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글
어느 일요일에 깨달은 자는 메시지를 크게 적은 피켓과 의자를 들고 통역과 함께 하이드 파크의 ‘연설자의 공간’으로 갔다. 차가운 바람에 가랑비까지 내리는 겨울날이었지만 사람들이 오가는 잔디밭 옆에 피켓을 세워 놓고 앉았다. 반나절을 앉아 있어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 남자가 가까이 오더니 깨달은 자를 향해 무슨 말인지 마구 지껄이기 시작했다. 깨달은 자가 통역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는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은 데요."
"뭘 알고 싶은지 천천히 알아 들을 수 있게 말하라고 해."
남자는 피켓의 메시지와 깨달은 자를 번갈아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고 알아듣기 힘든 말을 큰 소리로 질러 댔다. 남자는 통역이 말을 걸어도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혼자 떠들기만 했다. 무슨 구경거리인가 해서 깨달은 자 주변에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그러자 깨달은 자가 씽긋이 웃으며 말했다.
"땡큐! 더 크게 말해라. 더 크게 떠들어라. 사람들은 이런 쇼를 좋아하지, 진리는 듣고 싶어하지도,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혼자 잘 떠들던 남자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자 두리번거리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일주일 후, 깨달은 자가 같은 장소에 나가 앉아 있는데 멀리서 그 이상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깨달은 자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가볍게 들어 ‘헬로우’라고 인사를 하면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이상한 남자는 양 어깨를 으쓱하더니 깨달은 자를 피해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여행기 2
글 . 그림 이 도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