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빛을 찾아서(1)
정 회 심
내가 스승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 분이 나의 아픈 몸을 치료해주었을 때였다. 내가 보답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당신에게 직접 하지 말고 세상에 보답을 하라고 하셨다.
"세상에 보답을 해? 어떻게?"
그것은 스승이 하는 세상 일을 도우라는 말씀이었다.
세상에는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는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스승은 자신은 진실한 자이고, 세상에 있는 일을 보고 양심과 용기를 가르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좋은 일이 어떤 일인지 궁금하였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되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결국, 스승의 여행에 참여하게 되었고, 스승으로부터 사람을 축복해줄 수 있는 큰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
첫 여행지는 태국의 방콕이었다. 본래 방콕에서 대중 강연회를 열 계획이었다. 그런데 태국의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영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했다. 짧은 시간에 통역을 구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인도행을 택했다. 늦은 오후에 캘커타에 도착했다. 몇 호텔을 방문하였지만, 적당한 호텔을 찾을 수 없었다. 밤 기차로 부다가야에 가기로 했다. 여행사에서 기차표를 샀다. 사람들이 벌 떼처럼 모여 있는 캘커타역을 비집고 들어갔다. 한참을 헤맨 후에서야 겨우 가야 행 밤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는 침대칸이었으나, 치안이 불안해서 한 조에 2명씩 교대로 불침번를 섰다. 이른 새벽에 가야 역에 도착했다. 날이 샐 때까지 기차역에서 머물렀다. 지저분함과 성가신 모기들이 여행의 피로를 악화시켰다.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느새 날이 밝았다. 부다가야로 가기 위해 다시 배낭을 메고 역을 나왔다. 릭샤(삼륜 오토바이)에 짐을 가득 싣고, 그 짐 위에 간신히 올라탔다. 도중에 타이어가 펑크 나서 시간을 지체했지만, 새벽의 신선함을 즐기며 부다가야에 도착했다.
또 다시 낯선 곳에서 숙소를 찾아 헤맸다.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낯선 이들과 무작정 부딪쳤다. 부다가야는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은 곳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흥미로운 점은 주절(Main Temple)을 제외하고 모든 절이 외지인들에 의하여 세워졌다는 사실이었다. 웅장하게 지은 중국 절, 큰 부처상이 있는 일본 절, 태국 절, 부탄 절. 작지만 한국 절도 있었다. 그 많은 절 들이 근방의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지 걱정되었다.
부다가야는 스승이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를 걷고 있으니 스승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지에서 고용한 티팡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얼떨결에 스승의 일에 통역으로 참여는 했지만, 내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가 무척 부담스러웠다. 마치 영어가 바닥이라도 난 듯,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았다. 한국 말도 알아듣고 영어도 알아들었는데, 순간 순간 버벅거리자, 스승은 벼락같이 호통을 치셨다.
"이거 이거 일을 다 망치고 있어!."
스승의 성난 음성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티팡카와 저녁 식사 후에도, 통역 때문에 또 혼이 났다. 통역하는 과정에서 티팡카를 위한 스승의 두 가지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인도 사람에게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 통역하는 이 사람도 2,000 달러를 내고 이 법을 배우려고 여기에 왔다."
이 말에 감동을 받았지만, 식당에서 호텔까지 가는 내내 나의 심정은 주위의 어둠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결국 한참을 울었다. 내일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으로 잠을 청했다.
부다가야의 주절(Main Temple)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기념하는 곳이다. 절이 크지는 않았지만 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돗자리까지 깔아 놓고 불공(佛供)을 들인다고 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렇게 무리를 하다가 디스크가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호텔에서 부탄에서 온 승려를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는 부탄 수도원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 날 오후 부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들의 일행 중 한 고승(高僧)이 자신은 시간이 있으니 다음날 오전에 만나자고 했다. 다음날 부탄 절에서 그를 만났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한 인도인이 통역을 했다. 스승은 그에게 물었다.
"너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가? 너희는 무엇을 배우고, 중생에게 무엇을 주로 가르치느냐?"
"명상을 배웠고, 명상을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지금까지 명상을 통해서는 한 사람도 깨달은 자가 없다. 부처가 보리수 밑에서 명상을 하다가 깨달았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너희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그 당시 부처가 명상을 해야 했던 것은 명상을 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통해서는 절대적으로 깨달을 수가 없다. 자연에서 흐르는 물은 항상 청정함을 유지하지만, 고여 있는 물은 썩는다."
그는 그 말을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스승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너는 명상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너의 자신을 무지하게 만들었고, 병 하나를 얻었다."
그는 자기가 무슨 병을 얻었느냐고 물었다.
"척추 속에 있는 물렁뼈에서 열이 발생하고 있다. 그 열로 인하여 명상을 하는 과정에서 압력을 받은 물렁뼈가 짓눌리고 있다. 결국, 그것으로 인해 통증을 느끼고, 다리의 신경에도 문제가 있어 다리가 저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네가 만약에 진정 깨달음을 원한다면 난 즉시 그 통증 뿐만 아니라 병도 사라지게 하겠다."
그는 자신의 병을 명상을 통해 자신이 고치겠다고 했다.
"그럼 왜 아직도 못 고치고 있느냐? 나는 네가 아직 명상을 통해서 못 고치고 있는 너의 질병을 지금 당장 고치겠다."
그때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는 바쁘다고 하면서 몇 시간 후에 다시 만나기를 청했다. 다른 곳에서의 용무를 마치고 다시 그 고승을 찾아갔을 때, 그는 승려들을 모아 놓고 이상한 행동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상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있는 일을 모르니 저 사람은 계속해서 문제를 만들고 있다. 내가 저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스승을 따라 그 자리를 떠났다. 주절(Main Temple)에서 열심히 절하는 사람들과 부처님을 경배한다고 의식을 행하고 있는 승려들의 모습이 내 시선을 한참이나 멈추게 했다. 자연에서 볼 수 있듯이, 고여있는 물은 오래되면 변질되어 독성이 생기는 법인데, 아무리 좋은 진리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질되고 독으로 변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스승은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깨닫겠다고 오랜 동안 앉아 있는 것은 아무 움직임이 없는 고여있는 물과 같은 상태이다. 아무리 사람들을 도우려 해도 그들이 그 가르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 말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다음 행선지인 바라나시로 향했다.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7시간이나 걸렸다. 도중에 장비를 바꾼다며 30분 이상 멈춰 있기도 했다. 한 칸에 의자가 위 아래로 있는 기차 안은 닭장과 다르지 않았다. 그 좁은 통로를 사람들과 상인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녔다. 기차 안은 완전히 시장 바닥이다.
오후에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바라나시는 특히 속임수와 실크로 유명하다. 또 하나 유명한 바라나시 대학에서 철학과 교수들과 학생들과 토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철학 과에 한국 학생이 몇 명 있다고 했지만, 그 날 모임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세계의 많은 대학에는 많은 한국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모르겠다. 학장 실에 모인 철학과 교수들과 학생들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스승은 말씀하셨다.
"오늘 여러분들이 나를 이렇게 환대하고 나의 말에 관심을 보여주니 나도 그 보답으로 여러분에게 좋은 선물을 하나 주고 싶다."
그들은 매우 좋아했다.
"나의 선물은 지혜이다. 이 지혜를 너희가 얻기 위해서는 너희가 가지고 있는 지혜와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를 비교해 보아야 한다.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철학과 교수와 학생들이다. 여러분들이 가르치고 있는 철학의 정의를 내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 달라. 내가 듣고 난 후 여러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겠다."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교수 한 사람이 학 과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대답은 학 과장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학 과장의 말은 장황했다. 나의 영어도 서툴렀지만, 도저히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통역한다고 애를 먹었다. 스승은 싱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길게 하는가? 나는 간단하게 여러분에게 내가 알고 있는 철학의 정의를 알려주겠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라. '철학은 있는 일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있는 일을 바로 알기 위해서 끝없는 탐구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옳은 말이다."
참석해 있던 모든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들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철학 분야에서 앞서 있다는 인도의 유명 대학의 철학과 교수들이 철학의 정의조차 알고 있지 못하다니!
바라나시에는 빨간 벽돌로 웅장하게 지어진 천주교 교회가 있다. 스승은 그 교회의 신부에게 사랑에 관해 배움을 청하러 갔다. 신부는 우리 일행이 외국인이어서인지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를 그의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스승은 이렇게 물었다.
"너희의 가르침에도 사랑이 있느냐? 있다면 어떻게 사랑을 배우고 있느냐?"
그는 사랑은 성경 속에 있다고 했다.
"성경에서는 무엇을 사랑이라고 하느냐?"
그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이든 물질이든 주면서 보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스승은 한 예를 들면서 말했다.
"최근에 한 여인의 주검 앞에 150만 명이라는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과거의 어떤 한 사람의 주검 앞에는 단 두 명의 여인만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와 한 창녀였다. 그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테레사 수녀요, 다른 한 사람은 예수이다. 예수는 살아 있는 동안에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데려다 먹여 살리지 않았다. 예수는 사람들을 가르쳤다. 테레사 수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내게 해서 그 돈을 가지고 몇 명의 장애인들이나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가르쳤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세상에 큰 좋은 일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좀더 상세히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두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지극한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자인가?"
신부는 대답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당신이 대답할 수 있는, 어떤 사물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하여 질문할 것이니 괜찮겠느냐?"
"2 더하기 2는 무엇인가?"
그는 5 라고 대답했다. 스승은 웃으면서 말했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종교가 학교보다 못하구나. 학교에서는 분명히 4 라고 가르친다."
"어려서 영국에서 자랐습니다. 불쌍하다고 생각한 한 친구를 도우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옷도 주고 약간의 돈도 주며 도우려 했었는데, 그 친구는 낭비가 심해서 항상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그 친구가 50 파운드를 주고 파마를 하고는 파마한 머리가 마음에 안들어 30 파운드를 주고 다시 파마를 풀었습니다. 결국 80 파운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 친구를 보고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화를 내며 내 일에 간섭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럼 내가 한 일이 잘한 것입니까? 잘못 한 것입니까?"
"우리가 좋은 일을 미리 결정해서는 안된다. 돈이 없고 가난하다면 먼저 확인해야 한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저 사람이 가난하니까 도와야 한다고. 왜 그가 가난한 지를 알아야 한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을 했는데도 가난한가, 아니면 일은 안하고 소비만 했기 때문에 가난한가? 일은 아니하고 소비만 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아닌 깨달음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부자를 데려다 놓고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라고 하면 그 부자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런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세상에서 모든 가난을 해결하는 것은 좋은 가르침과 일이다. 사람들에게 일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사람들을 잘살게 만들어 주는 것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