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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경험 속에서

주위에서 불안한 일들이 눈에 띠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건들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나의 운명에는 편안함이란 잠시도 머물 수 없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이지고 있었다.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세상에서 고립된 것같은 외로움을 느끼곤 하였다. 하루하루 마음 속으로 파고드는 어두운 그림자로 하여 질식할 것 같기도 하였다.

나의 점포에서 일을 보는 여자아이가 속이 상해서 엉엉 우는 날이 많아졌다. 세무서의 직원들이 이틀 걸러 한번쯤 나의 장사집을 다녀간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반복되니까 어떤 의심이 생긴다. 설마 하면서도 모르던 일은 구멍가게처럼 조그마한 점포에 4명씩이나 떼를 지어 찾아왔을 때는 마음에 집히는 것이 있었다.

장사 시작한지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집에 찾아와 약점을 찍어내려는 사람들이 더욱 딱했다. 온통 책상 안을 다 뒤져 놓는가 하면 자물쇠가 채워진 서랍은 아예 부수어 놓았다.

그리고서는 가게에 진을 치고 위압감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한 번은 대들며 한바탕 말씨름을 벌였다.

「세상에 이런 불공평한 사례가 어디 있단 말이요. 외형도 얼마 되지 않는 집에 이틀에 한 번씩 문안을 오니 대접이요, 위협이요.

소문을 들으니 큰 장사집에도 1년에 한 번도 안 들리는 집이 있다는데 도대체 나를 무얼로 생각하기에 이렇게 대한단 말이요.

차라리 이 지경이라면 당신 네들 사정 보아서 내가 장사 그만 두겠소. 솔직히 말합시다. 행정지도 나오신 거요. 약점 캐러 온 것이요.」

내가 하도 떠드니까 나이든 선임자는 겸연쩍은 얼굴을 했다. 언제 또 나왔더냐고 묻는다. 그저께 나온 사람은 누구며 그전에 온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관내 세무서에서 나오고 국세청에서 나오고 요즈음 무척 신경 쓰인다고 말을 하니 듣는 사람들도 입을 다문다.

하늘에는 노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점심나절에 찾아왔던 국세청 직원이라는 사람들이 자리를 털며 일어나면서 겸연쩍은 얼굴이 되어 말을 내어 놓는다. 통보가 오거든 국세청으로 좀 들어 오란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참지 못하고 떠들었다. 내가 대한민국 어디엔들 못갈 곳이 있을 상 싶소. 안심하고 돌아가라며 열을 올려 말대꾸를 했다.

웬일인지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세무공무원은 장사집에 잘 나타나지 아니했다. 무엇인가 꺼림직한 자신을 두고 걱정이 풀리지가 않는다. 그런 어느 날이다. 또 눈에 거슬리는 일들이 눈 앞에서 벌이지기 시작하였다.

도로가를 지나다 보면 교통 순경들이 법규위반 차량을 단속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그러나 이런 현상은 처음 보는 일이다.

교통지도 백차인 코티나 승용차에 교통 순경이 6명이나 타고 나와서 장사집 길목 좌우에서 흩어져서 아예 한나절을 채우며 단속을 실시한다.

처음에는 당연한 일로 보아 넘겼으나 시일이 지나면서 이틀에 한 번씩 반복되는 정기적인 행사에는 납득하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어떤 일이 생기나 보려고 그때마다 재미있는 현장을 쳐다보며 장사집 길가에 의자를 내어놓고 아예 관람자가 되었다.

이상한 것은 이런 일이 있으니까 더욱 장사가 잘 되었다. 얼마가 지나자 백차와 교통순경들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 속에 이상한 동요가 생긴다. 웬일일까 나의 예감에 더 무서운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런 다음 날이었다. 측량기사 한 사람이 나와서 열심히 땅의 측량을 했다.

나의 장사하는 곳 출입구의 대문 쪽 땅에다가 말뚝을 박았다. 하도 이상한 것을 많이 본 우리집 일꾼들이 걱정을 하였다.

나는 당장 측량기사더러 당신 지금 무얼 하느냐고 따졌다. 측량기사는 간단하게 누구를 찾아가 물어보란다. 나는 이틀간이나 알만한 사람들을 통해 수소문을 하여서 측량기사를 내어 보낸 사람을 만날 수가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은 납득이 안가는 소리만을 골라 편리한대로 말을 하였다. 나는 꼭 내가 놀림을 당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콘테이너 명함을 내민 이××이라는 사람은 용도도 분명치 않는 이유로 항만청에서 그냥 임대를 받았단다. 6개월에 50만원을 내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했다는 서류를 내어 보였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딱한 사람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남의 집 담장 안에 들어있는 출입구를 임대받겠다는 사람이나 임대해준 사람들의 심리보다도 우리 나라의 법 규정에 위배된 도시계획에 들어있는 땅은 불하나 임대가 불가능했는데도 임대해 주었고 임대 받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 마디로 심보 나쁜 사람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악인과 싸울 준비는 되어 있다고.

나는 이××씨의 사무실을 뛰쳐나와 항만청으로 찾아갔다. 아무리 죽을 운수라지만 이럴 수가 있을까 생각하며 당하는 일보다 나를 겨냥한 괴상한 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부산지방 항만청장을 찾아가서 나의 사정을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몇 번이나 벼른 끝에 항만청장을 만나 경위를 이야기하니 자기는 빠지면서 항무국장을 만나보라고 또 아랫사람한테다 떠 넘겨 버린다.

그 날 따라 항무국장은 어디에 출장 나간 것인지 자리에 없었다. 나는 미친 사람 꼴이 되어서 기다린 끝에 저녁나절에야 항무국장과 억지로 만날 수가 있었다.

나는 국장이란 사람을 보고 내가 찾아온 용건을 끄집어 내니 그 사람은 당장 얼굴에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관계된 부하직원을 부르더니 하는 말이 걸작이다.

처음에 무엇이라고 말했느냐는 것이다.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냐고 말 안했느냐 면서 나를 데리고 나가서 처리하란다.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이 일 때문에 드나든 기억이 있는 사무실로 끌려갔다.

계원은 불쾌한 표정으로 나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윽박질렀다. 국가기관에서 하는 일에 불평을 한다고 불순분자 취급까지 한다.

나는 세상에 대해 무서운 고독감을 느꼈다.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분노가 터지기 시작하였다. 입 속에서는 고함 소리가 올라왔다.

「야, 이 강도들아, 피도 눈물도 없는 자들아. 세상에 이런 꼴이 어느 시대에 있었느냐, 멀쩡한 놈 병신 취급하는 것이 네 놈들 취미냐?」

나는 책상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 사람 살리라고 목청껏 고함을 질렀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먼 곳에 있던 사람들이 나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바쁘게 자기 소개를 하면서 사람들은 나의 손을 잡고 항만청 밖으로 끄집어 낸다.

세상이 점점 살기가 어려워 진다는 사실을 느꼈다. 나의 앞날에 대해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하였다.

겁나는 세상에서 양심이 맥을 출 수가 없구나. 정의가 없는 세상에서 억울하다고 누굴 찾아가서 호소할 것인가 하는 생각만이 나를 울렸다.

뒷날 항만청에서 어제 만났던 직원이란 자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들어왔다 가란다. 그곳 사람들은 개구쟁이처럼 단순히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을 대해야 할 것인지 머리에는 엄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쉽게 사정도 해보고 종용도 했다. 그들은 나의 약점을 집요하게 찾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찾을 수 있는 약점이 없었다.

항만청의 관계직원들은 이제는 콘테이너 사장이라는 이××씨에게 다 떠넘겼다.

이××씨는 정말 웃기는 사람이었다. 비굴하게 변명을 해대었다. 마음 같아서는 어떤 행동이라도 저지르고 싶었지만 과격한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사용허가증에 명시된 돈을 낸 영수증을 보자고 다그치니까 외상으로 계약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또 한 번 놀랐다. 대한민국 정부의 봉급을 받는 사람들의 상식이 우스웠다. 꼭 이××씨와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면 나는 내 이름으로 임대 절차를 마치려고 하였다.

내가 언젠가 본 책 속에는 도시계획에 들어있는 국유지는 불하나 임대가 금지된 걸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새삼 임대를 해가라고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 조건도 먼저 번 서류와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420만원을 미리 불입을 하라는 것이었다. 너무 심하지 않느냐 니까 그렇지가 않다는 대답이었다.

당시의 그 금액은 사유지의 임대료보다 5배 가량 비싼 가격이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통로를 막는다는 바람에 돈을 준비하였다. 전화는 하루에도 두 세 번씩 걸려왔다.

나의 억울한 사정은 그들에게 통하지가 않았다. 내가 물건을 적재하는 것도 아니요 단순히 차량의 출입에만 사용되니 주위의 민간인 토지사용료와 같게만 조정해 달라고 애원을 해도 통하지가 않았다.

생업터전을 버리지 않으려고 계약을 하겠다고 구비서류를 작성하니 이번에는 딴말이 나오는 것이다.

주위에 있는 지주들의 동의서를 받아 오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사용했던 길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사용해도 좋겠느냐는 승낙을 받아오라는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처럼 이런 엄청난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노리개 감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몇 년간에 걸쳐 힘들여 이룩해 놓은 사업장은 당장 위기에 처해졌다. 항만청 관계자는 통로의 입구 쪽에 있는 지주들을 불러서 자기들 쪽은 자기들이 쓰라고 종용을 해댔다.

그런 어느날 옆집에서는 장사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자기 앞을 자기가 사용하라더라 며 항만청 관계자의 말을 끄집어 내었다.

나의 마음은 분노와 슬픔에 휩싸여 있었지만 고함이나 눈물은 사라졌다.

세상에 없는 일들을 스스로 보고 느끼는 것이 나의 운명일까?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항만청 관계자의 시달림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하소연을 해 보아도 이 땅에 이미 불행한 자의 친구는 없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서 지쳐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남의 불행에 대해서는 참관하여 않는 것인지....

이상한 것은 나 말고도 땅(국유지)을 점유하고 있었던 집이 여러 집 있었는데 그 집들 보고는 돈을 내어 놓든지 그렇지 않으면 땅을 비우라는 소릴 안하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출입구가 계획되었던 음모인 것처럼 점점 봉쇄되어 갔다. 이제는 장사를 정리하는 길만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더 버틴다면 어떤 화가 또 떨어질 것인지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나의 마음은 무겁고 침울해져 갔다. 나는 내 자신의 힘으로 이젠 더 버틸 방법이 없었다. 배 선주들은 또 나한테는 물건을 팔 수 없다고 없는 이유를 만들어 대었다.

나는 비통해진 마음으로 다음에 닥칠 내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며 간구하기 시작했다. <신이여 저를 도와주소서!>

맑게 개인 하늘과 푸르고 잔잔한 바다의 물결이 나의 이야길 듣는 것만 같았다.

통로가 막히고 물건을 살 수 없어 바닥이 드러난 점포의 현장을 쳐다보는 마음은 더욱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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