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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하늘과 바다

우연이었을까, 신의 뜻이었을까.

맑게 개인 하늘에서는 그 날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끼이기 시작하였다. 후텁지근한 날씨가 금방 비를 뿌릴 것 같았다.

잠잠하던 바다에서 물결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런 다음 라디오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태풍주의보가 발표되었다. 하루가 지나니 바다의 파고는 5미터에서 10미터로 변했다.

물기둥이 웅벽의 축강에 와서 부딪힌다. 또 다음의 물기둥이 몰려왔다. 물의 힘은 단 이틀만에 이변을 일으켰다. 파도에 의해 바다 쪽 항만청 도로의 콘크리트 조각들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며칠 전 나의 출입구에 억지로 쌓고 배짱을 부리던 옆집 사람의 고기상자들이 바다 속으로 쓸려 나갔다.

내가 장사하던 땅들도 떨어져서 물 속에 잠겼다. 나의 장사집 좌우 100여 미터가 물에 의해 처참한 형상만 남았다. 나의 마음 속에는 허탈이 생긴다.

물기에 젖은 몸이 7월인데도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나의 머리 속에는 이제 모든 시비는 끝났구나 하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 시간부터 하늘은 점점 개이고 바다의 물결이 위력을 잃어 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장사하던 곳 여기 저기에 물기둥에 의해 깨어진 콘크리트 조각이 지나간 태풍에 의해 일어난 일들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지 3일이 지나지 않아 또 잠잠하던 물결이 바다를 덮으면서 태풍 경보가 내린 것이다.

이번에는 무한정의 비를 뿌렸다. 태풍의 피해는 내가 태어났던 고향인 하동 지구를 물로 뒤덮어 버렸다. 고향 사람들은 큰 물난리를 겪게 된 것이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연관시켜 보면서 누구의 뜻일까 하고 의문을 품었다.

먼저 온 남자 태풍인 어빙은 나의 장사 터전이었던 부산의 남항 일부만을 심하게 강타했고, 뒤따라 온 여자 태풍인 주디는 나의 출생 비밀이 있는 고향 하동을 제일 심하게 강타했다.

예년보다 일찍 온 태풍을 보고 또 이상했다. 나는 아직 이런 것이 예보없이 순간적으로 생긴 일이 없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문의 지면과 텔레비젼 화면에서는 연일 수재민 기사로 떠들썩했다. 어떤 마음 좋은 사람들이 성금을 내었다고 신문과 텔레비젼에서 하도 떠들어대니까 이제는 무슨 수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가 생겨났다.

정부의 높은 분들이 수해지구 현황을 시찰한답시고 왔다 간다. 피해가 생긴 곳엔 재해대책 본부가 설치되었다고 방송과 신문이 떠든다.

높은 사람들은 정말인지 그냥 하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인지 긴급복구라는 말을 듣기 좋게 해댄다.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릴 듣고 의심없이 믿고 싶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한테는 사람들의 말에 의심이 생겼고 실망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수재민 돕기 운동은 있었는데 도와주는 것은 고사하고 한 마디 위로의 말조차 전하는 사람이 없었다.

중장비가 나와서 파괴된 도로를 복구한다고 서두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어떤 불안한 예감에 또 의심이 생겨난다. 나는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전에 한 높은 분들의 공약이 실제인가 싶어 확인하여 보았더니 또 난감한 일이 생겼다.

항만청 소유의 도로를 복구하면서 나의 장사 터 앞 도로에 대한 복구계획은 빠졌단다. 나의 땅을 경계로 좌우측에 우선 순위를 정해 건설회사에 도급을 주었는데 나의 소유대지 앞 도로 변만 좌측 한 집 우측 두 집은 방치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해도 나의 마음 속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섭섭한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참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세상에서 이런 억지를 왜 자주 보아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누구의 도움을 조금 얻는 것은 고사하고 나 자신의 자비에 의한 자력 복구마저도 방해를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속이 상하고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런 어느날 자신을 위로하고자 혼자서 술 잔을 들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시내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했다는 것과 많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사실인가 하는 의아심도 생기지 않았다.

술잔을 팽개친 채 시내 쪽으로 나갔다. 광복동 거리에 들어서니 당장 눈이 따갑고 눈에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길거리에는 안면 있는 사복경찰관들이 골목마다 서성거렸다. 밤이 되려는 남포동 거리에서 젊은 대학생들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유신은 물러가라.」참으로 오래간만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들은 것이다.

밤이 새고 나니 길거리에는 요소 요소에 무장한 군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안겨 준다.

그들은 백주에 사람들이 많이 보는 데서도 서슴없이 자기들 눈에 거슬리는 사람한테는 난폭한 짓을 했다. 이런 것을 보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두렵기만 하였다. 가슴에는 피가 엉켜 붙고 있었다.

어떤 이변이 일어날 것인가.

그러던 중 10월 26일을 맞았다.

저녁 텔레비젼 화면에서 중대뉴스가 발표된 것이다.

「대통령 서거.」

영문을 몰라하는 사람들한테 다음날이 되면서 사건의 내막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 속에서는 서서히 어떤 이변이 곧 뒤따라 올 것같은 느낌이 생겼다.

나는 18년동안 권력의 자리에서 국민에게 빚과 불신을 남기고 죽은 지난 날의 대통령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이제 이 땅에는 민주주의가 시작되는가. 나는 또 앞으로 닥칠 어떤 예감 속에서 불안하기만 하였다.

죽은 대통령은 이 땅에 양심과 정의와 인재를 남겨두지 않았다. 그러했기 때문에 우리의 주위에는 잘못하다가는 혼란의 와중에 빠질 우려도 있었던 것이다. 과도정부가 구성되고 그 겨울이 해를 넘긴다.

혜성처럼 등장한 세 김씨의 출현을 보면서 조국의 장래가 나의 머리 속에서 어두움으로 차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 땅에 소망의 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있을까. 의심과 의아심이 남는다. 지도자로서의 새 시대 인물로는 어디인가 아쉬움을 남기는 사람들.

나는 세 김씨에 대해 혼자서 생각을 해 본다. 나의 얼굴에 서글픈 미소가 떠올랐다. 그 사람들은 앞으로의 닥칠 운명에는 대처하려 하지 않고 아이들 소꿉장난처럼 막연하게 여론 속의 여운을 남기기 위해 설친다.

신은 우리 민족을 시험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눈에는 세 김씨에 의해 자꾸만 새로운 역사가 뒤따라 옴을 느꼈다.

나는 내 자신이 확신하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에 나의 행동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외출을 삼가기 시작했고 온종일 사무실이나 집에서 사람들을 피했다.

지루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세상에 대한 어떤 믿음을 걸고 하루종일 화투패를 뜨면서 궁금한 마음을 풀 때도 있었다. 그때가 나의 생애에 가장 한가한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주위에는 더러 나의 활동을 권고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날뛰면 무엇하느냐는 심정이었다.

나는 세 김씨 중 어느 편에 붙어도 상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세 김씨에게만은 마음을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심경 속에서 나는 다른 어떤 사람과의 대화도 피했다.

두려운 마음이 감추어진 1980년도의 봄이 무르익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시대를 공약한 과도정부의 내각이나 그 속에서 일어나는 하루하루의 조짐 속에서 소망보다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알 수 없는 예감 속에서 세 김씨의 장래에 대해 실망하기도 했다.

이 땅에 하늘의 뜻은 위대한 지도자를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또 어떤 조짐일까. 학생들의 시위는 이 땅에서 영원한 민주주의에 대한 포기 선언 같았다. 신문에서 노동자의 쟁의가 실린 것을 보고 이제 나는 다음 세대를 준비했다. 다음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오직 나에게는 그것만이 궁금한 것이다.

한 인재가 참고 살아가기에 너무나 큰 고통이 따르는 도시의 장래를 피하기 위해 준비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고향 땅, 내가 태어난 산속,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나의 운명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나는 나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육신이 요구하는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밤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고 허전한 마음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단 하나의 방편은 알콜에 온몸이 절어 녹초가 되면 그 날 하루만은 나 자신의 고통을 덜 수가 있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허탈상태를 느끼며 복덕방을 찾아 다녔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시가보다 좀 싼 가격으로라도 팔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주위에서 나의 마음을 몰라 왜 집을 파느냐고 듣기 좋은 소리로 만류를 한다. 그런데도 나의 마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내 자신의 운명 때문인지 복덕방에 내어 놓은 집을 사겠다고 흥정을 하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아무렇게나 무너져 버리려는 자신을 붙잡기 위해 마음 속에서 처절한 투쟁을 시작했다. 그런 나날 속에서 희미하게 힘겨운 자신을 찾아 내고 있었다.

머리 속에 한 수의 시가 떠올랐다.

 

세월은 불러도 돌아오지 않고

인생은 늙으니 죽음뿐이네.

욕망을 가진들 영원한 것 아니니

후세에 남길 것은 추억 뿐이로다.

 

나는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본다. 나의 마음 속에 오래간만에 뜨거운 감동이 생겼다.

나는 자신을 보며 네가 죽을 때 떳떳한 영혼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지난 날의 추억이 영상에 비친 화면처럼 비쳐지면서 행복감이 되어 마음에 와 닿는다.

안목 때문에 더욱 고독해야 했던 일, 용기 때문에 미움의 대상이 된 일, 양심 때문에 모략을 받던 일들을 후회해 버리고 싶지만은 않았다.

고달팠던 지난 일도 보람되게 느껴졌다. 세상을 생각하는 마음에 불신과 불안이 떠 올라 온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생각하는 생리가 다를까. 조국은 나에게 은혜를 베풀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그 조국을 짝사랑하고 스스로 거기서 생기는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의 운명은 영원히 슬픈 사연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의문과 의혹을 느꼈다.

1980년 5월 18일 정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격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에서 나는 오랫동안 예견한 자신의 예감이 적중한 것에 대해 감격을 하고 있었다.

세 김씨의 운명이 금방 변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에서 나는 우리의 꿈이 종착역에 닿지 아니하게 해 달라고 신에게 간구하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의 적응과 그 시대의 개척을 위해 나는 깊은 환상에 빠졌다.

앞으로 펼쳐질 정국에 대한 관심도 컸었지만 머리 속에 떠 오르는 예견은 새 시대의 주역들이 당황하며 일을 시작하려 한다면 양심과 정의감과 안목을 가진 자를 다시 내쫓게 되리라고 판단해 조국의 앞길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본다.

나는 미칠 것 같은 마음 속에서 술병을 찾았다. 나의 모든 생각을 술잔에 띄워 보내기 위해 잔을 들었다. 의식이 멀어지고 하루를 힘겹게 넘겼다.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어제와 표정이 달라 보인다. 사람들은 그들의 표정에서 침묵을 지키려고 애를 쓴다.

괜히 이럴 때 아는 체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나는 경험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생기는 일들이 시간마다 흘러 나오는 뉴스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최대한으로 위축했다.

우리의 가정은 생활이 쪼들리고 있었다. 복덕방에다 내어 놓은 집이 흥정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나날을 보낸다. 고독을 느끼며 술잔을 들이킨다. 더욱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끼며 빨리 취하려고 애를 쓴다.

띵해 진 머리 속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나만 이런 것일까. 딴 사람도 이런 것일까. 점점 의식이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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