서 임해줄 것을 부탁드리는 바이며 또 주위에다가 이번 선거야 말로 중요한 선거이니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 용기가 있는 사람, 양심이 있는 사람, 정의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선거 풍토를 조성함으로 해서 정말 나라의 장래를 구하는 일에 같이 힘써 주실 것을 한 사람 국민된 양심으로서 여러분에게 부탁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서 날씨가 쌀쌀한데도 마지막 사람까지 연설을 들어 보겠다고 남아 주신 유권자 여러분,
여러분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나는 여러분의 심중을 헤아릴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 또한 지금 심정은 앞에 나와 이곳에서 연설은 하고 있어도 실제 제 심정은 여러분의 심정 바로 그것과 같습니다.
나는 법률과 양심을 보호하지 않는 모순된 오늘날의 정치와 싸울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나는 정의를 외면한 무능하고 용기없는 사이비 정치인과 싸우겠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오늘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여러분 그놈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박수 좀 치십시요. 오늘 날씨가 추워 그런지 저의 마음이 차갑습니다.」
하고 말을 끝내니 사람들 속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다음 말을 끄집어 내었다.
「요즈음 세상을 보니 보는 것마다 기막히고 답답한 일 뿐입니다. 긴급조치다 뭐다 해서 남의 양심에다 수갑까지 채우는가 하면 가진 것을 일구어서 저축은 고사하고 외부에서 빚내어다가 흥청거리는 것 보고 정치 잘 한다고 줏대없는 소리나 씨부리는 자들을 지도자 만든다고 떠드는 것을 볼 때 눈물까지 나옵니다.
인재가 그 사회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 이런 일은 역사책에도 없습니다. 양심을 버린 사람들을 보고 순진한 사람이 걱정을 한다고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장사 한 번 안 하고도 수백 억원을 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깨비 부자인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방망이의 요술이냐 그렇지 않으면 협잡이란 요술이냐 궁금합니다.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생활을 부러워 하게 됩니다. 또 그런 나머지 세상에는 별의 별일이 많습니다.
억울한 자가 많이 생길 것은 엄연한 이치이지만 이 억울한 사람들이 호소할 곳이 없어 가슴을 치는 것을 볼 때 양심을 가진 자의 힘없는 가슴에 그 고통이 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슬픈 사연들의 종식을 위해 우리 동포의 모두는 비겁한 자신과 투쟁해야 한다는 원칙을 보이기 위해 나는 출마를 했습니다.
이곳에 나오신 분 중 저보다 여건이 못한 분은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조국을 위해 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 우리의 앞날은 어둠 속에 묻히게 될 것은 구태여 예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책임을 질 수가 없다고 발뺌을 한다 해도 가까운 앞날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일어나기에 힘이 들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일을 방관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나서 누구보다도 충분히 고생을 경험했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미래에 대한 행복으로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지금 그 미래가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을 구할 수 있는 자는 여러분과 나입니다. 여러분이 하겠습니까. 제가 할까요, 누가하든 각오는 단단히 하고 대들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후보 상대자들은 내가 무슨 이야길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을 위해서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특히 정계로 관계로 두루 돌아 다녀보신 분들은 자기들 의견을 그 동안 많이 반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 꼴이 요즈음 보니까 요모양 요꼴입니다. 조금치라도 그런 사람들은 아직 양심이 있다면 오늘의 사회에 대해 변명같은 것 구태여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새로운 시대를 위해 스스로 용단을 내려 줄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께는 이 자리가 웅변 대회장 같이 변하는 자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또한 제 주장입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인재의 앞길을 막는 행위가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자랑이 되는 그러한 시대가 지금은 아님을 경고하겠습니다. 현재의 어려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지 못하겠다 싶은 분들은 미안하지만은 오늘 이 자리에서 사퇴해 달라고 제의하겠습니다.
나라가 중요하고 희망이 중요하고 사실이 중요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아야 할 현실인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일을 하겠다고 후보자와 유권자 여러분 앞에 자신있게 공약하는 바입니다.
나는 평소 우리 나라 정치인 김두한 선생과 서민호 선생의 의회 활동을 존경해온 사람으로서 그분들과 같은 길을 걸어 갈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때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마지막 당부의 말을 이었다.
「여러분 오늘 동리로 돌아 가시거든 저의 말씀 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고장의 명예를 빛낼 것은 물론 나라의 장래를 빛나게 할 것을 약속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연설은 끝을 내었다. 다른 후보의 박수부대까지 손뼉을 쳤다. 해가 넘어간 연단 위로 마지막 연설 순위자가 올라갔다.
땅거미가 지는 운동장 연단 위에서는 마지막 사람의 연설회가 시간을 맞추어 끝을 냈다.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과 마음을 지닌 채 힘든 행군을 시작하였다.
고민과 아쉬운 문제들은 점점 많이 불어났다. 무소속이란 입장 때문에 나의 행동은 집과 선거 사무실로 왔다 갔다 했다. 까다로운 선거법을 지키려 하다 보면 아는 사람도 찾아갈 수가 없었다.
새장 속의 새가 오직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한테 표정으로 동정을 구하는 길밖에 없었다.
선거 사무실에는 별의 별 사람이 다 찾아왔다. 대부분 끝에 가서는 솔직하게 표와 돈을 바꾸자고 요구했다. 절박한 현장에서 내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선거방법은 관제선거같은 기분이 들었고 유권자는 내일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차 이 나라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가 생각하면서 99%의 불가능 보다 1%의 희망을 위해 나 자신을 버티었다.
사법부와 행정부에서는 걸핏하면 선거사범을 엄벌에 처하겠다고 경고문을 실은 종이를 자주 길거리에 붙였다.
세상에서 제일 까다로운 선거법 속에서 믿는 데도 없이 선거에 참여해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나의 꼴이 우습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후보들은 잘못된 정부의 P·R만 하고 유권자들한테는 박수만 받는다.
나는 이런 게 선거냐고 자신에게 항의를 했지만 대답이 나올 리 없다. 이런 답답한 마음 속에서 두 번째의 합동정견 발표회가 영주동의 봉래국민학교에서 실시되었다.
날씨는 청명했고 기후는 풀려 따뜻했다. 청중은 작은 학교의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나의 연설 순위는 다섯 번째였다. 4사람의 연설을 듣고 나니 나의 차례가 왔다. 나는 연단으로 올라갔다.
그 동안 신경을 너무 많이 쓰고 말을 많이 한 탓인지 목이 꽉 잠겨 있어서 안타까움은 절정을 이루었다.
청중들은 박수를 치며 나의 연설을 재촉한다. 나는 천천히 힘을 들여 목을 틔우며 입을 열었다.
「그저께 청학국민학교에서 있었던 연설회에서 열 번째 연설을 하였습니다. 내 차례까지 기다리다 보니 아홉 사람의 연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두 한결같이 국민학교 학생 때 하던 웅변대회에서 연사들인양 유신 정부의 대변인처럼 대안도 없이 참으라고 하는 식의 소위 오늘날 권력 쥔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것같은 말만 하고,
목마른 사람들 보고 언제 비가 올 것이라는 말은 빠뜨리고 문자 타령만 하는가 하면 저희가 일당 주고 끌고 온 사람들 보고 박수 치기나 시키는 것을 보고 그 사람들의 웅변이 하도 딱해서 제 마음 속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때 내 차례가 되어서 죄없는 마이크에다 대놓고 고함을 좀 질렀더니 이렇게 목이 꽉 잠겨서 제 말을 듣기가 여러분들께서는 거북하실 줄 믿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사회와 조국의 장래를 생각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올라왔으니 주어진 시간 동안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나의 주장은 언제나 핑계 잘 대는 사람만 속아서 뽑아 더러운 꼴만 당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하고 있는 괴롭고 어려운 일을 하나하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지지하며 뽑아주어야 한다는 주장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자식대대로 유신이나 할 것이며 부족한 희망 속에서 한국적인 민주주의나 이해하며 속아주고 또 속아주고 억울해도 입 닫고 참고 또 참고 하는 지루한 일만 되풀이하지 않고 좀 똑똑하고 용기있는 사람을 뽑아서 세계적인 민주주의를 하도록 해 보고 일등 국가를 한 번 만들어 보자 하는 것이 나의 소신입니다.
말 잘 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 살지 말고, 안 되는 일의 원인을 하나하나 확인하여 바로 잡도록 하고, 답답한 사람들 답답하지 않게 하는 사회 풍토를 개선해 보자는 것이 제 정치적인 주장입니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란 일꾼을 뽑는 것이 선거인데 여러분께서는 상전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을 뽑게 되는 그런 곤란한 일을 저지르지 말자는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선거에 나온 사람 중에서 현재의 선거법 덕분에 1등 2등만 하면 된다는 기대에서 나온 사람 중에는 1등 2등 할만한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악법도 법이라는 이유 때문에 법을 내세우는 현장에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가슴에 새기면서 저의 생활에서는 대단히 큰 돈인 500만원을 공탁금으로 내놓고 조국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출마는 했습니다마는 여러분에게 제 자신을 알리기에는 너무나 답답한 일들뿐입니다.
공개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보장된 방법이란 것은 고작 4번의 합동연설 기회뿐인데 그것도 짧은 20분 동안이니 4번 다 합쳐보아야 80분입니다.
장소도 제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지정해 주는 곳에서 그것도 제비 뽑기로 운수를 잡아야 하는 순위 결정에는 난감할 뿐입니다.
잘못 뽑았다가는 사람 다 나가 버린 운동장만 보고 가슴 속에 울부짖는 애국심을 호소해야 하는가 하면 잘 잡았다 해도 돈 많은 사람 권력주변에서 노는 사람들이 데리고 오는 박수부대 앞에서 제 신세 생각하고 울어야 하니 도대체 이 딱한 남자의 사정을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돈을 쓰면 안 되는 선거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돈을 막 뿌립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7사람 달리기를 하는데 완전 자유로운 사람과 손이 묶인 사람, 발이 묶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 같은 사람은 지금 손발 전부 묶인 채로 모든 규칙 다 지켜야 하는 형편입니다.
이게 무슨 장애물 경기입니까? 여러분께서는 공평한 심사를 할 수만 있다면 확인해 보십시오. 제가 1등입니다.
그런데 이게 장애물 경기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사람욕심에 다른 사람들이 위반을 하는 것 아닙니까.
이유는 알 수 없고 이유를 몰라 심판한테 물어보면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들 말이 더 근사합니다. 웃기는 경기 같지요. 이번에는 꼭 공명선거를 하겠다고 신문에서 떠듭니다마는 그래 이런 방법이 공명선거입니까?
제가 지금 국회의원이 못될 것 같아서 이렇게 떠드는 것이 아닙니다. 조국을 생각하고 동포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역사를 생각할 때 안타까워서 외치는 것입니다.」
금방 잠겨 버릴 것 같은 목청을 억지로 유지하며 얼굴에 경련까지 일어나는 힘든 장면을 확인하면서도 주위에다가 마음 속에 쌓인 사실들을 고백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사실의 현장으로 돌리려고 힘을 더할 때마다 군중 속에서는 계속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내가 연설을 마치고 밖으로 나올 때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나의 발길 앞으로 에워 쌌다. 나는 현실을 똑바로 분별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내 자신의 고통과 희생을 위해 안간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사람들 속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금전이 난무하는가 하면 공포 분위기마저 조성되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 나 자신은 기댈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느낄 뿐이다. 그런데도 동지들은 자금을 풀어야 한다고 선거운동원들의 투정을 부추기기만 했다. 나는 고민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도 또 어려운 일들은 여기 저기에서 생기기만 한다.
선거 조직원인 한 여자가 저녁에 내 집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딱한 사정을 호소했다. 남편의 직장에서 남편더러 마누라 단속을 잘 하던지 직장을 떠나던지 양자 택일을 선언했단다.
성난 남편의 행동을 말하면서 자기는 어떻게 되느냐고 울었다. 나는 그 여인을 위로했다.
나의 출마는 양심과 정의의 구현은 힘들었고 양심과 정의를 가진 자를 학대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대중당 시절에 만났던 5명의 동지들이 나를 돕겠다고 부산까지 왔다. 또 생면부지의 양심인들이 서울에서, 대구에서, 대전에서 찾아왔다.
나에 대한 여론과 인기가 좋다고 모두 한결같은 과장을 해대었지만 나의 마음은 우울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두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파산이냐 순진한 사람들을 실망시키더라도 장차의 조국에 봉사하기 위한 자기 방어냐 하는 양 갈래의 기로에서 결심을 위한 결단을 내리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다 보니 최종 선거일은 3일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 3일이 나에게는 죽음보다도 더 큰 고통이었다. 나의 마음에는 어느 정도의 냉정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조직세포로 열심히 뛰어준 핵심 멤버들을 두고 나는 어떻게 하더라도 반발만은 무마하여야 했다. 그래서 나는 같은 시간에 모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나의 현재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나는 여러분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후보와 나와는 입장이 좀 틀립니다.
다른 후보들은 대부분 저쪽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지금 그 반대입니다.
내 자신의 파산은 각오한 일이지만 이런 일이 남기게 될 분명한 사실만은 나한테 앞으로 어떤 변명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나의 진정한 마음은 여러분이 기대하는 곳에 서 있고 싶습니다. 선거 운동하는데 별 경험도 없는 여러분이 짧은 기간 동안 나를 생각하며 만들어 놓은 조직의 맥과 줄기는 상당하다는 것을 압니다.
당선은 못되더라도 세상의 이목이 나를 따른다는 사실도 압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막바지에 접어들어 선택하여야 할 행동에 대한 어떤 문제가 뒤따라 올 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후회없이 짊어지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결정이 안 된 상태입니다.」
한 곳에 모인 핵심 멤버들은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다. 서로의 얼굴에는 침묵이 흘렀다.
다른 사람들도 선거법을 알았고 본인들이 일하고 있는 후보자가 당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한 양심인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나의 뜻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여러분을 어떤 경우에서도 이해하고 싶습니다.
이 순간 이후 다른 후보자와 손을 잡더라도 결코 원망하지 않을 결심입니다.」
나는 나의 참다운 마음을 밝힌 것이다.
어떤 기대감을 가진 채 모였던 사람들은 실망한 얼굴로 힘없이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고통을 안고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천천히 흐르기 시작한다.
들어오는 소식마다 하부 조직의 이탈이었다. 우리 일행에게 이제 최선이라는 말은 남지 않았다.
나는 투표가 시작되던 날, 나의 일을 사무실에 남게 될 사무장한테 일임을 하고 서울에서 내려와 마지막 날까지 나의 옆에 있어 주었던 이동열 동지와 부산을 떠나는 시외버스 정류장 쪽으로 나갔다. 나의 마음은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방향조차도 생각해 보지 않고 금방 떠나는 버스에 오르고 나서 차의 행선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시내를 벗어난 버스가 양산 쪽으로 뻗은 자갈길을 달렸다. 두 시간쯤 지난 후에야 양산 통도사 근방에서 내렸다.
맑은 물이 흐르는 통도사 입구에서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도 자꾸만 텅 빈 마음 속에서 서글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의 지난 행동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았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이 필요했다. 이 동지와 나의 앞에는 빈 소주병이 하나 둘 늘어갔다. 우리가 술집을 나올 때는 몸을 가누기에 힘이 들었다. 지나가는 택시가 우리를 인근의 통도사 호텔까지 실어다 주었다.
두 사람이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술 취한 다음날의 아침이었다. 방 안에 있었던 텔레비젼의 화면에서는 아직도 전국적인 개표 현황이 중계되고 있었다. 다행한 일은 내가 나왔던 부산의 중구 영도구의 개표는 종료되어 있었다.
나의 무겁던 마음이 개운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성을 되찾으면서도 다음 행동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호텔을 빠져 나온 두 사람은 시골의 장터 근방에서 국밥을 시켜서 아침 겸 점심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무슨 일이든지 저질러 버릴 것같은 마음을 두고 몇 군데나 술집을 전전하며 알콜로 비애가 쌓인 감정을 씻어야 했다.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걱정을 하고 있던 아내가 나를 보자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북적거리던 집안은 조용했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아내는 정성을 다하는 듯 했지만 방안에 들어가자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아내는 나의 몸 위에 담요를 덮어 주었다.
다음날 나는 몸을 단정하게 가꾸고 선거 후의 마지막 마무리를 하기 위해 사무실로 나갔다.
정오가 되자 그 동안 핵심동지였던 여러 사람들이 나왔다. 그 사람들은 나를 보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위로의 말을 찾아야 했다.
술을 몇 병 사오게 하여 그 동안 맺혔던 마음을 깨끗하게 잊으려 했다. 얼마큼 준비해 나간 돈이든 봉투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 주었다.
「이제 선거는 끝났습니다. 이 봉투는 나의 성의입니다. 작은 봉투지만 여러분들에게 양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좌중에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화기애애한 빛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앞에 놓인 술잔 앞에 술을 따르며 비로소 나의 속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 땅에는 아직도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세상을 바로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친척도 아닌 사람들이 돈 봉투나 어떤 물질에 대한 기대나 대가없이 표를 던져 준 순수한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나는 나의 행동에 대해 보람을 느낀다고 말을 이었다.
세상의 이목을 얻기 위해 돈을 쓰고 표를 샀다면 나는 상당한 표를 비용만큼이나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나 그 결과는 내 자신의 양심 속에서 영원히 나를 고문하는 결과로 남았을 것이라는 마음을 전한 것이다.
나에게 남아 있던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내가 찾아야 할 조국에 대한 나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정말 나는 힘겨웠던 모든 일을 신속하게 마무리했다.
술이 취하는지 한 사람씩 사무실을 나간다. 나중에는 텅 비어 버린 사무실에 혼자만 남게 되었다. 선거가 끝나고 3일이 못되어서 나는 선거 기간 동안에 생긴 일들을 말끔히 잊었다.
나는 새로운 나의 일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간간히 나와 함께 선거일을 했던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정말 어려운 뒷마무리를 깨끗이 했다고 칭찬들을 했다.
12월 한 달이 무척이나 허전했고 쓸쓸했다. 순간과 순간 속에 권태와 잡념이 밀려왔다.
나는 나의 감정 속에 사치와 허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생명이 남아 있는 순간까지 보람있는 행동을 조국에 바치기 위해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새롭게 나의 가슴 속에는 한없는 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지루해서 참을 수 없었던 긴 겨울 밤을 덧없는 망상 속에 시달렸고 아침이 될 때에는 언제나 잠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1980년의 봄이 되면서 나는 새로운 출발을 했다.
지난해까지 하던 장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사업자등록증도 새로이 교부받았다.
다시 시작한 장사집에는 전에 거래하였던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일을 통해 나의 지난 행동에서 생긴 모든 일을 잊고 일 년전의 상인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주위의 사람들 중에는 나의 결단과 성실성에 칭찬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의 행동을 자기 일인양 마냥 대견해하며 용기를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시 개업한 장사가 한 달을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