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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바다

추석이 지난 후의 바다 물은 차가워 있었다.

막상 자리를 정해 두고 작업을 시작하려고 하니 푸른 물이 마음 속에 두려움 같은 걸 가지고 왔다. 그러나 나는 입고 있던 옷을 하나 둘 벗었다.

금방 온몸이 알몸으로 드러났다. 서늘한 기운이 몸을 떨리게 한다. 밀가루 푸대를 줄에 묶고 그 줄을 배에다 동여 매었다.

나는 물이 얕은 곳으로 뛰어들며 몸을 허우적거렸다. 몸 전체가 물 속에 잠긴다. 손발을 놀리며 헤엄질 쳤다. 수경을 얼굴에 맞게 고쳐 쓰고 머리를 물 속에다 들이 밀었다.

얕은 바다 밑이 보였다. 금방 몸이 지칠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해녀들처럼 바다 깊은 곳에서는 작업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겨우 힘을 다해 물가에서 20여미터쯤 떨어져 파도에 잠길 것 같은 물 가운데 보이는 바위까지 헤엄을 쳤다.

금방 숨이 차왔다. 손이 바위의 한 모서리를 잡았다. 그때 밀려온 파도가 나의 몸을 바위에서 떼어 놓으려고 했다. 나는 힘을 다해 허우적거리며 다음 파도가 올 때까지 안정을 취했다. 숨을 조절한 다음 고개를 물 속에 묻고 바다 밑을 보았다.

수심 2미터 내지 3미터에서는 내가 찾던 물건들이 보였다. 돌미역도 있었고 곰피같은 해초도 보였다. 다시 얼굴을 물 위에 내어 놓고 숨을 조절했다. 그리고는 물 속을 향해 고개를 처넣고 곤두박질을 쳤다.

작은 손에 한 움큼의 해초를 뜯으면 물 위로 올라 왔다. 바다밑 돌에는 소라도 붙어 있었고 담치도 바위에 붙어 있어서 딸 수가 있었다. 나는 약간의 물건을 만들어 물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소라와 담치를 불에 구워서 생미역과 함께 시장기를 메우고는 작업을 계속하였더니 몇 시간이 못되어 집에서 준비해 나간 밀가루 푸대가 가득 찼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물기 젖은 몸을 닦고 옷을 입는데 온 몸엔 한기가 생기고 이빨이 부딪혔다.

불을 피운 나무에서는 불꽃보다 연기가 더 많이 났다. 눈물을 흘리며 입김으로 불꽃을 내게 하고 그 불꽃에 의지해서 몸을 녹이며 모든 시름을 잊었다.

제법 무게를 내는 물기가 흐르는 밀가루 푸대를 어깨에 걸어 멘 채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해 온 물건들을 보며 형수는 놀란 눈으로 신기해 했다. 형수는 그것을 우리가 먹을 만큼 남기고 이웃집에다 파는 모양이었다.

우리 가족도 담치를 충분히 넣은 시원한 국물로 오래간만에 배를 채울 수가 있었다.

나는 다음날도 바다에 나가서 일을 했다. 내가 해온 물건을 형수가 시장에 내어가서 돈과 바꾸어 보리쌀도 사고 강냉이가루도 사왔다.

나는 고달픔보다 형수 앞에서 사람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대견하게 생각이 되었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어떤 날은 나를 따라 동리의 다른 애들도 바닷가에 나오는 날이 있었다. 나는 외진 곳에서 물질을 할 때 옆에 친구가 있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가를 느꼈다. 그런 날은 더욱 경쟁이나 하듯 열심히 일을 했다.

11월이 되면서 바닷물의 온도는 물 속의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차가워졌다. 해녀들의 작업하는 모습도 눈에 잘 뜨이지 않았다.

나의 용기와 인내에도 한계를 느꼈다.

동리의 애들도 나를 따라 바다에 나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다른 일거리를 구해야 했고 온종일 거리를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

생활은 내가 보기에도 더욱 쪼들리는 눈치다. 형은 가족에 대한 부양에는 책임이 없는 사람처럼 우리에게 강냉이 죽 먹이는 것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형을 원망해 본다거나 나무라는 마음을 가져보기에는 아직도 어린 나이였다. 한 번도 형의 행동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을 가져보지 못했다. 형편이 이러했으니 노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부담이 되었다.

나는 다음날도 어슬렁 어슬렁 길을 헤매며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거리의 이 곳 저 곳을 돌아 다녔다. 어서 무슨 일거리든지 찾아야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다. 그 날 따라 시장기가 더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시청 옆 청과시장 근처를 서성댔다.

그때 마침 나의 눈앞에는 김장배추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덥수룩하게 생긴 50대의 나이든 사람이 끌면서 쩔쩔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어떤 여인이 옆에서 낭패한 얼굴로 바쁘게 무슨 말인지 해댄다. 나는 그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제가 밀어 드릴까요? 하는 소리에 끙끙 용을 쓰고 있던 짐꾼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았다.

허수룩한 차림보다도 허약해 보이는 체구가 더 마음에 안 드는지 그 짐꾼은 아예 대꾸조차 않고 다시 리어카를 끌려고 힘을 써댔다. 그런데도 리어카의 바퀴는 꿈쩍도 않는다.

나는 짐꾼의 승낙도 얻지 않고 리어카 뒤를 힘껏 밀어주었다. 리어카는 그제야 꿈적거리다 바퀴가 돌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나의 일 인양 계속 리어카를 밀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리어카는 골목을 몇 번이나 돌아 비탈진 곳을 올라갔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는데 온몸에 땀이 흘렀다. 리어카 짐꾼은 리어카를 세운 채 배추단을 묶은 줄을 풀기 시작하였다.

그제서야 배추 주인인 듯한 여자가 신기한지 내 얼굴을 주시한다. 나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 채 배추포기를 한아름씩 안고 집 안에다 쌓기 시작했다.

일이 다 끝나자 여자는 리어카 짐꾼한테 500원을 준다. 돈을 받아 쥔 짐꾼은 돈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한참 생각하는 눈치였다. 100원짜리 한 장을 뽑아 쥐고는 너 무엇 사 먹어라 하는 말을 하면서 나의 손에 쥐어준다.

나는 몇 번이나 사양하며 거절하다가 그 돈을 받았다. 돈을 손에 쥐고 보니 힘들었던 조금 전의 일들이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중년이 넘어선 리어카 짐꾼한테 말했다.

「내가 끌고 갈께요.」

짐꾼은 말없이 미소를 짓고 나는 신나게 리어카를 끌며 앞서 갔다. 짐꾼은 급히 내 뒤를 따라오며 조심하라고 일렀다.

두 사람은 바쁘게 청과시장을 향해 뛰었다. 리어카 주인인 짐꾼은 무엇을 생각하는 것 같더니 또 말을 걸었다.

「야, 너 점심 먹었니.」

나는 무어라고 대답할까 망설이지도 않고

「저는 점심을 안 먹어요.」

짐꾼은 왜 점심을 안 먹느냐고 묻고 부모님이 계시냐고 물었다.

「형님하고 살아요.」

무엇인가 느낀 표정으로 먼 공간을 향해 한숨을 쉰다.

그러던 리어카의 주인은 나의 손을 끌고 가더니 억지로 30원짜리 우동을 한 그릇 사주며 먹게 했다. 나는 짐꾼한테서 오래간만에 따스한 정을 느꼈다.

13살짜리 소년이었던 나는 짐꾼과 청과시장을 돌아다니며 김장배추를 사러 온 사람들한테 접근하여 리어카 가져올까요? 하고 물으며 다녔다.

이렇게 하여 정말 나는 짐꾼의 조수가 된 것이다. 짐은 자주 내가 맡아 왔다. 힘은 들어도 돈이 생긴다는 마음에 더욱 용기를 내어 리어카를 밀고 다녔다.

짐꾼은 나를 보고 똑똑하다며 칭찬도 해 주었다. 나는 그가 준 얼마의 돈을 생각하면서 저녁 때가 되어 다시 물어보았다.

「나 내일도 나오면 어떨까요.」

「그래 나오너라.」

짐꾼의 승낙에 나는 신나게 길을 향해 뛰었다.

나의 뒷모습을 짐꾼은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해서 날마다 짐꾼을 따라 시장엘 다녔다. 그러나 겨울이 깊어가고 날씨는 더 추워졌다.

김장거리를 사려고 청과시장에 나오는 아주머니들의 발걸음도 뜸해졌고 김장거리를 실은 트럭도 청과시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청과시장도 그만큼 한산해졌다.

이젠 인정이 두터워 보이는 짐꾼과도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왔음을 느꼈다. 그동안 나의 사정을 대강 아는 그는 자기 걱정은 하지 않고 내 걱정부터 해 주었다. 이제 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러면서 푸념을 내뱉었다.

「너같은 아들 하나만 있으면...」

그는 자기 자식들을 두고 섭섭한 말을 했다.

나는 일거리가 없어진 청과시장을 떠날 때 아저씨께 보람 있는 일이 생기길 빌겠습니다 하고 말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내가 생각한 말로써는 근사한 말을 했다고 느끼면서도 어린 나이 때문에 다소 수줍은 마음을 지닌 채 목적지도 없이 공연히 큰 길 쪽으로 그냥 뛰었다.

그리고는 또 무슨 일인가 해야 겠는데 하는 생각만이 강렬하게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세차게 부는 바다 바람을 귓가에 맞으면서 으시시한 기분을 느꼈다.

나의 정처없는 발걸음은 40계단 위로 오르고 있었다. 나는 길가의 벽에 신문배달원 모집 광고가 붙어 있는 것을 쳐다 보았다. 나는 눈이 닳도록 벽에 붙여진 구인광고를 한 자 한 자 읽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신문 배달원이 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구인광고가 붙은 옆 계단의 신문사 간판이 달린 문을 밀며 들어갔다. 신문사 사무실 안에는 나보다 나이가 위로 보이는 소년들과 어른들이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인가 망설이다 안경을 낀 중년신사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배달원 모집합니까 하고 먼저 물었다.

신사는 나의 행색을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다른 책상 앞에 앉은 사람을 가리켰다. 나는 또 그 쪽으로 옮겨갔다.

「신문 배달원 모집합니까?」

조금 전에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나는 그 신사로부터 몇 가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였다.

그 사람은 나에게 몇 가지 구비서류를 해 오라고 일러 주었다. 나는 동아일보 부산분실의 간판이 달린 문을 나왔다. 그리고는 또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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